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肜
(? ~ 302)
1 개요
서진의 황족. 자는 자미(子微). 사마의의 8남으로 장부인 소생이다. 봉토는 양국(梁國). 시호는 효왕(孝王). 모두 더하여 양효왕이다.
233년 이후 ~ 240년대 사이 출생하였을 것이다. 즉 사망 당시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중후반, 많으면 60대가 된다.
백부인 소생의 이복동생 사마륜이 바로 아래 동생이고 선목왕후 장춘화 소생(어머니 장부인과 성이 같음)의 사마간, 복귀비 소생의 사마경 등이 바로 윗 형이었다. 친형제는 없었다.
팔왕의 난에서 행보를 요약하면 그래 당신 한몸은 이긴 편 들면서 편히 살았다. 하지만 대체 한게 뭐냐? 되겠다.
2 생애
265년에 양왕이 되었다가 정서대장군을 지내면서 291년 9월 21일에 위장군, 녹상서사에 임명되었다.
296년에 서쪽에서 저족과 강족이 일어나자 조왕 사마륜의 총신인 손수와 옹주자사 혜계가 군사적인 문제로 다투면서 구양견이 사마륜의 죄악을 표문에 올렸다. 그러자 조정에서 사마륜이 관우 지역을 소란스럽게 한다고 여겨 소환하면서 사마융은 정서대장군에 임명되어 도독옹량이주제군사가 되었으며, 해계, 해결 등이 손수를 죽여 저족과 강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혹은 본보기로 보여한다)라고 청하면서 장화가 이를 보고하면서 죽이려고 하자 허락했다가 신염이 저족과 강족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손수의 죄가 아니라고 설득해 손수를 죽이는 것을 거뒀다.
같은 해에 저족의 제만년이 반란을 일으켰고 주처가 겨울 10월에 건위장군이 되어 하후준의 휘하에 속해 토벌하게 되었는데, 일찍이 주처가 어사중승일 때 법을 위반했다가 주처가 엄격히 집행하자 원한을 품었다. 제만년이 양산에서 7만을 이끌고 주둔하자 하후준과 함께 주처에게 5천의 군사로 공격하도록 강요해 주처를 전사하게 만들었으며, 조정에게는 사마융에게 허물이 있다고 했지만 죄를 주지 않았다.
299년에 대장군, 녹상서사가 되었다가 300년에 사마륜이 가남풍을 폐위할 때 가담했으며, 여름 4월 7일에 태재가 되었다. 9월에 사도를 바꿔 승상이라 하자 사마융이 승상에 임명되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같은 해 3월에 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등이 사마륜을 패배시켜 금용성에 유폐하자 3월 9일에 사마륜 부자는 역적이니 목을 베어야 한다고 표문을 올려 사마륜 부자는 주살되었다. 3월 26일에 태재, 영사도에 임명되었다가 301년 정월 10일에 재형이 되었고, 302년 5월 7일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