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목은 <선화[1]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줄여서 고려도경이라고 한다. 북송의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1123년에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로서 고려시대 생활 풍속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오늘날 고려사 연구자들이 필히 참고하는 도서 가운데 하나이다.
선화 5년인 1123년은 고려 예종이 승하하고 인종 임금이 즉위한 다음해인데 북송은 예종을 조문하고 인종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이 사신단은 벽란도를 통해 고려의 도성 개경의 사신 숙소인 순천관에 한달가량 머물렀는데 이때 보고 들은것들 중에서 중국과 같은 것은 버리고 중국과 다른 풍속을 기록해서 3백여 조가 되었고 이를 정리하여 40권으로 만들었는데, 물건은 그 형상을, 일은 설명을 달아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도경이라는 말 답게 원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책 간행 2년만에 정강의 변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림을 날려먹었다. 아래에도 언급하지만 고려도경 자체는 그 한계 때문에 정확도가 의심되고 있는 책이라서, 시간에 없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타국인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진 사신의 생각보다는 눈으로 보는 경험쪽인 그림이 더 중요한데 그 그림이 날아갔다. 물론 개화기 서양인들이 제대로 이해 못하고서 그린 조선에 대한 온갖 말도안되는 그림들을 보면 그림을 완벽하게 믿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사실 서긍도 이 책 한부를 따로 가지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다가 나중에 그림을 분실한 상태로 다시 찾았고 한다. 이때 다시 그림을 그릴수도 있었지만 안 내켜서 안했다고(...). 이후 1167년 서긍의 조카 서천이라는 사람이 그림없는 버전으로 재간행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계림지(鷄林志) 등을 참고 하여 건국부터 풍속 등까지 내용을 소개하고, 작업 과정 등을 설명하였는데 아무래도 사신이 고려를 오가는 과정과 개성에 틀어박혀서 보고 들은 정보 위주로 중국인 기준으로 송 황제에게 올린 글이기 때문에 교차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몇 가지만 들면, 고려도경에서는 서긍이 역사 기록을 대충 기록하여 고려는 고구려부터 쭉 계속 역사가 이어진것으로 설명하고 있어 고려의 역사와 관리 등급을 설명하는 부분이 고구려와 뒤섞여 있다. 오대십국시대와 송나라 시대에는 북쪽에 요나라와 금나라가 있어 육상에서 교역을 할 수 없었고, 해상으로만 교역을 해서 한반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그렇다. 고려군의 활이 화살은 멀리 날아가나 힘이 약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참조링크) 실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고려의 활은 엄청난 강궁이었다.힘이 약하면 멀리 날아갈 수나 있을까 이중성 돋네염 또 고려가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선박이 지극히 단순하고 조잡하며 작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는 여진족 해적을 토벌하면서 일본까지 원정을 갈 정도로 선박/항해기술이 뛰어났고(과선항목 참조), 근래 고려시대의 고선 발굴을 통해 대형선의 존재도 입증되었다. 물론 당시 서긍 일행이 타고 온 사신선인 신주(神舟)에 비하면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신주 자체도 당시 송나라에서 엄청난 기술력과 자본을 투자해 만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려의 선박 수준은 전혀 낮은 수준이 아니다. 아마 서긍이 고려에 있는 동안은 그런 배를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과 다른 고려의 풍속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남기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고려의 세시풍속이나 고기 음식을 꺼리고 목욕을 좋아했던 고려인의 성향, 남녀혼욕 등의 풍속 기록이 남은것은 다 이 책 덕분. 조선시대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온 사람들이 일본의 혼욕(혼탕) 풍속을 글로 전하면서 조선인들 사이에 "일본은 남녀가 같이 목욕하는 야만국"이라고 경멸하는 풍조가 생겼고, 근래 한국인들 중에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런데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도 혼욕하던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시대에 따라 풍습이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대 고려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국왕인 인종을 비롯해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지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지나가면서 이름과 직책을 언급만하는 수준으로 척준경을 소개하기도 한다.
2015학년도 역사교사 임용고시 단답형 1번문제로 출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