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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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차영화(車榮華 / Myoung-hwa Cha)
생년월일1957년 6월 27일
출신지광주광역시
출신학교광주서림초-전남중-광주일고
포지션내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프로 원년 멤버
소속팀롯데 자이언트 (1976~1981)
해태 타이거즈 (1982~1989)
지도자 경력해태 타이거즈 수비코치 (1990~2000)
KIA 타이거즈 수비코치 (2001~2005)
KIA 타이거즈 재활코치 (2005~2007)
KIA 타이거즈 주루 및 작전코치 (2007)
KIA 타이거즈 2군 감독 (2007~2009)
KIA 타이거즈 수비코치 (2009~2010)
KIA 타이거즈 3군 총괄코치 (2010~2013)

1982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차영화(해태 타이거즈)정구선(청보 핀토스)

1 소개

KIA 타이거즈의 前 선수 및 코치, 감독.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야구인생을 KIA와 해태에서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하다.

2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에 다니던 그는 고교시절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다 1976년 실업구단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하게 된다. 1977년 전지훈련에서 롯데 오리온즈의 감독의 관심을 받기도. 이후 프로 입단 전까지 올스타전에 여러번 출전도 하고 국제대회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3 프로 시절

그렇게 아마추어 생활을 하다가 1981년 고향팀인 해태에서 지명을 하여 프로원년에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게 되었다. 1989년까지 내야를 골고루 보며 매끄러운 수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증거가 수비로만 뽑았던 원년 골든글러브. 타격으로는 평범 그 이하였지만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후 1989년에 은퇴를 선언한다.

4 코치, 감독 시절

은퇴 이후 구단측에서는 곧바로 차영화를 코치로 기용하였고 모기업이 바뀐 이후에도 수비며 작전, 주루 코치를 하는등 명칭만 바뀌고 한 팀에서 코치로 지내다 06년도에 감독겸 수비코치를 07년도에 시즌초반 잠시 주루, 작전 코치를 맡다가 2군 감독을 다시 맡았고 09시즌 종료후 2군 감독에서 현재까지 3군 총괄코치를 지내고 있다. 원래는 10시즌부터 2군 수비코치로 기용할 방침이었지만 3군이 신설되면서 그냥 3군 총괄코치로 눌러앉게 되었다.

4.1 낙상사고

이렇게 3군 총괄코치를 하던 2013년도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 10월 4일 낙상사고로 경추골절상을 입었다. 선수단과 팬들은 이런 날벼락같은 소식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선수단은 아직 재활중인 김동재코치를 겸해서 돕는 일일호프 행사를 열기도 했다. 2013년 12월즈음 소식에 따르면 눈만 깜빡이다 손도 조금씩 움직인다고 한다. 이듬해 14년도에도 차영화 전 코치를 돕는 일일 호프 행사를 열었는데 소식에 따르면 아직도 투병중 이라는듯.

5 기타

야구계 사람들 말에 따르면 선수, 코치생활을 하면서 다른사람들에게 단 한번도 언성을 높인적이 없다고 한다.[1] 그래서 2, 3군선수들은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사고소식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실업팀 롯데에서 6년동안 선수생활을 한것을 빼면 광주를 떠나 본적이 없는 광주 토박이이다.

해태 코치시절 1990년대 중반에 함평에 사비를 들여 훈련장을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비록 무산되었지만 함평-KIA 챌린저스 필드가 지어지면서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아들 차정구도 야구선수였지만, 프로 지명은 받지 못했고 2006년 삼성 라이온즈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1년만에 방출되었다. 2012년에 KBO 심판이 되었다. 그의 광주일고 동기로는 김성계, 모창민이 있었다.
  1. 1980~1990년대 타이거즈가 구타와 폭력으로 유명한 팀이라는걸 생각해보면 특이한 케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