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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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괄

한국의 전통 가옥. 한반도의 환경과 한국인의 재래식 의식주 생활 패턴에 맞춰 발전한 여러 특징들을 가지며 흔히 사진 속 목조 구조의 기와집을 떠올리지만 볏짚과 황토로 지은 초가집도 한옥의 범위에 속한다.

한옥이라는 말 자체는 구한말 문호 개방과 해방 후 현대화를 거쳐 '양옥(洋屋)'이 급격히 보급되면서 이에 대비되는 의미로 재래식 가옥들을 '한옥'이라 일컫으면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별칭으로 '조선옥(朝鮮屋)'[1]이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한옥 자체가 곧 주거 형태였으므로 오늘날 그냥 집을 집이라고 하듯이 주가(住家), 제택(第宅) 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형태에 따라 아파트, 주택이라고 나누듯 그냥 기와집, 초가집으로 구분했을 것이다.

2 역사

한옥은 석기 시대 막집, 움집같은 수혈식 구조에서 시작됐으며 역사 시대까지도 마한은 비슷한 형태의 주거가 이뤄졌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가야의 고상 가옥, 만주같은 북부에서는 구들이 사용된 원초적 한옥 구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국 시대의 가옥은 여러 토기나 벽화 등 당시 가옥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 유물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 평민들이 살던 곳은 단칸집이긴 하지만 여러 기둥을 세워 지은 비교적 넓은, 현대인의 기준에서 가옥이라 부를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게 됐다. 고구려같이 추운 북부는 상술한 구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열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과 문을 좁게 튼 반면 남쪽에서는 보다 개방적인 형태를 띄었다. 한편 이 시기 중국에서 기와단청이 전래되어 왕궁같은 상류층의 가옥들은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기와로 된 화려한 가옥 형태에서 주거 생활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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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신라기를 거쳐 고려 시대에는 귀족 문화의 융성과 함께 매우 사치스러운 주택을 짓고 살았다. 입식 생활을 하여 타일을 깔기도 했고, 단청을 칠하거나 복층 구조, 누각에 기단을 쌓고 난간을 설치하는 등 조선 시대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한옥 양상이 나타났다. 또한 풍수지리 사상의 전래와 함께 배산임수와 같은 건축 법칙들을 따르기도 했으며 이 시기 마을 유적에 따르면 온돌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물론 이 시기 하층민은 땅을 파고 지은 수혈식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조선 시대에는 사치를 자제하는 유교 문화의 전래와 함께 보다 검소한 주택 형태를 추구하게 되었지만 전기까지는 궁궐에서 청기와를 사용한다던지, 복층 구조를 지닌 집 등 마냥 수수했을거라는 조선 시대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기록들도 상당수 있다. 지방에서는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한옥 고택들처럼 공간을 넓직하게 사용한 건물군으로 이뤄진 주택, 초가집 등이 있었으며 한양같은 도시에는 북촌 한옥들처럼 단일 건물이 ㅁ자나 ㄹ자로 꺾이고 꺾여서 공간 활용도를 높인 구조가 구한말 사진에서 확인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 경성 사진을 보면 이런 도시형 한옥들이 빼곡하게 가득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 전쟁 동안 서울 및 전국이 파괴되고, 또 새마을 운동과 같은 한국인의 주거 형태에 대한 큰 변화를 거치며 재래식 가옥들이 신식 가옥들로 대체되면서 한옥은 과거의 주거 형태로 남게 되었다.

그 외 큰 틀에서의 한국 건축 역사는 해당 문서를 참조.

3 구조

3.1 뼈대의 형태


크게 수직으로 하중을 지탱해주는 기둥과, 가로로 하중을 지탱해주는 보로 나뉘는 구조다. 기둥밑에는 주춧돌을 두어 땅속의 수분이 기둥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기둥과 보로 토대를 구성했으면 그위로 서까래를 얹어 지붕의 뼈대를 만들고 널판지와 기와를 얹는 식이다.

3.2 지붕의 형태

한옥은 조선왕조의 신분제도의 영향을 받아 지붕의 형태가 다르게 보이기도 하였는데 왕족이나 양반 계급의 경우는 장식적이고 호화롭게 보이는 기와 지붕을 사용하였고 일반 평민 계급의 경우는 짚으로 이은 초가 지붕을 사용하였던 것이 특징이다.

기와집의 경우 장식적인 면에서 치중했기 때문에 주택의 기능면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는 뛰어난 건축물이 되었으며 초가집의 경우 기능성과 안전성 면에서 치중했기 때문에 겨울에는 열(熱)을 뺏기지 않아 보온(保溫)이 유지되는 편이고 비가 내릴 때 비가 스며들지 않아 지붕 재료로 사용했던 것이 특징이다.

지붕의 형태는 대략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맞배지붕은 박공이라고 부르기도한다.

3.3 주거의 형태

한옥은 신분제도가 짙었던 조선왕조 때 이르러서 계급마다 주택 선호방식이나 건축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왕족(王族)이나 상류층 양반의 경우 신분과 남녀 그리고 장유(長幼)를 구분하여 공간을 만들고 주거 공간을 상중하로 나뉘었는데 상(上)의 공간은 안채와 사랑채가 속하여 남녀 양반이 주로 사용하였고 중(中)의 공간은 중문간 행랑채로 양반을 보좌하는 청지기나 서기(書記) 그리고 집사 등이 사용했으며 하(下)의 공간은 대문 주변에 위치해 있는 행랑채로 주로 양반댁 머슴이나 노비들이 사용하던 점을 보아 사람 뿐만 아니라 한옥의 구조에 있어서도 신분제도가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 평민의 경우에는 양반과 달리 장식적인 면보다 기능성과 안전성을 중시하여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를 사용하고 벽에 짚과 흙을 발라서 적은 비용으로 방수와 보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짓는 점이 특징이었다.

3.4 지역별 특징

한옥은 한반도 지방의 기후나 성향에 따라 위치나 건축방식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추위가 잦은 북부 지방의 경우 외부에 불어오는 한기(寒氣)를 막아내고 보온(保溫)을 유지하기 위해 방을 두 줄로 배열하는 겹집 구조와 지붕이 낮아보이는 것이 특징이었지만 더위가 잦은 남부 지방의 경우는 자연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방을 한 줄로 배열하는 홑집 구조와 지붕이 높아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지방마다 건축방식이 다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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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별 가옥의 평면도

4 제작 및 건설


한옥의 구조는 부재간의 이음과 맞춤을 통한 짜맞춤 구조이며 이를 위해 각 부재를 숙련된 목수가 알맞은 크기와 모양으로 다듬은 후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숙련된 목수가 전동공구나 수공구 등을 이용하여 현장에서 부재를 직접가공하였으나, 기술이 발전하여 공장에서 미리 부재를 가공하여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만 목재의 특성상 수축과 팽창을 하므로 현장에서 재가공하는 수고가 있다.[2]

한옥의 시공은 도편수 혹은 대목장이라는 지도자급 기술자에 의해 주도되는데, 이들 도편수는 단순목수가 아니라 설계부터 자재 조달, 시공, 감리까지 건축과 관련된 전 과정을 커버하는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는 총괄 책임자의 역할을 맡는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전통건축학과가 존재하여 한옥시공 방법을 배운다. # 그외에도 전국각지에 사설 및 국립 한옥학교등이 있어서 몇개월에 걸친 교육과정을 통하여 한옥의 제조공정을 배우는 직업학교가 여럿있다.

한옥목수에 대해서는 목수항목 참고.

5 현재


2015년 6월 개원한 서울 흥천어린이집. 사진출처:불교신문 2015년 10월 국토교통부 올해의 한옥상을 수상했으며, 서울시 최초의 한옥 어린이집이다.

불편하다는 이미지로 현대 한국인들에 의해 멀리되었지만 최근 들어 그 가치가 상당히 재평가되고 있다. 6, 70년대에만 하더라도 그저 헐어버릴 대상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웰빙 바람과 함께 아토피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아파트에 대비되며 건강할거란 이미지로 주목받더니 2010년대에는 사람들이 보다 더 개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특유의 고풍스런 멋과 전통이 있는 한옥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가고 있다. 기존의 고택들이 개량되어 TV나 인터넷 블로그 등에 소개되기도 하며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도 거주 목적으로 신식 한옥 마을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시 또한 북촌, 서촌의 한옥 보존 계획을 넘어서 성북동 재개발 지구에 시범적으로 현대화 된 한옥 주택 지구를 만들었다.

북촌 한옥 마을이나 전주 한옥 마을같은 관광지의 인기에 따라 주거지로서의 한옥 외에도 여러 도심지에서 상업용 한옥들을 볼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인천 송도의 한옥 마을이 있다.

건축 공법적으로도 수입목재의 등장으로 길이가 긴 나무를 구하기 쉬워지다보니, 조선 후기 건축에서 비교적 짧은 나무를 이어 긴 부재를 만드는 방식이 다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와 함께 복층 구조같은 대형 한옥 구조가 쉬워졌고 또 현대식 시설을 도입하여 기존의 불편하다는 편견에서도 탈피하고 있다.

5.1 한옥에 대한 교조적 이미지

하지만 이런 2층 한옥이나, 화장실, 세면대가 설치된 한옥을 보고 "이건 한옥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한마디로 편견에 의해 범하게 되는 오류이다.

당장 상술한 한옥의 역사 항목처럼 한국의 전통 가옥은 수천년의 긴 세월동안 당연히 특정한 형태를 늘 유지해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진정한 한옥은 땅파서 풀떼기를 얹은 집이 되어야한다. 시대적 발전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계속해서 변형되고 계승되어온, 유동적인 이미지로서 이해하는 것이 한옥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려온 전통 가옥 양식의 특정 요소들을 가져와 현대인의 요구와 기술과 접목시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당연히 전통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한옥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서서 전통을 계승하고 유지해나가는 일인 것이다.

여담으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수한 단층 한옥이 조선 말 절대적으로 보편화 된 것에 대해서는 17세기 조선 소빙하기설과 연결지어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당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사람들이 나무를 다 땔감으로 베어가 자재로 쓸 목재가 없어지고,[3] 구들장을 까는 것이 필수가 되면서 복층 구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서 전국적으로 그러한 형태로 나아가게 됐다고 한다.

5.2 한옥의 장점과 단점

물론 아직 한옥이 현대 한국인의 주거 형태의 한 축으로 다시 일어서기에는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남아있긴 하다. 과거 한옥과 양옥 교체기를 경험한 세대들의 화장실이나 온난방같은 문제들은 많이 해결되고 있고, 또 최근들어 정부 차원에서도 자재 규격을 설정하는 등 신축 한옥의 비용 절감과 용이함을 늘리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현대식 주택처럼 다수의 방과 화장실, 거실, 부엌들을 한데 묶는 넓은 내부 공간 뽑기와 한옥의 필수 요소인 기와 지붕의 조화가 지붕의 구조적 문제로 매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그 외 전체적인 전통 건축에 대한 단점 문제는 한국 전통 건축의 장단점 문서 참조.
  1. 현재는 주로 북한에서 쓰임.
  2. 전주한옥마을 단지나 한옥공사장을 보면 흔히 전기톱이라 알려진 체인톱으로 부재를 가공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3. 구한말 기록과 사진을 봐도 한양 주변의 산들이 전부 민둥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