1 진나라의 인물 주처
周處
(236 ~ 297)
삼국시대 오나라와 서진의 인물. 자는 자은(子隱). 주방의 아들이지만 등장 시기가 너무 늦으며, 활동 시기도 삼국시대 말기와 서진 초기이면서 그 활동이 서진 초기에 두드러지기 때문에 삼국지를 얘기할 때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에서 이름을 떨쳤던 주방의 아들이었으나 어려서 죽어 삐뚤어지게 자라는 바람에 망나니가 되어 버려 남산의 호랑이, 장교의 교룡과 함께 3해(害)라고 불릴 정도의 포악함을 자랑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뛰어난 학자가 되었는데 이 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갔던 육운이 해준
옛 사람들은 아침에 (꾸짖음을) 들어 저녁에 고치는 것(朝聞夕改)을 귀히 여겼네. 자네 또한 그러하여 항상 뜻을 세우지 못함을 걱정하니, 어찌 이름을 날리지 못함을 걱정하는가?
가 고사 조문석개(朝聞夕改)의 유래.
이와 관련하여 야사중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위에 말했던 3해 중에 주처의 횡포가 가장 심해 참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회의를 하던 중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나오게 된다. 다음 날, 마을 사람 하나가 주처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면서 호랑이를 죽여 달라고 부탁을 하니 주처는 웬일로 흔쾌히 호랑이를 죽이러 뒷산으로 들어갔다. '둘 중에 하나는 죽겠구나!' '주처가 죽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주처가 죽기를 바랐으나 주처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호랑이를 물리치고 돌아온다.
이 일에 마을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으나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호랑이를 퇴치한 주처의 용맹함을 찬양하고 소잡고 닭잡고 양잡고 말잡아 잔치를 베풀고 온갖 말로 주처를 꾀어 그 정도라면 교룡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주처를 부추겼다. 이에 주처는 자신이 난생 처음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됐고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뿌듯해져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또 다시 속아넘어간 주처는 이번에는 강에 들어가 교룡과 싸웠으나 호랑이와는 달리 지리적 불리로 인해 막상막하. 한참을 싸우다 둘 다 힘이 빠져 서로를 잡은 상태로 둥둥 떠서 하류로 수십리를 같이 떠내려 갔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 주처도 교룡도 나타나지 않자 "두 놈이 모두 죽었다!"라며 자신들의 엄청난 행운을 자축하고 이번에는 정말로 자신들을 위한 잔치를 벌이기 시작한다.
한편 교룡을 죽이고 강에서 살아나온 주처는 교룡을 어깨에 맨채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자 '이 자들이 교룡이 죽어서 이리 기뻐하는구나!'하며 걸음을 재촉해 마을에 나타나 죽은 교룡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뻐할 줄 알았던 마을사람들의 즐겁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불안한 기색만이 가득했다. 그제서야 주처는 비로소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거리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심하게 부끄러움을 느껴 그 길로 마을을 떠나 육기를 찾아갔으나 육기가 부재중이라 육운에게 가서 마음을 고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학문을 열심히 익혔다가 오나라에서 동관좌승에 임명되었다가 무난도독이 되었으며, 오나라가 멸망하자 서진을 섬겨 신평태수, 광한태수 등을 거쳤다가 초의 내사로 임명된다. 그러나 부임 전에 산기상시가 되자 이를 거부하면서 초에 부임해 일했는데, 사람들이 이 행동에 대해 칭송했다고 한다.
조정에 들어가 어사중승이 되었지만 권력자에게 아첨하지 않는 태도를 행해 296년에 양왕 사마융이 법을 위반할 때도 엄격히 집행해 원한을 샀으며, 같은 해에 저족의 제만년이 반란을 일으키자 겨울 10월에 건위장군이 되어 하후준의 휘하에 속해 토벌하게 되었다. 손수가 노모를 구실로 사퇴하라고 만류했지만 이를 거부하면서 출진하고 제만년이 양산에서 7만으로 주둔할 때 사마융, 하후준 등이 5천의 군사로 공격하도록 강요해 노파, 해계 등과 함께 제만년의 군사를 공격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물러날 것을 권했지만 이는 내가 절개를 다하고 생명을 버릴 날이라면서 싸우다가 1만을 죽이고 전사했다.
장감논단에 실린 명장 94인 중 하나로 그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그의 아들로는 서진에서 의랑, 진민 휘하에서 안풍태수, 동진에서 창조속, 오흥태수를 지낸 주기(周玘)가 있으며, 손자로는 주협(周勰)이 있다.
세설신어에서는 왕혼이 오나라를 평정하면서 건업의 궁전에 올라 술을 마실 때 제군들은 망국의 유민이니 슬프지 않냐고 묻자 주처가 한나라 말에 나라가 무너져서 삼국이 정립했는데, 위나라가 먼저 멸망하고 오나라가 뒤에 망했으니 망국의 슬픔을 느끼는 자가 어찌 한 사람뿐이겠냐고 해서 왕혼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일화가 있다.
저서로는 양선풍토기가 있다.
2 야구선수 김주찬의 별명 주처
불교신자라서 부처+주찬의 결과물인 주처가 별명이 되었다. 그로 인해 파생된 단어들은 김주찬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