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 진성 이씨(眞城 李氏) |
관향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시조 | 이석(李碩) |
인구 | 66,470명(2000년 통계청) |
순위 | 113 |
1 기원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구 경상북도 진보현)[1]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진보 이씨라고도 부른다. 시조 이석(李碩)의 가계는 진보현의 아전이었다고 하는데, 이석의 대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가문의 기틀을 닦았으며, 그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충숙왕대에 과거에 급제한 후 홍건적의 난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송안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판전의사사에 이르면서 가문이 번창하게 되었다. 조선조에서 과거에 58명을 배출해낸 영남의 명문가 중 하나이며, 남인 학통의 종주가문이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인물로 퇴계 이황과 흔히 이육사로 알려져있는 육사 이활이 이 성씨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와 청송군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성씨이기도 하다.
2 상세
이석의 장남 이자수는 만년에 피폐해진 진보를 떠나 안동 주촌으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안동시에서 그의 후손이 번창하게 되었다. 반면, 차남 이자방(李子芳)은 형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진보에 남았으며, 이자방의 후손들은 후평파로 갈라져서 그대로 진보에 터를 잡고 살게된다.[2] 이자수는 2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운구(云具)로 공조참의를 지냈고, 차남은 운후(云侯)는 군기사부정을 지냈다. 이 운후의 외동아들 선산부사 이정의 3남인 이계양(李繼陽)의 장남 이식의 막내가 바로 그 유명한 퇴계 이황이다. 이후 영남지방 전체에서 세거하며 살았으며, 서인정권에서도 꾸준히 과거에 급제하며 영남의 명문가로 남았다. 현재도 안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중중 하나로 남아있다.
3 특징
3.1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파
인원은 6만여명에 불과하지만 지파수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어딘가로 이주했다 하면 새로운 파를 개창하곤 한 까닭에 족보상 파만 100여파가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파가 많다. 물론 그중에서도 불천위를 모시는 지파나 작은 지파들의 큰집역할을 하는 OO종파라는 파명을 가진 지파들은 다른 지파에 비하면 높은 대접을 받는 편이다. 이중에서도 흔히 3대종파와 5대종파를 합쳐 7개종파는 문중에서도 큰집대접을 받는다.[3]
3.2 약한 주손과 강한 지손
- 진성이씨는 유난히 주손이 약하고 지손이 강한편인데, 당장에 현재 진성이씨의 종가대우를 받고 있는 부정공계의 주촌종파만 해도 위에서도 말했지만 차남의 후손들이며, 장남인 이운구의 참의공파계통들은 100여파에 달하는 진성이씨 세파 중에서 21파밖에 안되며, 특히 이중에서도 원 대종손이던 동막파의 경우 실전되어 의성이씨로 400여년을 살아오다가 1976년 비석을 통해서 복관한 일까지 있었다. 또 앞에서 말했다시피 퇴계 이황의 가문은 집안 전체로 봤을때 거의 막내집이지만, 조선 문묘에 배향되어 인정받은 선정파인 관계로 사실상 진성이씨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지파인 관계로 영향력이 엄청나다. 이러한 힘약한 주손과 강한 지손들간의 기싸움때문에 집안에서 기싸움이 적지 않은편이다. 특히 은풍파와 주촌파의 대종손갈등이라던가[4][5] 주촌종파와 상계종파의 서열문제는 진성이씨 내부에서 심심치않게 나오는 부분. 실제로 2005년에 수단이 시작된 진성이씨 대동보또한 이들 주손과 지손들의 대립으로 답보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4 분파
- 진성이씨는 기본적으로 아주 크게 참의공계,부정공계,후평파의 3대종파로 나뉘며 여기에서 5세조를 기준으로 6개의 종파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6개 종파에서 세파들이 다시 갈라진다. 단 1976년 복관한 동막파 때문에 지금은 5세조를 기준으로 7개 종파로 나뉜다. 흔히 파보를 수단할때는 이 7개 종파 기준으로 파보를 수단한다. ★가 붙은 파들은 3대종파. ☆표가 붙은 파들은 5대종파.
- 장파
- 송안군 이자수의 장남 공조참의 이운구의 후손들이다.
- 동막파 : 이운구의 장남 이양공의 차남 이희담의 후손들. 1976년까지는 상대의 기록이 실전되어 의성 이씨라는 별개성씨로 살아왔으나, 1976년 묘지의 석비에서 상대의 기록이 확인됨에 따라 진성이씨로 복관하였다. 1976년이전까지는 이들의 기록이 실전되었었기때문에 임자보 및 경자보에는 이들이 기재되어있지 않다.
- 양리파: 중시조 14세조 이준만
- 월계파: 중시조 14세조 이희만
- 향리파: 중시조 14세조 이억휘
- ★은풍종파 : 이운구의 차남 이양검의 차남 이여담의 후손들이다. 동막파 복관전까지는 장파의 가장 큰집이었던 관계로 참의공계의 대종은 이쪽이 맡고 있다. 본디 생현파로 분파되었지만 현재 생현파는 여담의 3남 이윤정의 후손들의 세파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 생현파: 중시조 6세조 이윤정
- 병방파 : 이양검의 삼남 이종담의 후손들이다.
- 이송정파: 중시조 13세조 이옥선
- 방계파: 중시조 13세조 이세필
- 의암파: 중시조 13세조 이두필
- 귀재파: 중시조 13세조 이삼필
- 오상파: 중시조 7세조 이막종
- 국란파: 중시조 6세조 이윤영
- 화지동파: 중시조 9세조 이귀향
- 임천파: 중시조 12세조 이사명
- 화지파:중시조 12세조 이오명
- 달전파:중시조 12세조 이정태
- 적성파:중시조 10세조 이귀환
- 동촌파:중시조 10세조 이기명
- 사의파:중시조 9세조 이기향
- 답곡파:중시조 9세조 이만향
- 부정공계
- 송안군 이자수의 차남 군기사부정 이운후의 후손들이다.
- ★☆주촌종파:이운후의 독자 선산부사 이정의 장남 이우양의 후손들. 부정공계의 종가역할 및 진성이씨 전체의 대종가라고 하면 이 지파를 가리킨다.
- 주촌파(낙금헌계):9세조 이희옹
- 연곡파:10세조 이정수
- 영산파:13세조 이만신
- 번곡파:9세조 이윤황
- 정로위공파:9세조 이희윤
- 아호파:12세조 이조성
- 이동파:9세조 이희열
- 일직파:8세조 이한
- 대곡파:13세조 이보
- 모개파:10세조 이득춘
- 개곡파:10세조 이예준
- 정자동파:9세조 이희맹
- 사곡파:9세조 이희정
- 구눌파:11세조 이명준
- 오상파:11세조 이문준
- 토현파:10세조 이두춘
- 송곡파:10세조 이아춘
- 오동파:12세조 이시준
- 이계파:7세조 이감
- 구로동파:9세조 이형남
- 귀천파:9세조 이호남
- 호동파:7세조 이종
- 망천종파 : 선산부사 이정의 차남 이흥양의 후손들. 큰집인 주촌파는 대종가고, 작은집인 온혜파에서는 송재 이우, 퇴계 이황, 온계 이해등 걸출한 인물이 많아서 번성한 반면 망천파는 대파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분파나 인원이 상당히 적다.
- 진사공계 망천파:9세조 이예강(무후)
- 교위공계 망천파:7세조 이호
- 우현파:10세조 이회빈
- 항곡파 : 8세조 이문정,7세조 이희복[6]
- ☆온혜종파 : 선산부사 이정의 삼남 이계양의 후손들. 퇴계의 후손들인 상계종파도 이 온혜파의 지파에 속한다. 집안전체에서는 막내파지만 5대불천위파 중에서 4개 불천위파가 이 지파에 속할정도로 인원도 많은편. 중시조 이계양의 직계인 온혜종파는 장남 이잠과 장손 이연이 요절했기때문에 차남 이하의 후손들로 이어져오고있다. 퇴계의 숙부인 송재 이우의 송당종파, 퇴계의 넷째형인 온계 이해의 백당종파, 퇴계의 후손인 상계종파가 세파에 속해있다.
- 송당종파:6세조 이우
- 반초당파:11세조 이명익
- 백당종파:7세조 이해
- 상계종파:7세조 이황
- 동현파:12세조 이희간
- 노곡파:11세조 이홍원
- 이곡파:11세조 이홍정
- 지동파:11세조 이홍익
- 여포파:9세조 이수도
- 석교파:10세조 이의적
- 봉현파:10세조 이경적
- 지계파:10세조 이효적
- 백송파:8세조 이굉
- 화산파:12세조 이봉년
- 분동파:12세조 이교년
- 계현파:12세조 이상년
- 죽류파:10세조 이흥남
- 우포파:10세조 이경남
- 영해원고종파:8세조 이성
- 대곡파:11세조 이홍빈
- 부곡파:11세조 이홍혐
- 월전파:10세조 이윤경
- 입석파:11세조 이홍덕
- 영양파:10세조 이윤신
- 금곡파:11세조 이철남
- 대죽파:7세조 이의
- 용궁파:8세조 이헌
- 진걸파:8세조 이재
- 송당종파:6세조 이우
- ★후평파 : 시조 이석의 차남 이자방의 후손들. 5세조 이선호를 중시조로 삼고 있다. 이들은 선친의 역할이었던 진보현의 이족역할을 승계했다. 이때문에 경자보에는 이들의 후손들은 기재되어있지 않다.
5 주요 세거지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후평파)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동막파)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생현파)
- 경상북도 예천군 하리면 은산리(은풍종파)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병방파)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국란파)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주촌종파)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반초당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마애리(망천종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온혜종파,온계파,상계종파 등)
-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옥천파)
6 유명인
- ↑ 진보군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청송군에 병합.
- ↑ 이자수의 후손들은 조선조에 양반계층이었기때문에 사족계라고 부르며, 이자방의 후손들은 선친의 향리역할을 승계했기때문에 이족계로 부르며, 진보에 남았기에 진보파로도 부른다
- ↑ 부정공계의 대종가인 주촌종파가 3대종파와 5대종파에 모두 속하여 7개 종파이다. 3대종파는 집안의 큰줄기가문들인 은풍종파(참의공계 대종가),주촌종파(부정공계 대종가),후평파(송안군 이자수의 동생 이자방의 후손)를 가리키는 것이며, 5대종파는 불천위가 있는 5종파 주촌종파,온혜종파(퇴계의 조부 이계양의 직계후손),송당종파(퇴계의 숙부 송재공 이우의 후손),백당종파(퇴계의 넷째형 온계 이해의 후손),상계종파(퇴계 이황의 후손)를 가리킨다.
- ↑ 이 갈등은 수십년 수준이 아니라 이미 몇백년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갈등이다. 애초에 운구-운후형제 중 누가 형이며 누가 동생인가 부터도 이미 퇴계시절부터 논란이었으며(가첩에는 운구가 형으로 기재되어있었으나, 제사는 주촌종파가 지내고 있었기 때문), 이후 1645년 형제순서논란이 정리된 이후로도 이 두 종파의 갈등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 ↑ 이 운구·운후형제 순서 논란이 정리된 사연도 기구한데, 전술했다시피 가첩에는 분명 운구가 먼저 기재되어있었긴 하나 당시에도 시조에 대한 제사는 주촌종파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때문에 운구와 운후형제 중 누가 형인가로 은풍종파와 주촌종파간에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원손(遠孫) 이시립이 모후의 장사를 지내기위해 터를 찾던 와중에 시조 이석과 전후처의 3묘 그리고 운구의 3남 주부 이양호의 무덤을 발견했는데, 이과정에서 양호의 묘지석에 선대의 기록이 적혀있었다 시립은 묘지석을 숨기고 양호의 무덤을 파묘하고는 거기에 모친을 안장했다. 이후 본인도 모친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는데, 이후 관가에 이 사실이 고발되면서 시립의 양친과 시립의 묘는 파묘되었고, 운구·운후형제의 순서논란이 종식되었다. 물론 그뒤로도 대종손갈등은 끝나지 않았고 현재도 시조의 제사는 주촌종파에서 지내고 있다.
- ↑ 망천종파와 교위공계 망천파를 제외하고 모두 항곡파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