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페니키아어 : Ṣur 수르[1]
고대 그리스어 : Τύρος (Týros) 티로스
라틴어 : Tyrus 티루스
영어 : Tyre 티레
한글 : 티로[2], 두로[3]
고대 페니키아 지방에 존재하였던 고대도시들중 가장 으뜸가는 도시로써 지중해에 여러 식민지의 종주국으로써 초기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였던 도시국가이다.
2 설명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도 불리는 레반트 지역에서도 특히 지중해를 끼고있는 레바논은 땅이 굉장히 비옥하여 고대시대부터 잉여생산물을 발생시킬 수 있던 지역이었고 이는 문명의 건설로 이어졌다.
레바논 지역에서 최초로 발생한 문명은 기원전 5000년경의 비블로스인데 이 비블로스인들이 점차 내려오면서 시돈과 티레, 하솔을 건설하여 페니키아를 이루었다.
기원전 1400년경 즉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 성전을 벌일 때 가나안 지방의 여러 왕국들은 죄다 페니키아계 도시국가들이었는데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정복한 왕들의 숫자만 72명에 달할 정도로 도시국가적 성격이 아주 강했던 것이 특징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가나안 지방의 맹주를 자처하던 하솔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하나 '위대한 시돈'은 끝내 점령하지 못하고 가나안 지방과 레바논 지방을 나누게 된다. 이후 가나안은 이스라엘 혹은 팔레스타인이라 불리우게 되며 북방의 레바논은 페니키아라 불리게 된다.
페니키아 지방의 비블로스, 시돈, 티레 중에 가장 으뜸가는 도시는 티레였다. 티레는 타이리안 퍼플(Tyrian Purple)이라 불리는 고급 자주빛 옷감을 생산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했는데 이는 로마 시대까지 황제가 입는 최고급 옷감으로 인식되었다.
티레는 지중해에 여러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는데 훗날 티레보다 강성해지는 카르타고조차 로마와 전쟁을 벌이며 국운을 건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까지 티레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칠 정도로 페니키아에게 티레가 가지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성경에는 티레의 심판이 여러 경전에 걸쳐 여러번 기록될 정도로 많이 언급되는데 이는 티레가 북이스라엘 왕국을 괴뢰화시켰던 국가이자 인신공양을 하는 몰렉신을 섬기던 국가였고 이스라엘과 무역에서 경쟁하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3 기타
티레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눠져있는데 신도시는 티레섬이라는 육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섬에 요새처럼 쌓은 도시를 말하는 것이다. 신도시는 바다가 해자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아슈르바니팔의 아시리아 제국은 물론 느부갓네살의 바빌론 군대마저 이곳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후 알렉산드로스가 간척을 하면서까지 겨우 점령을 하였기에 고대 세계의 철옹성으로 불리게 된다.
티레는 지중해의 무역으로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였는데 그 이윤이 엄청나서 성경에는 그들은 상아로 배를 건조하고 은으로 도로를 포장하며 금으로 높은 누대를 쌓는다고 기록해놓았다.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은 서로 말이 통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가나안 지방에서 살면서 페니키아어를 입말로 썼기 때문이다. 이후 이스라엘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도 따로 고센이란 지역에서 이집트인과 동화되지 않고 살았기에 페니키아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의 차이는 히브리 문자와 페니키아 알파벳의 차이일뿐 입말은 서로 같았기에 통일 이스라엘은 물론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 역시 페니키아와 인적교류가 활발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으로 붕괴된 헬레니즘제국에서 발생한 디아도코이 전쟁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수도로삼은 셀레우코스왕조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삼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간의 2강전쟁으로 치달았는데 이에따라 주 전장이 시리아와 이집트의 사이의 페니키아가 되면서 티레의 전술적 가치는 매우높아지게된다.
제3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일어나면서 기원전 314년에 마케도니아가 셀레우코스왕조의 안티고노스와 대립했다가 안티고노스가 그리스 전역의 폴리스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티레 선언을 하게되는데 선언을 선포하였던 도시 티레의 이름을 따서 티레선언이라 부르게되었다.
페니키아 사람으로서 가장 유명한사람은 로마와전쟁을 벌이며 알프스산맥을 넘었던 한니발인데 한니발은 어릴적 바알에게 로마를 멸망시키겠다는 맹세를 하여 바알을 뜻하는 한니'발'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로마제국의 암군중 하나로 지목되는 엘라가발루스는 미적감각이 있던 황제로 평가되는데, 그는 카르타고 멸망후에도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되어있던 티레의 페니키아 문명에 굉장히 심취하여 로마황제로는 처음으로 동방적인 티레의 자주옷을 입었으며 페니키아의 주신이였던 바알을 숭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