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제임스 코놀리 "지미" 존스톤 (James Connolly "Jimmy" Johnstone) |
생년월일 | 1944년 9월 30일 |
사망일 | 2006년 3월 13일 |
국적 | 스코틀랜드 |
출신지 | 뷰파크 |
포지션 | 윙포워드 |
신체조건 | 157cm |
선수 경력 | 셀틱 FC(1961-1975) 산호세 어스퀘이크스(1975) 셰필드 유나이티드(1975-1977) 던디 FC(1977) 셸버른(1977-1978) 엘긴 시티(1978-1979) |
국가대표 | 27경기, 4골 |
1967 Ballond'or | ||
수상 플로리안 알베르트 | 2위 보비 찰튼 | 3위 지미 존스톤 |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한 셀틱의 주축
1 소개
스코틀랜드 역대 최고의 윙포워드 중 하나. 매우 작은 신장이지만 빠른 속도와 드리블 돌파 능력을 갖추었으며 전통적인 윙어보다는 인사이드 포워드 유형의 윙어이다. 60년대 셀틱의 최전성기의 주축 멤버로, 2002년 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셀틱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
2 클럽
어린 시절부터 셀틱의 볼보이로 활동하면서 축구선수로의 꿈을 키워나갔고, 1962-63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 데뷔했다. 두번째 시즌부터는 완전히 주전으로 올라섰고 UEFA 컵위너스컵 4강 진출에 기여했다.
1965년 그 유명한 조크 스타인이 셀틱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전성기를 같이하는 줄 알았으나 오히려 스타인은 그가 너무 개인중심적인 선수라며 주전 자리에서 배제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나 존스톤은 결국 다시 주전 자리에 복귀하는데 성공했고 셀틱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시기 셀틱은 1965-66 시즌 부터 1972-73 시즌까지 리그 8연패를 하는가 하면 1966-67 시즌에는 인터 밀란을 상대로 공격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영국 팀으로는 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유러피언 컵 우승을 했다. 이 시즌 셀틱은 모든 타이틀을 휩쓸며 5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존스톤 개인적으로는 1967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1975년까지 존스톤은 셀틱에서 총 520경기 가까이 출전했으며 130골 정도 기록했다. 이 출전 순위는 셀틱 역사상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975년 셀틱을 떠나서는 잠시 미국, 잉글랜드, 아일랜드와 같은 마이너한 리그를 전전하다가 1979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1964년 웨일즈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데뷔했다. 스코틀랜드 역대 최고의 윙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국가대표팀에서의 업적은 적은 편인데, 경기력 부진으로 잠시 퇴출되는 등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기 스코틀랜드 선수들의 국가대표 성적이 별볼일 없다.[1]
1974년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정작 본선에는 모두 결장했다. 1974년 월드컵 참가 이전에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는데, 바닷가에 고립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월드컵에 참가하기 전에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존스톤은 호텔에서 다른 동료들과 술을 마신것이다. 술을 마신 다음날 존스톤은 근처 해변으로 나갔는데, 존스톤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배에는 노가 없었고 존스톤은 행동을 멈춰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존스톤이 바다에 고립된 것이다. 결국 그는 근처의 구조대원에게 구조됐고 다음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