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白吏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에게 의정부에서 내리는 칭호이다. 관리로서 청백리의 호칭을 받는 것은 대단히 큰 영예로 간주되었으며[1] 후손들에게도 그 은덕으로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2]
선발 과정은 의정부 당상관 및 사헌부, 사간원 등의 수장들이 해당 인물을 천거한 뒤 임금의 결재를 통해 의정부에서 결정하였다.
청백리 호칭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맹사성, 최만리, 이원익, 이항복, 김장생, 류관 등이 있다. 종종 부자와 아들이 청산리 호칭을 받은 경우도 종종 있다 카더라.
통념과 다르게 황희는 청백리긴 커녕 사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라 해당되지 않는다.[3]
- ↑ 오죽했으면 전해져오는 말이 1대가 청산리 되는 일이 3대가 영의정을 역임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할 정도였다.
- ↑ 다만 실제로 '이 특전을 사용해서' 관직에 오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관직에 뜻이 있다면 저런 영광된 자손이라도, 아니 영광된 조상님 얼굴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과거 시험을 공부해서 관직에 나갔기 때문.
- ↑ 꽤나 사적인 문제가 많았던 관계로 링크를 타도 읽기 귀찮은 위키러들을 위해 대충 현대식으로 요약, 정리하자면, 장관급 인사가 검찰총장의 아들인 사위(정략결혼)가 멋대로 시민을 갈궈서 사망에 이르게한 사건을 덮겠다고 사건내용과 판결문 조작, 청탁, 곳곳에 뇌물 공세까지 하질않나, 아들들은 꼴에 공금횡령에 청와대(동궁전) 창고의 귀중품을 뽀려가지 않나, 국유지를 멋대로 사유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나, 어쨌든, 2대가 쌍으로 처신이 불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