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The Great(조지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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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의 대관식 초상화, 루크 필즈 경, 1911년 | |||
왕호 | 연합 왕국과 영국 자치령의 왕, 인도의 황제 (King of the United Kingdom and the British Dominions, Emperor of India) | ||
이름 | 조지 프레더릭 어니스트 앨버트 (George Frederick Ernest Albert) | ||
생몰년도 | 1865년 6월 3일 ~ 1936년 1월 20일 (70세 248일) | ||
출생지 | 영국 런던 말보로 하우스 | ||
사망지 | 영국 노퍽 샌드링엄 하우스 | ||
재위 기간 | 영국의 왕 |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 (25년 259일) | |
인도의 황제 |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 (25년 259일) | ||
대관식 | 영국의 왕 | 1911년 6월 22일 | |
인도의 황제 | 1911년 12월 12일 | ||
장례식 | 1936년 1월 29일 |
이 소년이… | 이렇게 되었습니다. |
후덕하고 불행한 어떤 황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불행하게 살았던 왕.
1 칭호
원래 칭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조지 5세 폐하(His Majesty George V,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nd of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 Defender of the Faith, Emperor of India)'였으나 아일랜드 독립전쟁으로 인해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령 아일랜드 대부분이 영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자 1927년에 칭호법을 개정해(Royal and Parliamentary Titles Act 1927) 다음과 같이 칭호를 변경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와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조지 5세 폐하(His Majesty George V,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 Defender of the Faith, Emperor of India)'
이때 국명의 경우엔 1927년 법 개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에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됐지만[1], 아일랜드 자유국은 영연방 탈퇴 전까지 영국 국왕을 군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유지했다. 때문에 왕의 칭호에서는 '아일랜드'를 '북아일랜드'로 고치지 않고 남겨서 여전히 아일랜드 전체의 군주임을 나타내고, 대신 '연합 왕국'을 왕의 칭호에서 뺌으로써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가 더 이상 연합 왕국에 속하지 않음을 나타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공식적인 칭호상의 문제일 뿐 실질적으로 조지 5세는 여전히 연합 왕국(UK)의 왕이었다. 북아일랜드가 연합 왕국의 일부인 이상 그레이트브리튼에서도 왕이고 아일랜드 섬에서도 왕이면 자동으로 연합 왕국 왕
2 전반적인 생애
본명은 조지 프레데릭 에른스트 앨버트 삭스-코버그-고타로 에드워드 7세(1841년 11월 9일 ~ 1910년 5월 6일)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1844년 12월 1일 ~ 1925년 11월 20일)의 둘째 아들이다. 그의 왕후는 테크의 메리(Mary of Teck)였는데 원래는 형 앨버트 왕자의 약혼녀였다. 그러나 앨버트 왕자가 결혼 직전인 1892년 1월 14일에 독감으로 죽어서 조지가 형의 약혼녀 메리를 신부로 맞은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뜻에 따른 결혼이었으나 둘은 평생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후계자인 형이 있었기에, 군주로서의 소양이 필요한 교육은 모두 형의 몫이었고 조지 5세는 적성을 찾아 해군이 되었으나 앨버트 왕자의 급사로 예상치못하게 갑자기 왕이 되어, 전유럽이 군주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굳건한 의지와 책임감으로 왕실을 지켜내기위해 애썼다.
그의 집안이 독일의 대공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반독감정을 고려해 영국 왕실의 역사적 거주지인 윈저 성의 이름을 따라 가문을 윈저로 개명하였다.
이때 덩달아 강제로 개명된 가문 이름이 독일의 명문가 바텐베르크(Battenberg)[2]. 독일어로 산(山)을 뜻하는 '베르크(berg)'를 같은 의미의 영단어 '마운트(mount)'로 고치고, '바텐(Batten)'을 영어식 독음인 '배튼'으로 바꾼 뒤 본래 배열과 바꿔서 '마운트배튼(Mountbatten)'으로 개명했다. 조지 5세의 바텐베르크 가문 친척들은 "그동안 영국을 위해 헌신한 대가가 성을 갈아버리는 거냐"며 반발하기도 했다.[3]
그래도 이 바텐베르크 가문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 이들은 독일어를 영어로 바꾼 수준으로 개명했지만, 독일과의 연관이 더 큰 가문들은 얄짤없이 원래 이름을 내다버려야 했다. 예를 들자면 왕후 메리의 테크 공작가문은 원래 이름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캠브릿지 가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었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가문 친척들은 독일의 본가가 1차 세계대전 이후 폐위되어버리는 안습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3 자녀
테크의 메리와의 사이에서 5남 1녀를 얻었지만 자식 문제로 고생했다.
첫째 아들 에드워드(1894년 6월 23일 ~ 1972년 5월 28일, 훗날 심슨 부인과의 사랑에 의해 퇴위함.)는 바람둥이에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다.[4]
둘째 아들 앨버트(1895년 12월 14일 ~ 1952년 2월 5일, 당시 요크 공작이자 후일 조지 6세)는 병을 자주 앓는데다 말을 더듬고 낯을 가렸기에 애먹었다.
셋째 아들 헨리(1900년 3월 31일 ~ 1974년 6월 10일, 글로스터 공작)는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넷째 아들 조지(1902년 12월 20일 ~ 1942년 8월 25일 비행기 사고로 전사, 켄트 공작)는 맏형 에드워드랑 어울려서 방탕하게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막내 아들 존(1905년 7월 12일 ~ 1919년 1월 18일)은 간질로 어린 나이인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외동딸인 헤어우드 백작부인 메리(1897년 4월 23일 ~ 1965년 3월 28일)는 오빠나 남동생들보다 평범한 편이었다. 다만 메리가 낳은 헤어우드 백작 조지가 조지 5세와 닮기는 했다.
4 도플갱어?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와 사촌 관계로, 몹시나 닮았다.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쌍둥이로 보일 정도. 덕분에 조지 5세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니콜라이 2세는 피로연에서 신랑으로 착각한 사람들에게 축하받느라 고생했다고. 거기에 러시아 혁명 이후 모국인 덴마크로 망명한 마리야 황태후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조카인 조지 5세를 보고 아들이 살아돌아온 것으로 착각한 적도 있다.
한번 비교해보자. …누, 누가 누구지? M자 탈모가 덜한쪽이잖아 세 사진 모두 오른쪽이 조지 5세이다.[5]
독일의 빌헬름 2세와도 고종사촌 관계[6]이지만, 이 쪽은 그렇게 닮은 편은 아니다. 조지 5세와 니콜라이 2세는 이종사촌 관계인데 둘 다 자매관계인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조지 5세의 어머니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와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인 덴마크의 다그마르가 자매 관계인데 이 둘도 쌍둥이처럼 닮았고 그녀들의 자식들인 두 왕이 각자의 어머니를 닮았기에 이종사촌간에 얼굴이 쌍둥이처럼 닮게 된 것.
외모뿐 아니라 평소 취향도 닮은 편이었고, 나름 사람들에게 인기도 받는 편인데, 진짜 자녀 교육 방식은 각자 다르다.[7]
왼쪽이 영국의 왕비가 되는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오른쪽이 러시아의 황후가 되는 다그마르(마리아 표도로브나)
5 불행했던 일생
미소년 - 미청년 - 미중년 라인을 달리던 왕이었으나, 노년에는 스트레스로 딱히 미노년이라고 할 만한 포스가 없어서 미노년 항목에는 없다.
- 형 앨버트 왕자가 죽었다. 조지 5세는 형과 우애가 좋았으며 이미 밀덕으로 길러진 성격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는 딱히 유능하지도 않고, 딱히 무능하지 않은 평범인(?)이 되었다. 앨버트 왕자와 조지 5세는 미소년 시절에 화보(?)를 찍었다.
- 사랑을 잃었다. 조지 5세는 사촌여동생 에든버러의 마리를 사랑했지만 양쪽 모친의 반대로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에든버러의 마리는 루마니아 페르디난트 1세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 동안에 고생했다.
- 재위 초기에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자칫 제위 초반부터 평판이 나빠질 위험에 놓였지만, 이후 원만하게 대처 및 수습하여 고비를 잘 넘길수 있었다.
-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사실상 군주제의 종말[8]이나 다름없었던 그 전쟁에서 조지 5세가 이끌던 영국이 승리하면, 고종사촌 빌헬름 2세를 비롯한 적국들의 수장이 폐위될 것을 알면서도 영국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버리고 전쟁을 지휘했다.
- 이종사촌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혁명으로 폐위되어 그의 가족들과 예카테린부르크로 유배되었을 때, 고종사촌 빌헬름 2세보다 아꼈던 니콜라이 2세를 구하고 싶어했으나, 국민들의 반대로 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즈음 건강이 악화되었다. 조지 5세 재위 중에 세계 대공황은 그나마 해소되는 편이었으나 이때 조지 5세는 임종 직적의 상태였다.
-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병약한 차남, 무능하거나 난폭한 성격은 아니지만 군주감이 아닌 3남과 4남, 요절한 5남[9], 이미 백작과 결혼해 자녀를 둔 외동딸, 무엇보다 강적은 장남 에드워드라고 할 수 있다.[10]
- 여동생들을 잃었다. 루이즈(1867년 ~ 1931년), 빅토리아(1868년 ~ 1935년 12월 1일), 모드(1869년 ~ 1938년 11월 20일) 중 루이즈와 빅토리아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조지 5세는 큰 실의에 빠졌고, 말썽 부리는 자식들, 두 여동생들의 죽음, 사촌들이 끔살다하거나 폐위되는 상황 속에서 노르웨이로 시집갔던 막내 여동생 모드도 점차 위독해지자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며 비통해하다가 죽었다.
6 기타
그의 취미는 우표수집으로, 조지 5세의 우표수집 컬렉션은 역대 영국 국왕들에게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백성은 곧 나를 일컫는다.'라는 발언이 유명한데, 루이 14세가 했다고 알려진 '짐이 곧 국가다'와 매우 극명하게 대비되는 말.
7 현대 매체에서
영화 킹스 스피치에선 알버스 덤블도어로 유명한 배우인 마이클 갬본이 맡아 위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산주의와 히틀러가 설쳐대는 와중에 왕이란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직업이 되었다면서 무슨 놈의 왕이 국민들에게 아부하는 광대꼴이냐고 전제군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의 갈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6세에게 "너희 형[11]이 저렇게 정신줄 놓고 있는데 네가 아니면 누가 귀족과 노동자들을 지켜내겠느냐"며 왕족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마지막에는 병환으로 거의 정신줄을 놓고[12] 자신이 서명한 법안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다가 숨을 거둔다.
- ↑ 그런데 영국이 아일랜드를 분리시킨 건 1922년이다.
5년 넘게 똥배짱 - ↑ 19세기 중엽, 헤센-다름슈타트 대공 루트비히 3세의 동생 알렉산더와 평민인 율리아 하우케의 귀천상혼으로 생겨난 가문이다.
- ↑ 다만 바텐베르크의 경우는 세계대전 당시 해군 고위층에 있었고 얼마뒤 중순양함 세척이 독일 유보트에 1척에게 격침된 사건으로 비난을 받았던 이유가 있었다. 격침된 것 자체가 비난받을 건 아니고 고작 잠수함 1척에게 중대형함이 격침당하는 건 분명 해군성에 스파이가 있을 것이고 그 스파이는 독일계인 바텐베르크 가문일거라는 이야기. 결국 해군성의 바텐베르크는 사직하고 화병으로 사망하고, 가문은 결국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한다. 이 해군성의 바텐베르크의 아들이 2차 대전의 영웅이자 마지막 인도총독 마운트배튼.
- ↑ 어지간히 속터졌는지 큰아들 면전에 대놓고 네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버티와 릴리벳이 왕위를 계승하기 바란다라 말할 정도였다(...).
- ↑ 그나마 자세히 보면 눈 부분이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조지 5세 쪽이 조금 더 눈이 부리부리하다.(삼백안?)
- ↑ 조지 5세의 고모인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가 빌헬름 2세의 어머니.
- ↑ 조지 5세 집안은 아들부자 집안에 딸 한명이 있고, 니콜라이 2세 집안은 반대로 딸부자 집안에 아들 한명이 있는데, 니콜라이 2세는 정말이지 자식들에게 온화한 아버지였고, 조지 5세는 다혈질에 평소 밀덕 성향으로 길러진 성격 때문에 자녀들에게 항상 화만 냈고, 큰아들과는...설명 안 해도 알지?
근데 그거는 솔직히 에드워드 8세가 잘못한 거 맞다. - ↑ 제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승전국과 패전국, 그리고 양쪽의 식민국들 대부분은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 ↑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 ↑ 왕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혼녀와 결혼하려고 왕위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것은 그렇다 쳐도 나치 만세!를 외친 건 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 ↑ 왕위계승자인 에드워드 8세
- ↑ 약간 치매 증상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