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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지암피에로 벤투라 (Giampiero Ventura) | |
생년월일 | 1948년 6월 29일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제노아 |
소속팀 | UC 삼프도리아 (1968~1969) FS 세스트레세 칼치오 1919 (1969~1970) USD 엔나 (1970~1974) SSD 유니온 산레모 (1974~1976) USD 노베세 (1976~1978) |
지도자 | UC 삼프도리아 유스 감독 (1976~1979) UC 삼프도리아 코치 (1979~1981) ACD Rapallo Ruentes 1914 감독 (1981~1982) ACD 비르투스 엔텔라 감독 (1982~1983, 1984~1986) 스페지아 칼치오 감독 (1986) US Centese 감독 (1987~1989) US Pistoiese 1921 감독 (1989~1992) ASD Giarre 칼치오 감독 (1992~1993) SSC 베네치아 감독 (1993~1995) US 레체 감독 (1995~1997) 칼리아리 칼치오 감독 (1997~1999) UC 삼프도리아 감독 (1997~1999) 우디네세 칼치오 감독 (2001~2002) 칼리아리 칼치오 감독 (2002~2004) SSC 나폴리 감독 (2004~2005) FC 메시나 감독 (2005~2006) 헬라스 베로나 FC 감독 (2006~2007) 피사 칼치오 감독 (2007~2009} AS 바리 감독 (2009~2011) 토리노 FC 감독 (2011~2016)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 ||||
안토니오 콘테 (2014~2016) | → | 지암피에로 벤투라 (2016~) | → | 현직 |
목차
1 소개
대기만성의 표본
지암피에로 벤투라는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이다. 그는 1976년 삼프도리아의 유스팀 감독이 된 이래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리에에서만 활동했다. 그중 초반 20여 년 동안 무명의 세월을 보냈고 레체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 뒤 여러 빅클럽을 맡았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해 또다시 굴곡의 경력을 이어갔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것은 2011년 토리노의 감독으로 취임한 뒤부터였다. 그는 3-5-2 시스템을 도입, 만년 강등권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던 토리노를 발전시켜 유로파에 진출시키는 공적을 세웠다. 이후 2016년 여름, 안토니오 콩테 감독이 유로 2016이 끝난 뒤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가 차기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2 선수 시절
벤투라는 1968년 20살의 나이로 삼프도리아 유스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는 실력이 모자라 1군 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1969년에 팀을 떠나야 했다. 이후 벤투라는 1970-71 시즌에 세리에C에 속한 USD 엔나에서 활동한 걸 제외하고는(그나마도 그 시즌에 팀이 세리에D로 강등되었다.) 세리에D에서만 활동했다. 이후 벤투라는 1976년 USD 노베세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하면서 삼프도리아 유스팀 감독으로 부임해 2년간 투잡을 뒤다가 1978년에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스태프 경력을 시작했다.
3 스태프 경력
3.1 기나긴 무명 시절
벤투라는 1979년 삼프도리아의 수석코치로 부임했고 2년간 감독을 보좌했다가 1981년에 팀을 떠나 세리에D의 여러 아마추어 팀들을 맡았다. 그의 감독으로서 첫번째 성공은 1985년 비르투스 엔텔라를 세리에 C로 승격시킨 것이었다. 그후 1987년 벤투라는 세리에C1에 속한 스페지아의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시즌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그후 1987년 U.S. Centese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2시즌 동안 부진을 거듭했고 급기야 팀을 세리에C2로 강등시키는 바람에 경질되고 말았다.
그후 U.S.Pistoiese의 감독으로 부임한 벤투라는 두번째 시즌에 세리에C2 승격을 달성했고 세번째 시즌엔 4위를 기록하였다. 1993년엔 시실리아의 축구 클럽 A.S.D. Giarre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세리에C1에 복귀했는데 여기서는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며 4위를 거두었다. 이 성적은 Giarre 축구 클럽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라고 한다.
1993년, 벤투라는 감독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아는 마우리치오 잠파리니 구단주의 부름을 받고 세리에 B 소속 축구 클럽인 베네치아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1년만에 처음으로 세리에B 클럽을 맡게 되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첫 시즌엔 6위를 기록해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두 번째 시즌엔 중위권에 머물렀고 베네치아를 세리에A로 승격시키길 원했던 잠파리니 구단주에 의해 전격 경질되었다. 이렇듯 벤투라는 감독 경력을 시작한 이래 십여년간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무명 감독에 불과했다.
3.2 레체의 영웅
그런 벤투라의 감독 인생을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찾아온다. 1995년, 벤투라는 세리에C1으로 돌아와 레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 팀에서 놀라운 성공을 일궈냈다. 1995-96 시즌에 세리에B로 승격하더니 1996-97 시즌엔 곧바로 세리에A로 승격하면서 2연속 승격이라는 환상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런 그의 활약을 주목한 칼리아리 보드진은 1997년 벤투라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3.3 칼리아리 1기
1997년 칼리아리에 부임한 벤투라는 첫 시즌에 팀을 세리에 A로 곧바로 승격시켰다. 이후 그는 1998-99 시즌에 감독 경력 사상 첫 세리에A 무대를 밟게 되었고 팀을 12위에 안착시키며 잔류를 확정지었다. 그러던 1999년, 그는 뜻밖에도 칼리아리를 떠나 세리에B에서 헤매고 있던 삼프도리아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4 삼프도리아 시절
선수 생활을 삼프도리아에서 시작했고 스태프 경력도 삼프도리아 유스팀 감독을 맡으면서 시작했던 벤투라는 자신의 축구 인생의 막을 열었던 삼프도리아의 감독으로 돌아와 세리에A로 승격시킬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는 5위를 기록해 승격에 실패했고 시즌이 끝난 뒤 경질되었다.
3.5 우디네세 시절
삼프도리아에서 경질 된 뒤, 벤투라는 1년간 휴식기를 가졌고 2001년 우디네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그는 14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시즌이 끝난 뒤 경질되었다.
3.6 칼리아리 2기
2002년, 벤투라는 칼리아리로 돌아와 첫 시즌에 9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성적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시즌이 끝난 뒤 또다시 경질되고 말았다.
3.7 나폴리 시절
2004년, 벤투라는 세리에C에 속해 있던 나폴리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나폴리의 구단주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는 그가 팀을 세리에B로 승격시켜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1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성적을 찍고 말았고 라우렌티스 구단주는 2005년 1월에 벤투라를 시즌 도중에 경질하고 에두아르도 레야 감독을 선임했다. 레야 감독은 팀을 잘 수습했고 급기야 세리에 C 우승을 달성해 벤투라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3.8 강등 전도사(...) 시절
2006년, 당시 2005-06 시즌 세리에 A의 밑바닥에서 강등 걱정을 하고 있던 메시나 보드진은 벤투라를 감독으로 선임해 강등권을 탈출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벤투라는 강등권 탈출에 실패해 팀을 세리에B로 떨구고 말았다. 이후 그는 책임을 지고 메시나 감독직에서 물러나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2006년 12월 헬라스 베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또다시 리그 꼴지인 팀을 구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엇다. 그러나 그는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이번에도 경질되었다.
2007년 6월, 벤투라는 세리에B의 축구 클럽인 피사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의 축구 팀에서, 그는 암담하기 짝이 없던 커리어를 개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첫 시즌에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알비노레페를 격파하고 승격을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서는 강등 걱정을 하게 되었고 2009년 세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고 말았다.
3.9 바리 시절
2009년 6월, 바리 보드진은 아탈란타로 떠난 안토니오 콩테를 대신해 벤투라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2009-10 시즌, 그는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승점 50점을 획득해 리그 10위를 달성했다. 승점 50점은 바리 축구 클럽 역사상 가장 많은 승점 기록이었다. 또한 벤투라는 바리에서 레오나르도 보누치와 안드레아 라노키아를 길려냈는데, 두 사람은 훗날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의 대들보 센터백으로 각광받았고 실제로 보누치는 유벤투스로 이적한 후 잠재력을 만개해 이탈리아 최고의 센터백이 되었다. 반면 라노키아는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뒤 쩌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시즌, 벤투라는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고 보누치, 라노키아가 빅클럽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전력에 생긴 큰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부진을 거듭했다. 시즌 중반에 이를 무렵, 바리는 리그 꼴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1년 새해 첫 경기인 US 레체와의 라이벌 더비전에서 스테파노 오카카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둬 반전의 기회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바리는 4달 간 겨우 1승이라는 굴욕을 안으며 압도적인 꼴지를 지속하고 말았다. 결국 2011년 2월 10일, 벤투라는 경질되고 말았다.
3.10 토리노 시절
2011년 6월 6일, 벤투라는 토리노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토리노는 매 시즌 강등권 싸움을 해야 하는 약체팀에 불과했다. 이에 벤투라는 센터백 안젤로 오그본나, 라이트백 마테오 다르미안, 센터백 카밀 글리크 등 유망한 선수들을 적극 기용했고 3-5-2 시스템을 구축해 토리노의 전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점차 강등권 싸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2012-13 시즌 16위를 기록해 잔류를 확정한 후 2013-14 시즌에 7위를 달성해 유로파 대회 진출권을 확보했다. 또한 벤투라는 이 시즌에 승점 57점을 획득해 그의 감독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한 시즌에 거두었다.
그후 2015년 2월 22일, 벤투라는 세리에 A에서의 100번째 경기를 맞이했다. 이 경기는 피렌체 원정이었는데, 토리노는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피오렌티나와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 토리노는 유로파 32강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3:2로 격파헤 16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26일, 토리노는 벤투라의 지휘하에 유벤투스를 2:1로 격파했다. 이 승리는 토리노 더비 사상 20년 만에 토리노가 유벤투스를 상대로 이긴 것이었다. 이렇듯 빛나는 성과를 거둔 벤투라는 2015년 11우러 16일 감독 계약을 2018년 6월까지 연장했다. 그는 2015-16 시즌에 토리노를 12위로 마감시켰는데, 토리노 보드진은 이 성적을 불만족스러워했고 결국 벤투라는 상호 합의하에 5년간 활동했던 토리노를 떠났다.
3.11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6년 여름, 벤투라는 안토니오 콩테의 뒤를 이어 차기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4 수상
세리에C1 우승 : 1995-96 시즌(레체)
세리에D 우승 : 1984-85 시즌(엔텔라), 1990-91 시즌(Pistoi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