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당

Tory Party.

1678년부터 1834년까지 존재했던 영국정당...이라고 이전 버전에 쓰여졌지만 사실 1760년대까지 존재했던 토리와 1783년부터 소(小)윌리엄 피트 (William Pitt, the Younger)를 중심으로 기존의 휘그당에서 나와 독자적 세를 이루며 형성된 토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1678년부터 1760년까지 존속했던 토리당은 제임스 2세의 왕위 계승에 찬성을 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당으로, 이름의 유래도 이 때 휘그당이 이 찬성파들을 "Tories"[1]라고 부른 것이라고 추측된다.

명예 혁명 때는 휘그당과 협력했지만 이후에 하노버 왕조가 이어지면서 휘그당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약 50년동안 듣보잡 취급을 받은 뒤 사라졌다. 1760년대 중반부터는 영국 의회에서 토리당의 당원이라 불리울 만한 사람이 한명도 없게 되었다. 이후 윌리엄 피트(소 피트)와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 휘그 당에서 나와 독자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독립파 휘그(Independent Whigs)", "피트주의자(Pittites)"로 불리다가 피트의 사후 "토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1812년부터는 토리가 이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정착하게 된다.

이후 휘그당과 경쟁하며 영국 정치를 양분하게 되고 1832년에는 로버트 필 경에 의해 보수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40년대에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던 보수당 정책에 맞서 곡물법 폐지를 통한 자유무역 확대를 주장하던 필 주의자들(Peelites)들이 보수당을 빠져나와 휘그당의 후신인 자유당과 합치게 된다. 이들 탈당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훗날 자유당을 이끌고 보수당 당수인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경쟁하게 되는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다. 19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던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체제는 이 때를 기점으로 확립되게 된다.

1832년 이후의 보수당에 대해 알고 싶다면 보수당 문서를 참조하라.
  1. 아일랜드말로 유적(流賊). "해적"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유적은 정처없이 떠다니는 도적들을 의미한다. 의미가 어찌 되었건 가톨릭이란 은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