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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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의 치미.

1 개요

치미는 솔개꼬리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치미라고 부르고, 중국에선 치문(鴟吻)이라 부르는데 뜻은 같다. 동양 건축에서 건물의 장식을 위해 사용되는 기와의 한 종류에 속한다. 주로 건축물의 맨꼭대기인 용마루 양 끝에 설치한다. 꼭 궁궐에 한정되어 사용되진 않았지만 지붕 위에 무언가를 더 올린다는게 대단히 사치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불교 사찰같은 종교 건축물들이나 왕궁 정도는 돼야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중국과 일본 건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양식이기도 하다.

2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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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식용 기와의 형태. 각각의 형태의 유사성을 눈여겨 볼 것.

3 용미

고려시대 관경변상도에 나타난 용미현대의 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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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겼다. 고려시대엔 이런 형태의 장식기와를 주로 썼다.
치미는 이후 용미->용두와 취두의 형태로 변형되어가며 건축을 장식하는 장식용 기와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간다. 정확히는 송나라의 양식이 수입된 고려시대부터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용미가 쓰였고, 조선시대에는 용미가 좀 더 간소화된 형태의 용두와 취두가 쓰였다. 치미가 건축물 자체의 위엄을 높이고 하늘과 땅의 매개자인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 주술적인 의미로 쓰였다면, 용미는 위엄을 높이는 용도 이외에도 수신水神인 용의 기운을 형상화하여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의 안녕을 바라는 액막이의 역할 또한 갖게 되었다.

용미를 쓴다는 것은 정말로 사치스럽고 격조 높은 행위였기 때문에, 서긍의 고려도경에 보면 거란의 사신이 올 때마다 개경 사람들이 건물 위에 올려놓은 용미와 치미를 철거해서 숨겨놓았다는 묘사도 있다.(...)

원류인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후로 용미를 비롯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기와가 많이 쓰였지만, 한국에서는 조선시대로 가면서 점차 장식기와가 생략되거나 형태가 단순화되는 차이를 보인다. 일본에서도 후대로 갈수록 생략되는 경향이 있지만, 오사카성 천수각 위에 올려진 금박 입힌 용미 같은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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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용미는 제한적이나마 궁궐 건축에 사용된 적이 있다. 강화행궁과 외규장각 전도에 묘사된 용미는 무려 금칠까지 되어있다.

4 용두와 취두

조선 후기의 취두용두경회루의 장식기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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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로 가면서 장식 기와는 더욱 형태가 단순해진 취두와 용두가 주로 쓰이게 된다. 취두와 용두가 함께 쓰이기도 하고, 둘 중에 하나만 쓰이기도 한다. 같이 쓰이는 경우 취두는 주로 용마루 양끝에 올라가고, 용두는 내림마루와 추녀마루 사이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경회루의 장식기와 배치를 보면 조선후기 장식기와의 용례를 잘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아주 격조높은 건축에만 제한적으로 장식기와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용되는 빈도와 종류 또한 적어졌다. 근대화로 인해 신분과 격조에 따른 제한이 없어지고 최근에 새로 지어지는 한옥이나 사찰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치미나 용 모양 장식 기와를 전통의 재발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재도입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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