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외국어 발음을 가르칠 때 교육자들이 사용하는 만능의 열쇠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한국어의 음소목록(모음 최대치 10개, 자음 16개)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화자는 그 음소목록에 있는 음소 외의 발음을 듣거나 발음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가르치기 위해 음성학 지식이 부족한 교육자들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버리고 만다.
"이 발음은 한국어의 a 발음과 b 발음의 중간이다."
2 문제점
그러나, 얼핏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설명으로 보이는 이러한 해설방식은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언어에서 하나의 음소는 실제로는 복수의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어의 r(/ʁ/)을 예로 들어보자.
음성학 지식이 없는 한국어 모어화자는 프랑스어 Paris, Bonjour의 구개수음인 r을 해설할 때, ㅎ과 ㄹ의 중간발음이라고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r(/ʁ/)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유성음, 조음위치는 목젖, 발음방식은 마찰음(fricative)이다.(실제로는 더 많고 복잡하나 여기선 간단하게 설명하자) 그러나 한국어의 ㄹ(/ɾ/)은 유성음, 조음위치는 치경, 발음방식은 탄설이며, ㅎ(/h/)으로 말하자면 무성음, 조음위치는 성대, 발음방식은 마찰이다. 이러한 복수의 성질들 중 어느 성질을 기준으로 해서 중간이라고 하는 것인지 '중간발음'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알 수가 없으며, 설령 하나의 성질을 지적해 중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중간이 아니거나(가령 ㄹ과 ㅎ의 조음점의 중간이 (/ʁ/)라고 주장한다 해도, 치조(윗니의 뒤쪽 잇몸)와 성대의 중간거리에 목젖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예 그런 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유무성의 대립, 조음방식 등)가 거의 대부분이다.
요컨대, 저런 방식으로는 아무리 발음연습을 시켜도, 학습자는 발음을 못하거나, 설령 하더라도 괴상하게 하게 되며, 결국 나중엔 '이건 외국어니까'라고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게 된다. 발음의 교육은 조음 음성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등을 어느 정도는 과학적으로 해설해야 비로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음의 경우에는 "중간발음"이라는 개념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이런 경우에도 A와 B의 중간발음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A를 발음하는 상태에서 B 입술 모양을 낸다." "C를 발음하는 상태처럼 입을 벌리고 D처럼 혀를 앞/뒤로 내민다/오그린다"와 같이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경우가 훨씬 정확하다.
그러나 모음의 경우에는 직접 발음을 보여 주면서 설명할 때 중간발음의 개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음의 자질은 불연속적이라서 중간이라고 해도 어디가 중간인지 감을 잡기 애매한데, 모음의 경우 원순/비원순 여부만 빼면 혀의 위치에 따라서만 구별되기 때문에, 예를 들어 [ɨ]를 설명하고 싶다면 ㅣ와 ㅡ의 중간발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과거 자장면이 표준어이고 짜장면이 비표준어이던 시절 모 방송국에서는 (자와 짜의) 중간발음으로 말하도록 한적이 있다.ㅿㅏ장면 배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