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가발루스

로마의 역대 황제
-세베루스 왕조세베루스 왕조
22대 마크리누스23대 엘라가발루스24대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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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 ~ 222 (재위 218 ~ 222)

1 소개

로마 제국황제 중 한명. 카라칼라의 이종 사촌 누이의 아들이며, 카라칼라가 암살되고 황제 근위대장인 마크리누스가 황제가 되자 외할머니이자 카라칼라의 이모인 율리아 마이사가 이에 복수하기 위한 패로서 썼다. 그래서 졸지에 카라칼라의 숨겨진 자식이 되어 버렸다.

2 천하의 막장 황제

로마 역사상 손꼽히는 암군. 다만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콤모두스처럼 욕을 먹지는 않는다.

재위 기간 내내 먹고 놀기만 한,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인들의 황제 로망을 실현시킨 인물. 그 오랜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도 이런 황제는 정말 드물며, 제국은 엘라가발루스와 같은 인물을 다시 가지려면 그가 죽은 이래로 무려 칠백 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하필이면 바로 그 인물도 그의 바로 뒤 후계자와 이름이 같은, 알렉산드로스 2세였다.

사실 엘라가발루스라는 명칭은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본명은 '아비투스 밧시아누스(Avitus Bassiansus)'이며, 엘라가발루스의 뜻은 '성소를 관리하는 자'이다. 이 별명을 마음에 들어했던 그는 에데사에 봉안되어 있던 태양신의 신체를 로마로 옮겨오고 수도 한복판에 태양신 신전을 건립하면서 이를 강요했다.[1] 그는 최초의 동방 출신 로마 황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관료를 처형하고 바알을 믿게 했으며 이방인들을 불러들였다.

거미줄을 수집하게 하거나 동물들을 마차에 태우고 연회에는 손님에게 유리로 만든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또, 제대로 된 음식에는 거미를 넣거나 말똥을 섞고 꽃잎을 마구 퍼부었다가 몇 명이 질식사 했다던가, 평생 순결을 지켜야 하는 베스타의 여제사장을 검열삭제했다거나, 하여튼 별의 별 기행으로 로마인들의 반감을 사고 만다. 베스타의 여사제들은 공연등에서는 언제나 특등석을 배정받고, 지나갈때 누구나 경외를 표현해야 할 정도로 로마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였고, 그만큼 규율도 엄격해서 베스타의 여사제들이 강간이 아닌 걸로 순결을 잃으면 보통 생매장했으며, 상대 남자는 무조건 때려죽였다.[2]

또한, 다섯번 결혼했다 이혼하기도 했으며 만 18세에 죽은 사람이! 특히나 그의 게이 성향, 그것도 총수였다는 사실이 까였다. 아예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설도 있는데, 이것은 황제 본인이 '짐을 여자로 만들어주면 제국의 절반을 주겠노라' 라고 포고령을 내린 것이 와전된 듯 하다. 당시의 로마 관념으로는 이는 매우 역겨운 일이었다. 애시당초 로마는 동성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3] It was expected and socially acceptable for a freeborn Roman man to want sex with both female and male partners, as long as he took the penetrative role. The morality of the behavior depended on the social standing of the partner, not gender per se. Both women and young men were considered normal objects of desire, but outside marriage a man was supposed to act on his desires only with slaves, prostitutes (who were often slaves), and the infames. Gender did not determine whether a sexual partner was acceptable, as long as a man's enjoyment did not encroach on another man's integrity.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로마 시민은 박을지언정 박혀선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동성애를 하다 걸리면 한 놈은 로마 시민에게 박은 죄. 당한 놈은 박혀서는 안되는데 박힌 죄로 사형이라고 딱 규정해 놓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로마 시민의 수장인 황제라는 작자가, 그것도 대놓고 남들 보는데서 여장을 하고 짙은 화장을 한 뒤 동성애 상대에게 아양을 떨곤 했다니 얼마나 경멸감을 샀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사실 이건 동성애(자)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이런 그의 특이한 성적지향으로 인해 19세기 미술에서 많은 소재가 되었고 트렌스젠더의 시초격인 인물로 꼽기도 한다.

3 비참한 최후

아무튼 그의 이런 정신나간 행동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받아 민심은 완전히 황제를 떠났다. 특히 이미지상 도저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할머니 율리아 마이사는 엘라가발루스의 이종 사촌 동생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를 카이사르로 삼고 양자를 입양시켜 사실상의 황태자로 만들었다. 알렉산데르는 착실한 성격이었고 그로 인해 그가 인망을 모으자, 엘라가발루스는 긴장하여 그를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이런 짓을 근위대장에게 시켰다가 황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근위대장과 근위대에 의해 어머니 소아이미스, 총신 히에로클레스와 함께 인생 퇴갤 당한다. 얼마나 증오를 받았던지 이 세 명의 시신은 조리돌림 당해 온 로마 시내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결국 난도질당하고 사지가 잘려 티베르강 하수구에 버려진다. 콤모두스도 암살되었지만 시신만은 온전하게 장사지내준것과 달리 최후가 매우 비참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그의 치세 중에 로마 제국이 갑자기 엉망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외부적으로는 카라칼라가 한바탕 정리를 해놓은 덕택에 2세기 말 이래 혼돈이 이어지던 제국의 국방 시스템이 오랜만에 안정된 상태에 있었고 또한 실무는 율리아 마이사가 맡고 있었는데 그녀는 악녀라는 평을 들었지만 통치 능력은 정말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1. 물론 이 때문에 헬리오가발루스(Heliogabalus)라는 별명이 생겼다. 여기서 접두사 헬리오는 태양을 뜻한다. 세상에서 두번째로 가벼운 원소인 헬륨도 예전에는 태양에만 존재하는 물질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헬리오라는 접두사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이 문서는 헬리오가발루스라고 쳐서 들어올 수 있다.
  2. 보통은 열살 이전에 사제생활을 시작해서 40대때 은퇴했으며, 은퇴하면 사제의 의무들에서 해방되기에 평생 지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엘라가발루스의 출신지인 레반트에서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고 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여사제가 남성 신도와 성관계를 하는 일도 있었다는데, 그 관습을 적용시킨 거라고 한다. 문제는 그게 레반트의 전통인 만큼 그곳에서만 통하지 로마에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안하고 황제라며 제멋대로 베스타의 여사제 같이 고위 성직자를 모욕하는 짓을 하니 당연히 증오를 받았다.
  3. 현대 한국과 비슷하다. 동성애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게 평하지도 않았으며, 걸리면 사회적 매장을 감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