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fford Brown
미국의 재즈 뮤지션(트럼펫터). 하드 밥 초창기의 탁월했던 연주자로, 드러머 맥스 로치와의 밴드 활동이 유명하며, '브라우니'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 출신으로,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트럼펫에 흥미를 가져 12살부터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학생 밴드에서 연주활동을 하던 시절 디지 길레스피와 만나 본격적으로 재즈 뮤지션을 목표로 하게 된다. 필라델피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중, 찰리 파커와 협연했는데 찰리는 클리퍼드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 아트 블래키에게 그를 추천했다.
1953년, 태드 다메론 악단에 참가. 같은 해 J.J. 존슨과 협연했으며 아트 블래키의 지원을 받아 첫 리더 세션을 연다. 이후 라이오넬 햄프턴 악단의 유럽 투어에도 참가했다.
1954년 2월 21일, 뉴욕의 재즈클럽 '버드랜드'에서 아트 블래키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세션에 참가. 이는 '버드랜드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드화되었다.
1956년 6월 26일, 리치 파웰(버드 파웰의 동생)의 아내 낸시가 운전하는 차에 리치와 함께 타고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로 이동하던 중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에서 교통사고사. 향년 25세. 사고일 밤에는 비가 내렸으며, 낸시를 포함해 3명 전원이 사망했다.
대단히 성실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흑인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 만연되었던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도 없었다. 그야말로 밥 먹고 트렘펫만 불었던 사람. 클리포드 브라운은 그 기교도 대단하지만 특유의 소리로도 더 유명하다. 강하게 부는 것 같으면서도 완급 조절이 확실하고 음색에는 서정성이 있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싸늘한 사운드와 대척점에 있다고들 평하기도 하는데 사실 브라운과 동시대에는 브라운처럼 기교나 음색이 모두 완성된 연주자가 아니었다.
색소폰 주자인 베니 골슨은 클리퍼드의 죽음에 심한 충격을 받아 1957년 클리포드를 추모하며 발라드 'I remember Clifford'를 작곡했다. 이 곡은 존 헨드릭스가 가사를 붙여 재즈 스탠다드가 되었는데, 트럼펫터 리 모건의 연주로 널리 알려졌다.
메를랑 프리즘리버의 스펠카드 명관 '고스트 클리퍼드'의 이름은 그에게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