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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혁명당 사건은 1968년 8월 24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지하당 조직 사건이다.
1 개요
1.1 시대적 배경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의 파도가 지나간 뒤, 1962년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일어나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등 국제 정세가 급격히 변동하기 시작했다. 세계 전쟁이나 미국의 공격에 대한 위기감이 쌓인 북한 정부는 우선 자체의 힘을 기르는 데 쏟기로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방이었다. 1962년 12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중앙회의 전원회의에서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 전 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를 주 내용으로 한 4대 군사노선을 발표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남한에서의 혁명을 기대했지만, 그건 북한이 일방적으로 지원해서 되는 게 아니며 남측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일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국제적인 반미 혁명세력과 단결하여 범세계적인 반제/반미 전선을 결성하고자 했다. 1964년에 열린 전원회의에서도 이와 같은 방안을 '3대 혁명역량 강화방침'으로 정리했다. 이 방침은 북한의 혁명기지 강화, 남한의 혁명역량 강화, 국제 혁명역량과의 강화를 내세웠으며 이는 북쪽의 '민주기지'를 강화한 뒤 주로 무력에 의지해서 남북통일을 달성하고자 한 한국전쟁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따라서, 남쪽은 그 자체의 힘에 따라 '남조선혁명'을 이룩해야 함이 강조된 것이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1.2 경과 및 주요 활동
북한 정부는 남한에서 4.19 혁명이 실패한 주 이유가 바로 혁명을 이끌 당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북한이 만든 '남조선혁명론'이 남쪽에 퍼지면서 지하 혁명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64년 3월 15일에 남한에서 비밀리에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당시 주요 참가자들은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등이었다. 이들은 지하신문 <혁명전선>과 합법 대중잡지 <청맥> 등을 발간했으며, 대학가에서 학사주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1.3 최후
그러나 1968년 8월에 통혁당은 중앙정보부가 이 조직의 주요 인사들과 접선하기 위해 내려온 북한 공작선을 나포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이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김종태가 전후 4차례에 걸쳐 북괴 김일성과 면담하고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정당으로 위장한 뒤 합법화하여 반정부 및 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때 중정은 김종태 등 3명을 포함해 관련자 158명을 검거하여 7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들 중 절대 다수는 김종태 등의 실체와 북한 연루 사실을 몰랐고, 심지어 ‘통혁당’이라는 조직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후 김종태 등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사형을 당했고, 당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전향서를 쓴 뒤 1988년에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1년에 체포된 류낙진 역시 무기형이었으나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1969년에 통일혁명당 서울시당 위원장이었던 김종태의 사형이 집행되자, 북한측은 그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뒤 대규모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후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은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은 '김종태사범대학'으로 바꾸었다. 조직이 와해된 뒤에도 통혁당을 재건하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줄줄이 발각되었고, 1979년에 통혁당 강원도 재건위가 발각된 것을 끝으로 완전 소탕되었다.
한편 북한측의 주장에 따르면 1969년 8월에 당 중앙위원회가 지하에서 조직되었고, 1970년 2월에는 당 선언과 강령이 발표되었다. 그해 6월에는 <통일혁명당의 소리>라는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후 통혁당은 1985년에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바꾸었고, 방송 명칭도 '구국의 소리'로 바꾸었다가 2003년에 방송을 중단했고, 2005년에는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바꾸어 잔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서 활동하는 유령단체일 가능성이 높다.
1.4 출처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공저.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웅진지식하우스. 2013. p243 ~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