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현대 건축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건축이다.[1]
목차
개요
firmitas, utilitas, venustas.[2]
建築
Architecture
본래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건축'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집 등의 건물을 짓는 것을 조가(造家), 조영(造營), 영조(營造) 등의 단어로 표현하고는 했는데, 일본에 동경제국대학이 생기며 일본 교수들이 서양의 architecture라는 단어와 견줄만한 그럴싸한 단어를 찾아 자신들을 목수들과 차별화하려 하였고 그 결과 '건축'이라는 단어가 탄생하였다. 조선은 그대로 수입했지
간단하게 보면 건물을 짓는 것, 또는 건물을 짓는 일.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단순히 짓는 것에 국한된다. 기술가정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건축은 인간이 편안하고 쾌적하며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가히 공학과 예술, 사회학, 인문학이 모두 접목된 종합 기술로서 인간에게 최적화된 생활 환경을 창조하는 것. 서양에서 Architect와 Builder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4] 다만 한국에서는 이를 뭉뚱그려서 하나로 본다. 현시창,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만 현시창.
건축은 예술로도 공학으로도 볼 수 있는데, 예술로 보기엔 일단 요구하는 기능이 너무나도 많고 무엇보다 예술은 싫으면 안 볼 수 있지만 건축은 안 볼 수가 없다. 클레멘타인과 같은 명작영화는 봉인하면 그만이지만 조선총독부 같은 건 철거 외에는 답이 없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책임이기 때문에 마음껏 하고싶은대로 예술혼을 불태울 수만도 없는 것이다. 즉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공공성을 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사회적인 책임보다도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발목을 잡는다. 그림은 누가 보기싫다고 하더라도 물감과 종이가 있으면 그릴수 있으나 돈이 없다면 땅을 살수도 없고 타일한장을 깔수도 없다.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악이나 회화등과 다르게 남의 부탁을 받아 남의 돈으로 작품을 하기때문에 엄청난 제약을 받고 대부분은 평생 작품다운 작품활동을 해볼수 없는 직종이다. 건축주(主)가 갑, 건축가는 을의 입장. 즉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기 쉽다는 것.
그렇다고 건축주의 개인적인 욕망을 걸러내지 않고 실현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상기했듯이 공공성을 띠기 때문.
즉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분야인 동시에 모두가 영향받는 분야이다.
이러한 건축의 중요함을 잘 나타내는 말로 "사람은 건물을 만들지만 그후엔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 라는 윈스턴 처칠옹의 말씀이 있다.- ↑ 해당 인물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건물은 예술성으로 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방음처리를 할 수 없어서 발생한 물소리가 너무 심하게 들리는 하자가 있어서
야 저 폭포소리 좀 안나게 하라건축의 3요소 중 나머지인 안정성과 실용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있는 건축물이기는 하다. - ↑ 견고함 편리함 아름다움 앞의 두 단어는 라틴어를 몰라도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맨 뒤의 그 단어는 미의 여신 이름에서 온 단어 맞다. 구조 기능 미라고도 한다.
-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할때 그 비트루비우스 맞다
- ↑ 심지어 "The Architect로 쓸 경우 '조물주'가 된다!"라는 말로 많은 건축교수나 건축사들이 말을 하곤 하지만, 거의 용례가 없는 단어이며 실제로 그런 의미로 서양인들이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성경 등에서는 'the maker'라는 말로 조물주를 표현한다. 이런 식의 단어 선택은 한국 건축인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데, 예를 들면 "'우주(宇宙)'가 '집 우(宇)'와 '집 주(宙)' 자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우주는 집이고 우주를 만든 신은 집을 만든 것이기에 아키텍트이며, 우리 아키텍트들도 따라서 신의 속성이 있느니 어쩌니..." 이런 경우는 겉멋이 든 허세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