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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식타쉬 JK No.88 | |
차네르 에르킨 (Caner Erkin) | |
생년월일 | 1988년 10월 4일 |
국적 | 터키 |
출생 | 터키 발리케시르 |
키 | 181cm |
주발 | 왼발 |
포지션 | 수비수 |
유스팀 | 베스텔 마니사스포르 (2002~2004) |
소속팀 | 베스텔 마니사스포르 (2004~2007) CSKA 모스크바 (2007~2010) 갈라타사라이 SK (2009~2010) (임대) 페네르바흐체 SK (2010~201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6~ ) 베식타쉬 JK (2016~ ) (임대) |
국가대표 | 47경기 2골 |
1 클럽
에르킨은 터키 2부 리그의 마니사스포르에서 유스 선수 시절을 보냈고, 프로 데뷔 시즌인 04-05 시즌에 구단이 터키 쉬페르 리그로 승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2005년 10월 19일 데니즐리스포르 전에서 쉬페르 리그에 데뷔한 그는 데뷔전에서 2골을 터트리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2007년 모스크바로 떠날 때까지 고향 팀에서 총 47경기에 출전, 4골을 기록하게 된다. CSKA 모스크바에서도 출전 기회를 자주 부여받으며 활약했는데 챔피언스 리그 출장 7경기를 포함해 2년 간 36경기에 출전했고 2골을 기록, 07-08, 08-09 두 시즌 연속으로 러시안 컵을 들어올리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이후 갈라타사라이에서 1년 간 임대생활을 보낸 그는 임대 구단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하여 오랜 세월 활약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터키 쉬페르 리그 수위의 레프트 윙백으로 명성을 높이게 된다. 특히 2011-12 시즌 막바지 부르사스포르와의 터키 컵 결승전에서 4분 만에 득점하며 팀의 4-0 대승의 선봉장이 되었고, 2012-13시즌에는 페네르바흐체를 유로파 리그 4강으로 이끄는 결승골을 쏘아 올리기도 하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팀을 위해 맹활약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3-14시즌엔 마침내 쉬페르 리그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쉬페르 리그 베스트 선수로 지명되는 등 커리어 하이라 볼 수 있는 시즌을 보냈다. 그 보상으로 재계약하여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그렇게 페네르바흐체에서 총 157경기에 출장, 9골을 기록한다.
그러나 2015-16 시즌엔 선수교체 과정에서 감독과 심한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구단은 그를 잡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가 FA로 풀리게 되었다는 소식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FC, 첼시 FC와 같은 많은 유럽의 강호들이 눈독을 들였는데 특히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우 터키 언론 보도로 선수와 합의했다는 소식까지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선수를 붙잡은 것은 세리에 A의 명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6월 1일 오피셜을 띄웠다. 보도에 따르면 관심에 비해 실제로 받은 제안은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영입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해임된 이후 급격히 입지가 축소되어 결국 1경기도 못뛰어보고 인테르를 떠나게 되었다. 베식타쉬 JK와 합의하여 임대를 떠났고, 완전이적 조항이 포함된 거래라 웬만하면 조항이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2 국가대표
U17팀 부터 국가대표 라인업을 차근차근 밟아나간 에르킨은 2006년에 가나와의 평가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고, 2012년 6월 5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첫 득점하였다. 유로 2016에 출전하여 레프트백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팀은 D조 조별 예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떨어졌다.
3 플레이스타일
처음엔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선수인 만큼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는 레프트 윙백으로 왼발의 뛰어난 킥력과 정확도를 바탕으로 측면 공격 기여도와 세트피스 상황 기여도가 높은 선수이다. 2016년까지 322경기에 출장하여 무려 5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그 순도도 높은 편. 그러나 수비력에는 물음표가 붙는 선수이고, 거친 플레이를 자주 하다 보니 심판과 판정 관련해 자주 시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4 기타
2010년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을 한 명 두고 있었으나 2016년 1월에 이혼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말일에 Şükran Ovalı라는 터키의 연예인과 열애설 및 결혼설이 터졌고, 에르킨 본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사실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