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콘테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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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셰익스피어
(레스터)
위르겐 클롭
(리버풀)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주제 무리뉴
(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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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애그뉴
(미들즈브러)
션 다이크
(번리)
에디 하우
(본머스)
클로드 퓌엘
(사우스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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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모예스
(선덜랜드)
폴 클레멘트
(스완지)
마크 휴즈
(스토크)
아르센 벵거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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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
(에버튼)
발테르 마차리
(왓포드)
토니 풀리스
(웨스트 브롬)
슬라벤 빌리치
(웨스트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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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콘테
(첼시)
샘 알라다이스
(크리스탈 팰리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마르코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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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감독
안토니오 콘테[1]
(Antonio Conte)
생년월일1969년 7월 31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레체
포지션미드필더
173cm
소속팀US 레체 (1985~1991)
유벤투스 FC (1991~2004)
지도자AC 시에나 수석코치 (2005~2006)
AC 아레초 감독 (2006)
AC 아레초 감독 (2007)
FC 바리 1908 감독 (2007 - 2009)
아탈란타 BC 감독 (2009~2010)
AC 시에나 감독 (2010~2011)
유벤투스 FC 감독 (2011~2014)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2014~2016)
첼시 FC 감독 (2016~ )
국가대표20경기 2골
유벤투스 FC 역대 감독
루이지 델네리
(2010~2011)
안토니오 콘테
(2011~2014)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2014~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체사레 프란델리
(2010~2014)
안토니오 콘테
(2014~2016)
지암피에로 벤투라
(2016~ )
첼시 FC 역대 감독
거스 히딩크
(2015~2016)
안토니오 콘테
(2016~)

1 개요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겨도 팀으로서 이기고, 져도 팀으로서 진다" -아스널전 패배 이후 인터뷰

현역시절에는 유벤투스을 위해 헌신한 레전드

칼치오폴리 이후, 암흑기에 접어들어 명가의 위상을 잃어가던 유벤투스를 다시 세리에 최강팀으로 올려놓은 명장

이제는 무너진 명가인 위기의 첼시 FC를 최강으로 올려놓을 구원자

쓰리백의 장인[2]

2 선수 생활

주요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고, 오른쪽 측면에서도 플레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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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팀 US 레체 시절.미남이었잖아??

고향팀인 US 레체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며, 유스시절을 거쳐 1985년 주전으로 세리에 A에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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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시절.

6시즌 후인 1991년 높은 이적료로 유벤투스 FC로 이적한다. 이후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 휘하의 유벤투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주장에까지 임명된다. 이후 팀의 아이돌로 떠오른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주장직을 물려줬으나 1998-99 시즌 델 피에로의 부상으로 인해 주장으로 복귀, 2001-02 시즌까지 역할을 맡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체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플레이로 1991-92 시즌부터 2003-04 시즌까지 13 시즌동안 유벤투스에서 활약했고, 특히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은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2002-03 시즌 은퇴를 앞둔 34세의 베테랑으로서 유벤투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으로 이끈 활약이 백미였다. 유벤투스 FC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일찌감치 대표팀에도 중용되어 1994 미국 월드컵의 엔트리에도 포함되었으나, 오랜시간 그를 괴롭힌 무릎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가 유로 2000에서 주전으로 중용되어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3 감독 생활

3.1 이탈리아 세리에 A 시절

2004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여[루이지 디 카니오 밑에서 조감독으로 지도자 코스를 밟은 뒤 2006년 세리에 B의 AC 아레초에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성적 부진으로 한 번 해임되었다가 후임 감독이 4개월여만에 다시 해임됨에 따라 복귀, 리그 후반에 7경기에서 5연승 포함 19승점 획득 등 선전하였으나 1점 차로 강등되었다.

2007년 시즌 중반에 FC 바리로 이적, 강등 위기의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킨 뒤, 다음 시즌 우승하여 팀을 승격시켰다. 이 활약으로 인해 2008-09 시즌 종료 후 유벤투느 감독직이 공석이 되면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치로 페라라가 대신 선임되었고, 콘테는 2009-10 시즌 진행 중에 아탈란타 BC 감독으로 세리에 A에 데뷔하였으나 팬들과의 충돌 등으로 인해 3개월만에 사임하였다. 같은 시즌 말 AC 시에나 감독으로 취임, 2010-11 시즌 2위를 차지하여 팀을 승격시켰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2011-12 시즌부터 친정팀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동료였던 디디에 데샹 등의 지지와는 달리 당시 팬들은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데려왔으면 큰일날 뻔했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등을 선호했고 페라라의 악몽을 떠올리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팀의 위닝 멘탈리티를 되살렸다는 평을 받으며 무패행진을 하기 시작하였고,[3] 전술적으로도 당초 4-2-4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상을 뒤엎고 4-3-3, 3-5-2등의 팀에 알맞는 전술을 선보였다. 콘테의 3-5-2 전술은 2014 월드컵에서의 3백 복고 바람을 이끄는 데 일조하였다.

그 결과 부임 첫 시즌인 11-12 시즌에 무패 우승으로 스쿠데토를 탈환하였고, 그 후 첫 시즌을 포함하여 3연속 스쿠데토 획득을 이끌었어며, 2013-14 시즌은 102점으로 최다 승점 우승이었다. 칼치오폴리로 약화된 이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던 팀을 우승권에 되돌림으로써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우승 후 다시 나간 유럽 대회 성적은 12-13 챔피언스 리그 8강, 13-14 챔피언스 리그 32강 탈락 후 유로파리그 4강이다. 유럽 대회 성과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으나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2시즌이라는 표본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유럽 대항전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수준급 윙포워드 영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여러 차례 팀에 요청하였으나 바라는 영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4] 결국 2014-15 시즌 시작을 앞두고 갑작스레 사임하여 유벤투스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체사레 프란델리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3.2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시절

유로 2016에서 같은 조에 벨기에, 스웨덴, 아일랜드가 편성되며 죽음의 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좋지 않은 조편성에 걸려버렸고, 여기에 마르코 베라티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동시에 부상으로 유로에 나갈 수 없게 되며 전망이 좋지 않았으나, 벨기에전에서 자신이 명장인 이유를 전술로 입증하며 2:0 완승을 기록했다.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가서 16강전에 스페인을 2:0 꺾어놓고 8강에 진출하였다.

대망의 16강 스페인전에서는 짧은 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스페인에 대한 맞춤형 축구를 들고 나와 우세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지오르지오 키엘리니그라치아노 펠레의 골에 힘입어 2-0 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승리는 이탈리아에 매우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는 지난 유로 2008 8강전과 유로 2012 결승전에서 모두 스페인에 완패를 당하며 두 대회를 탈락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백미였던 것은, 콘테는 90분 내내 시종일관 경기장에서 제스처와 고함을 통해 선수들을 지휘했으며, 에마누엘레 자케리니가 볼 터치 미스를 저지르자 자신에게 다가온 공을 걷어차며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였다. 콘테의 스페인전 리액션

그리고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메이저대회에서 항상 이탈리아의 훌륭한 샌드백이 되어주었던 독일이었다. 토너먼트에서 만나면 항상 발라버렸던 독일을 상대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천적임을 입증할지 기대를 모았다. 이탈리아는 경기 내내 그물코와 같은 촘촘한 수비로 독일의 공격을 분쇄했으나 역습 시 공격 전개가 둔탁해 다소 밀리는 경기를 했다. 전반전은 무실점으로 버텼으나 후반 20분, 메수트 외질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0 : 1로 끌려갔다. 이후 후반 33분에 독일 수비수 제롬 보아텡의 핸드볼 파울로 인해 페널티킥을 얻어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골을 성공시켜 1 : 1로 균형을 맞추었고 연장전까지 끌고갔다. 연장전에서도 이탈리아는 대부분 수비적으로 나서며 독일의 공격을 막고 또 막아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으나 무려 9번 킥커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5 : 6으로 아쉽게 대회의 막을 내렸다.

유로 2016이 열리기 전인 2016년 4월 4일 첼시와 3년 계약을 체결, 유로 2016를 끝으로 이탈리아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2016-17 시즌부터 첼시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3.3 첼시 FC 시절

무너진 첼시 제국을 부활시켜라
유벤투스 부임 당시[5]에 버금가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첼시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유로 2016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탈락한 후 짧은 휴가를 즐긴 콘테는 2016년 7월 13일부터 첼시에 출근을 하며 본격적인 업무에 나서게 되었다. 부임하자마자 모든 훈련은 더블세션으로 매우 빡세게 진행된다고 한다. 콘테의 부임과 동시에 은골로 캉테가 영입되는 등 첼시의 이적 시장도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콘테는 "첼시는 매 시즌 우승경쟁을 하거나 챔피언스리그 존에 있어야 하는 팀"이라며 매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번 시즌에 첼시가 리그 타이틀을 탈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 하다. 또한 유로 2016에서 보여주었던 인상 덕분에 많은 선수들이 콘테의 첼시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캉테는 레스터 시티에서 챔피언스 리그를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콘테의 플랜을 꼽았다. 이탈리아 시절 그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과 현재 첼시 선수들 역시 콘테를 칭찬하는 등 그의 부임은 현재까지는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이고 있는 듯 하다.

부임 후 첫 경기인 라피드 빈과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보여주었듯이 개선할 부분이 많이 보이는 첼시이기에 그에게도 험난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감독 경질이 잦은 첼시 보드진과 불같은 성격의 콘테이기에 수차례 반복되어온 첼시 감독과 보드진과의 갈등이 이번에도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콘테가 다음 시즌에도 첼시의 감독으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중도 경질이라는 치욕스러운 결과가 또다시 반복될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시즌이 시작된 후 3연승을 달리고 리그컵에서도 레스터를 격파하는 등 분위기를 끌어올렸지만, 리버풀-아스날 5, 6R에서 각각 2;1, 3;0 대패를 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어진 헐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3백을 기용했는데 선수들이 적응이 안 되었는지 전반에는 암 걸릴 경기력을 보여주며 또 무승을 하나 했지만 후반전에서 윌리안디에고 코스타의 골로 오랜만에 리그 경기에서 승리했다.
다음경기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에서 드디어 콘테감독의 진면목이 보이기시작했다. 3-4-3포메이션으로 탄탄한 미드필더 라인을 보여주며 4대0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압승으로끝냈다.무리뉴의표정이압권이다

4 스타일

선수 신체적, 정신적인 부분을 모두 탁월하게 관리하는 감독이다. 콘테 입성 이후 비노보의 저주라 불릴 정도로 부상이 잦았던 유베의 부상 빈도가 정상화되었다. 77을 찍었던 당시 선수들에게 한 일갈은 피를로의 자서전에도 적혀있고, 피를로는 콘테를 상당히 칭찬하였다.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비달과 끝판왕 소리까지 들은 테베즈, 오스발도를 큰 문제없이 관리하기도 하였다.

강력한 전방압박과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하여 90분 내내 상대팀을 압도하려 하는 소위 가패축구를 선호한다. 3백성애자라는 말과 다르게 특정한 포메이션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며, 팀 상황에 맞는 포메이션을 잡아 정착시키는 데에 집중한다.[6] 공격수도 전진 압박 및 수비에 가담하게 하여 공격수들이 득점력에서 희생당한다. 거꾸로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공격 가담 역시 중요하게 여겨 시즌마다 미드필더들이 두 자리 수에 가까운 득점을 해내기도 하였다.

다만 3-5-2 전환 후 포메이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공격 전개가 매우 느려졌으며, 공격수들이 수비에 매우 가담하는 점과 겹쳐 공격력이 답답하다는 평을 듣게 만들기도 하였다.

예상 외로 로테이션을 안 돌리는 편도 아니다.[7] 13-14시즌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 깜짝 선수비-후역습 433카드를 쓰는 등 시즌 내내 한 전술만 고집하는 감독은 또 아니고, 선수들이나 동료 감독들에게 전술적으로 많은 칭찬을 받는 편이기도 하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경기 중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이 아쉽다. 선수, 전술 교체 타이밍 모두 아쉬운 편이라 전술 변화나 선수 교체로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경기가 많지 않다. 특히 유럽대회에서 만족스럽지 않았던 성적과 겹쳐 많은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현재 유럽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감독들 중 손꼽히는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여담으로 경기 내내 터치라인 부근에서 선수들을 굉장히 열성적으로 독려한다. 선수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가며 가서 붙으라고 주문을 하거나 위치를 조정한다. 리액션도 굉장히 크고 열성적이라서 중계진들의 좋은 화면 공급원이기도 하다.

5 기타

2012년 5월 세리에 B 승부조작 사건 당시 가담했던 한 선수의 주장에 따라 "승부조작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4개월간 감독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8] 이와 관련해 유벤투스 팬들은 "불같은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승부조작 사실을 알았으면 가담한 선수한테 주먹부터 휘둘렀을 것"이라 반응했다.

2015년 7월 같은 건에 대한 형사재판을 위한 검찰 소환이 시작됐고, 재판으로 인해 유로 2016 일정에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한 콘테 감독은 신속처리절차(fast track)를 신청, 2016년 5월 16일 무혐의로 판결되었다.


장발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유베팬이나 세리에 팬들 외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탈모인이다. 과거 선수 시절부터 정수리가 휑한 심각한 원형 탈모로 나중에 머리를 심고 가발까지 착용한게 지금의 헤어스타일이다.

첼시 부임 이후, 줄곧 자국 리그에 있었고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 잉글랜드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인터뷰들을 보면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지 두세달 밖에 안 된 사람치고는 꽤 잘한다.

6 우승 기록

6.1 선수 기록

  • 유벤투스 FC (1991/92 - 2003/04)
    • 이탈리아 세리에 A (5) : 1994/95, 1996/97, 1997/98, 2001/02, 2002/03
    • 코파 이탈리아 (1) : 1994/95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4) : 1995, 1997, 2002, 2003
    • UEFA 챔피언스리그 (1) : 1995/96 ; 준우승 (2) : 1996/97, 1997/98
    • UEFA 컵 (1) : 1992/93
    • UEFA 슈퍼컵 (1) : 1996
    • UEFA 인터토토 컵 (1) : 1999
    • 인터콘티넨탈 컵 (1) : 1996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1994 FIFA 미국 월드컵 준우승
    • 유로 2000 준우승

6.2 감독 기록

  • FC 바리 1908 감독 (2007/08 - 2008/09)
    • 이탈리아 세리에 B (1) : 2008/09
  • AC 시에나 (2010/11)
    • 이탈리아 세리에 B 준우승 : 2010/11
  • 유벤투스 FC (2011/12 - 2013/14)
    • 이탈리아 세리에 A (3) : 2011/12, 2012/13, 2013/14
    •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1) : 2011/12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 : 2012, 2013
  1. /anˈtɔːnjo ˈkonte/
  2. 유벤투스 감독 부임 이전에는 4-2-4 포메이션을 썼을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의 감독이었으나 부임 이후로는 3-5-2 포메이션을 주로 썼고 무패우승세리에 한 시즌 최다 승점 및 최초로 승점 100점 돌파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리그 3연패를 이끌어냈다. 첼시 감독 부임 이후에도 4-1-4-1에서 3-4-3으로 포메이션을 바꾸더니 맨유를 4-0으로 격파하는 등 귀신 같이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순항 중이다.
  3. 그 무패는 다음 시즌까지 계속되어 49경기에서 마감하였다.
  4. 윙포워드를 거르고 모라타를 영입하여서 사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모라타는 13년 12월부터 계속 구체적인 이적설이 돌았으며 콘테가 강력히 원하였다.
  5. 전설의 잭팟투스(09-10 시즌 ~ 10-11 시즌) 시절. 이 당시 유벤투스는 7위를 2시즌 연속 찍어대고 풀럼한테 4대 1로 쳐발리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6. 당시 유베가 3-5-2를 썼던 이유는 2선 자원의 부재도 컸다. 또 피를로보다도 당시 맨마킹이 약점이라는 평을 듣던 보누치를 극대화시킨 전술이기도 하다.
  7. 로테이션에 대해 더 설명하자면 코파 이탈리아에서 아예 서브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편이었다. 무패 더블이 가능했던 11-12 시즌 결승전에서마저도 서브를 기용하였을 정도이다. 이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8. 콘테는 당초 혐의를 부인했으나 리그 진행에 차질을 우려한 유벤투스 구단의 조언에 따라 혐의를 인정하고 3개월 정지로 처분을 감면하는 사법거래(plea bargain)을 제안했다. 징계위원회는 이를 거부하고 10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가 일부 혐의를 벗어 4개월로 경감됐다. 일단 크게 징계를 때리고 아닌 게 밝혀지면 감면하는 유죄 추정의 원칙 적용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