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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50경~121)
자는 경중(敬仲).
105년경에 나무껍질, 베옷, 고기잡이 그물 등을 사용하여 ‘채후지(蔡侯紙)’라는 종이를 발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기록상 종이를 만든 것으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사람이기 때문에 대개 이 사람이 종이를 발명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현재 학계의 의견은 채륜이 처음부터 제지법을 발명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제지기술을 개량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대세이다. 이는 채륜 이전에도 원시적인 형태의 종이가 존재했다는 것이 발굴 등을 통하여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확장해서 보면 이집트의 파피루스같은 것인데, 채륜이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제지법 중 혼합재료를 섞어서 펄프로 압축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이전의 종이가 섬유재료를 고르게 다듬어서 펴놓은 것이었다면 채후지는 최초의 합성 종이로 재료를 액상화한 후 틀을 통해 펴놓는 작업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중상시로서 환관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보다 몇십년 후에 나오는 십상시들의 더러운 오명과는 달리 청류파였지만 조정의 궁중암투에 깊이 개입했다. 화제 시절 두황후를 지지하고 송귀인을 자살로 이끌었는데, (AD82), 이후 두씨일족이 몰락하고 송귀인의 손자인 안제가 제위에 올라 이 일을 추궁하자 채륜은 자살했다고 한다.
후대의 환관들에게는 전한 시대의 사마천, 명나라의 정화와 함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추앙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