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7세

역대 영국 국왕
하노버 왕조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윈저 왕조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에드워드 7세
(Edward VII)
조지 5세
(George V)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초상화, 루크 필즈 경, 1902년
왕호연합 왕국과 영국 자치령의 왕, 인도의 황제
(King of the United Kingdom and the British Dominions, Emperor of India)
이름앨버트 에드워드
(Albert Edward)
생몰년도1841년 11월 9일 ~ 1910년 5월 6일 (68세 195일)
출생지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사망지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재위
기간
영국의 왕1901년 1월 22일 ~ 1910년 5월 6일 (9년 104일)
인도의 황제1901년 1월 22일 ~ 1910년 5월 6일 (9년 104일)
대관식영국의 왕1902년 8월 9일
인도의 황제1903년 1월 1일
장례식1910년 5월 20일
300px
이 소년이…이렇게 되었습니다(…).

영국이자 인도 제국의 황제. 어머니이자 선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존재감이 워낙 넘사벽이라서 다소 묻히는 경향이 강하다. 안습. 이 항목이 빅토리아 여왕 항목에 비해 뒤늦게 만들어진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 칭호

공식적인 칭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에드워드 7세 폐하(His Majesty Edward VII,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nd of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 Defender of the Faith, Emperor of India)'이다.

2 전반적인 생애

오늘 우리는 모두 어머니를 잃은 듯한 느낌이다. 신비로운 빅토리아가 죽고 평범한 뚱보 에드워드가 왕이 되었다.

 
- 미국 출신의 영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 빅토리아 여왕 타계 후의 소회.

위의 문장만큼 에드워드 7세를 잘 나타내는 표현도 드물다. 물론 왕으로서의 능력은 나무랄데 없었지만, 존재감 면에서 어머니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1]에서 보았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바로 뒤를 이었다는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

3 즉위 전

1841년 11월 9일 버킹엄 궁전에서 빅토리아 여왕앨버트 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1달만인 같은 해 12월 8일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된 것을 보면 여왕 부부가 아들을 진심으로 갈망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장장 60년 동안 프린스 오브 웨일즈 자리를 지키다가 60세에 왕으로 즉위해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태자로 지낸 기록을 세웠으나...이 기록은 2011년 4월 20일부로 찰스 왕태자에 의해 깨졌다(…).

고대하던 아들의 탄생이라 기대치가 높아서 그랬는지 여왕 부부는 에드워드 7세를 7살 때부터 매우 엄하게 훈육했는데, 그가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총명한 누나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 공주와 비교되면서 여왕으로부터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그에 대한 반동이었는지 에드워드 7세는 자녀 교육을 그리 엄하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행실에 대하여 지적하러 갔던 앨버트 공이 이 때의 무리로 인하여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여왕은 남편의 죽음을 에드워드 7세의 탓으로 돌리고 아들을 보지 않았다. 몇십년간 정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왕태자였는데(…).

2215568299_5086b933b2.jpg
알렉산드라 왕후와 에드워드 7세. 왕비님 뽀샵질이 너무 과하신 듯.[2]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여러 여배우들과의 염문설이 파다했으며, 부모의 금슬과는 대조적으로 당시 가장 아름다웠다는 오스트리아의 황후이자 헝가리의 왕비 시씨와 유일하게 견줄만하다고 여길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던[3]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왕후와는 신혼 초를 제외하고는 평생 관계가 냉담했다. 그리고 이 부부관계 패턴은 100년 뒤에 증손녀 부부고손자 에 의해 스핀오프 되었다.

부부사이가 나빠진 이유는 에드워드 7세는 위트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인 반면 알렉산드라 왕비는 그다지 지적인 편은 아니었고 얌전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는 내향적인 성격의 차이점, 알렉산드라 왕후의 목에 있는 수술 흉터를 결혼 첫날밤에 본 에드워드 7세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란 점,[4] 알렉산드라 왕후가 불감증(!)이었다는 점,[5] 알렉산드라 왕비가 20대부터 귀가 먹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정상적인 의사소통마저 힘들어진 점 등이 있다.

이들의 사이가 얼마나 좋지 않았냐면...에드워드 7세가 아내의 눈앞에서 대놓고 애인 앨리스 케펠[6]를 침실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그가 앨리스와 산책하고 있는 걸 본 알렉산드라 왕후는 "돼지 1쌍이 뜰을 산책하고 있다."고 폄하할 정도(…)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에드워드 7세는 심각한 비만 체형이었다.

비록 부부사이는 신혼 초를 제외하고는 평생 냉담했지만, 알렉산드라 왕비는 3남 3녀를 낳아 후계자를 낳아야하는 왕후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알렉산드라 왕후는 자녀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8] 루이즈 공주와 모드 공주가 각자 뒤늦게서야 결혼을 강행하자 엄청 화냈다고...
가장 순종적이었던 빅토리아 공주만이 미혼으로 남아 알렉산드라 왕후가 죽을 때까지 평생 수발을 들었다(…).

4 즉위 후

빅토리아 여왕이 64년간 재위하면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기에 에드워드 7세는 왕이 된 뒤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국내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위 말기에 로이드 조지(훗날 수상.)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영국 상원을 뜯어고쳤다. 즉 하원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 상원은 뒤집을 수 없는 체제로 만든 것.[9]

하지만 어머니를 대신해 외국을 자주 순방한 경험과 함께 그 자신이 유럽 각국의 왕족과 혈연관계가 있다는 점을 활용해[10] 영국-프랑스-러시아의 3국협상을 성사시켜 독일을 견제하는데 힘을 발휘할 만큼 외교에 능통했다.

이 때문에 당시 영국 국민들은 국제 사회에서 영국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에드워드 7세를 '피스메이커 에드워드'라 부르며 지지했고, 전쟁이 싫다면 '친절한 에드워드'를 찾으라는 노래까지 유행할 정도였다. 물론 독일에서는 뚱보 에드워드가 일만 생기면 독일에 반대한다며 주구장창 씹어댔다(…). 특히 당시의 황제는 카이저라고 불리던 암군(비스마르크 해임, 영국 및 프랑스 등과 쓸데없는 적대관계 고조, 제1차 세계대전 패전 등 눈부신 업적(?)이 있음.) 빌헬름 2세였다.

5 사망과 장례

Cesar-The-Favorite-Dog-Of-King-Edward-Vii-Marching-Before.jpg
에드워드 7세의 장례 행렬.

1910년 5월 6일 6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7세가 재위한 1901~1910년을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period)'라 부르며 엄숙주의 풍조가 만연했던 빅토리아 시대와 비교해 화사하고 자기 만족적인 시대로 기억한다.[11] 유해는 1910년 5월 20일 윈저 성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안장되었다.

한편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 때 유럽 전역의 친척들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왕족들이 대거 참석해 장관을 이루었는데, 당시의 참석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 특이하게 일본과 청나라의 왕족도 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비고에서 파란색은 연합국, 빨간색은 동맹국, 나머지는 추가바람.

이름비고
영국 국왕 조지 5세에드워드 7세의 아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
코넛 스트래선 공작 아서에드워드 7세의 동생.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에드워드 7세의 처남.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에드워드 7세의 조카사위.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에드워드 7세의 사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에드워드 7세의 처남.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2세
불가리아 차르 페르디난드 1세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에드워드 7세의 6촌.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사라예보에서 암살.
오스만 제국 황태자 유수프 이제틴 에펜디압둘 아지즈 1세의 아들.
러시아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알렉산드르 3세의 아들.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일본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貞愛) 친왕메이지 덴노의 사촌.
스파르타 공작 콘스탄티노스뒷날의 그리스인의 왕 콘스탄티노스 1세.
루마니아 왕세자 페르디난드뒷날의 루마니아 국왕 페르디난드 1세.
바이에른 왕세자 루프레히트
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세르비아 공세자 알렉산다르뒷날의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
네덜란드 헨드릭 공빌헬미나 여왕의 부군.
헤센 대공 에른스트 루이스에드워드 7세의 조카.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아돌퍼스 프레데리크 5세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빌헬름 2세의 동생, 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카를 에두아르트에드워드 7세의 조카.
작센의 요한 게오르크 왕자
배스터요틀란드 공작 카를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
발데크-피르몬트 후작 프리드리히
이집트 알리 타우피크 왕자타우피크 1세의 아들.
코넛 스트래선 공작 아서에드워드 7세의 조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크리스티안 왕자에드워드 7세의 처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앨버트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
캐리스브룩 후작 알렉산더 마운트배튼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
파이프 공작 알렉산더 더프에드워드 7세의 사위.
케임브리지 후작 아돌퍼스 케임브리지
테크의 프랜시스 왕자
애슬론 백작 알렉산더 케임브리지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필립 마운트배튼의 부친.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대공니콜라이 1세의 손자.
바덴의 막시밀리안 왕자
몬테네그로 왕세자 다닐로 알렉산다르
그리스와 덴마크의 크리스토포로스 왕자
작센-코부르크 고타의 필립 왕자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아돌퍼스 프레데리크 6세
루이 드 오를레앙 왕자
피에르 드 오를레앙 왕자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아우구스트 레오폴트 왕자
발데크-피르몬트의 볼라드 왕자
태국의 포바라뎃 왕자
영국 왕대비 알렉산드라에드워드 7세의 아내.
러시아 황후 마리야 표도르브나알렉산드르 3세의 아내, 니콜라이 2세의 모친.
파이프 공작부인 루이즈에드워드 7세의 장녀.
빅토리아 공주에드워드 7세의 차녀.
영국 왕비 메리에드워드 7세의 며느리.
노르웨이 왕비 모드에드워드 7세의 3녀.
콘월 공작 에드워드뒷날의 에드워드 8세.
메리 공주에드워드 7세의 손녀, 조지 5세의 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왕자비 헬레나에드워드 7세의 누이.
아가일 공작부인 루이즈에드워드 7세의 누이.
바텐베르크 왕자비 베아트리스에드워드 7세의 누이.
코넛 스트래선 공작부인 루이즈에드워드 7세의 제수.
알바니 공작부인 헬레나에드워드 7세의 제수.
코넛 스트래선의 패트리샤 공주에드워드 7세의 조카딸.
파이프의 알렉산드라 공주에드워드 7세의 손녀.
파이프의 메우드 공주에드워드 7세의 손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헬레나 빅토리아 공주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마리 루이즈 공주에드워드 7세의 외조카딸.
앨버트 왕자뒷날의 조지 6세.
헨리 왕자에드워드 7세의 손자.
하노버 컴벌랜드의 게오르크 빌헬름 왕자
청나라의 재도(載濤) 패륵광서제의 이복동생.

6 이야깃거리

  • 경마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버버리사의 트렌치 코트(바바리 코트)를 애용해서 외출할 때마다 하인에게 '내 버버리 가져와(Bring my Burburry)'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훗날 버버리 사에서는 이 일화에서 이름을 따온 '마이 버버리' 라는 향수를 내놓기도 했다.
  •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담배를 지독하게 싫어한 혐연가였지만, 에드워드 7세는 즉위식 만찬 때 "신사 여러분, 피워야 하지 않겠는가!(Gentlemen, you may smoke!)"를 외칠 정도로 애연가였다. 하루에 시가 12대, 담배 20대를 피워댄 골초.
  • 별명이 '배불뚝이(Tum-Tum)'인데, 하루 식사로 코스요리 정식을 10번이나 먹었기 때문에 왕이 될 때 허리 둘레가 48인치(…)라서 붙여진 것.
  • 오랜 황태자 생활끝에 간신히 국왕이 된지라, 오랫동안 왕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재위기간 10년을 못채웠으니[12]...얼마나 억울했으면 죽기 직전에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이란 뜻이 담긴 말을 내뱉었겠는가...[13] 사망할 때에도 그날 계속해서 심장마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무를 보다가 사망했다. 오래 살고 싶었으면 과식도 하지 말고 담배도 피우지 말았어야지. 솔직히 68세까지 산게 더 신기해
  • 외조카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사탄이라는 모욕을 당한적이 있다. 그러면 외삼촌 장례식에 온 빌헬름 2세는 사탄의 장례식에 참석한 꼴.
  • 세일러복 유행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위에 보이는 그림의 모습을 본 이후로 자기 자식에게 세일러복을 입히는 부모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 여담이지만 서브컬처중에 테디보이들이 입는 '에드워디안 수트' 또는 '에드워드 시대 수트'가 바로 이 에드워드 7세 시대의 수트를 이야기한다. 칼라가 높은 셔츠에 단추가 4개 이상 달린 긴 쟈켓이 특징.
  •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편 '거물급 의뢰인'의 거물 의뢰인이 에드워드 7세로 추정된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귀족 가문의 한 영애가 소문이 좋지 못한 남작[14]과 결혼하려 하자 미지의 거물 의뢰인이 대리인을 내세워 그것을 막아줄 것을 부탁하는 이야기인데, 홈즈 일행이 그 사건을 해결한 후 존 왓슨은 떠나는 대리인의 마차에서 왕실 표장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왕이 바로 에드워드 7세.

king-edward-specials.jpg

  • 시가 메이커 중에 킹 에드워드라는 제품의 이름은 에드워드 7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표지에도 에드워드 7세의 사진이 박혀있다.
  1. 단, 선왕 빅토리아 여왕은 재임 말기에 들어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 7세는 재임 초기부터 말기까지 외교면에서 상당한 수완을 보였다.
  2. 알렉산드라 왕후의 사진들을 보면 말년 시절에 찍은 사진들이 죄다 젋고 피부가 탱탱하게 나온 사진들밖에 없는데, 말년에 찍은 사진들은 전부 엄청난 뽀샵질(…)의 결과물이다. 물론 젋었을 때는 시씨의 라이벌 취급받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둘 다 결혼생활이 시궁창이었다는 점도 닮았다. 그나마 시씨 남편은 골수 아내덕후이기라도 했는데 알렉산드라는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안습...
  3. 단 동양인들의 눈엔 약간 남상에다 조각처럼 큼직큼직한 이목구비를 지닌 알렉산드라 왕후보다는 그녀의 여동생 마리아 표도로브나(알렉산드르 3세의 아내이자 결혼 전 이름은 다그마르.) 황후가 더 예뻐보인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후는 이목구비가 귀엽고 아기자기하며 청순가련한 인상에다 키랑 체구도 매우 아담했다.
  4. 알렉산드라 왕후의 초상화나 사진을 보면 다른 여성 왕족들과 비교했을 때 과도할 정도로 많은 목걸이를 목에 감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흉터 때문이다.
  5. 다만 빅토리아 여왕 시대 때 불감증인 여성은 매우 흔했다.
  6. 찰스 왕태자의 후처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증조할머니로 에드워드 7세의 마지막 애인. 대를 잇는 바람기.
  7. 근데 모드 공주와 호콘 7세(덴마크의 칼 왕자) 사이에서 태어난 울라프 5세가 사실 호콘 7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얘기도 꽤 널리 알려져 있다.
  8. 빅토리아 여왕이 막내딸 베아트리스 공주 (1857년 ~ 1944년)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알렉산드라 왕비도 에드워드 7세와의 불화로 인해 상처받자 자녀들 중 1명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자녀들에게 집착한 것이다.
  9.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 사건으로 영국은 복지국가로의 첫발을 떼게 된다. 로이드 조지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영국 자유당파 귀족들만 죽어라 키워서 다 상원으로 보내버릴 거다!!"라고 영국 보수당과 귀족 사회를 협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 빅토리아/가족관계를 참조 바람.
  11. <엠마> 10권의 후일담 에피소드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메이드 제복부터 눈에 띄게 화사해진 것을 알 수 있다.
  12. 1901년 1월 22일 부터 1910년 5월 6일 까지 9년 105일 동안 재위했다.
  13. "No, I shall not give in; I shall go on; I shall work to the end.(아니, 포기하지 않겠네. 난 버텨내야 해. 마지막까지 내 일을 해야 한다고.)" 뭔가 근성이 느껴지는 말이다.
  14. 전처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나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하고 버린 바 있다고. 결국 과거의 여인들 중 한 명에게 비참하게 응징당하는 결말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