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filo de Narvaez
(1478 ~ 1528. 11)
1 코르테스와의 싸움
1498년에 아메리카로 건너가 1507년에 자메이카를 식민지로 삼아 대농장을 운영했다가 1507년에는 친척인 쿠바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와 함께 쿠바를 정복해 그 공으로 영지와 노예를 하사받았다. 151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가 쿠엘라르의 허락없이 군대를 움직여 멕시코로 들어가면서 쿠엘라르가 이를 반역 행위로 간주하여 병력과 물자를 동원해 코르테스를 토벌하라고 하자 19척의 선박, 900명의 에스파냐인들이 포함된 1400명의 병력과 80여 마리의 군마, 23문의 대포 등을 동원해 코르테스를 토벌하기 위해 아나우악 땅에 상륙한다.
그러나 부하들이 코르테스에게 황금으로 매수된데다가 셈포엘란에 주둔했다가 코르테스가 이끄는 군대의 야습을 받아 패하여 한 쪽 눈을 잃으면서 포로로 붙잡혔으며, 병력까지 코르테스에게 빼앗겼다. 그가 데려온 군사 중에는 천연두에 걸린 사람이 있었기에 아즈텍에 질병이 퍼졌다고 하며, 빌라 발카 베라크루스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1522년에 아즈텍이 멸망하자 본국의 명령으로 석방되어 쿠바로 돌아가서 한동안 대농장 경영에 힘썼다.
2 플로리다 탐험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정복한 이후 금광을 발견해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북아메리카의 플로리다 어딘가에 있다는 아팔라체라는 이름의[1] 황금제국을 꿈꿨으며, 1526년에 플로리다 지사에 임명되어 플로리다 팔마스 강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을 정복해 다스리라는 국왕 카를로스 5세의 명령을 받아 1527년 6월 27일에 5척의 배와 600여명의 원정대를 이끌면서 바라메다의 산 루카스 항을 출발했다.
플로리다로 상륙하기 전에 군수품과 물자 조달을 위해 산토 도밍고에 상륙했다가 140여명이 산토 도밍고 주민들의 제안과 약속으로 원정을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산토 도밍고에서 배 한 척을 구입했다가 산티아고 데 쿠바로 옮겨 며칠 간 머물던 와중에 트리니다드에 살고 있는 바스코 포르카이예가 자신이 있는 마을에 오면 물자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자 트리니다드로 향했으며, 도중에 카보 데 산타크루스 항에 도착해 석궁대 부대장 판토하에게 배 한 척을 주어 포르카이예가 약속한 식량을 실어오라고 명령했다.
알바르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에게는 배 한 척을 주어 판토하를 뒤따라 감시하도록 해 식량을 실어올 동안에 항구에서 기다리기로 했지만 식량을 실어오기 위해 보냈던 이들은 폭풍우에 휘말려 육지에 상륙했던 자들만 살아남았으며, 뒤늦게 4척의 배를 이끌고 트리니다 항구로 와서 폭풍우를 겪었지만 미리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폭풍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트리니다드 항구에 머물다가 카베사 데 바카에게 사구아 항에 가서 선원들과 군수품을 보충하면서 겨울을 보내라고 했으며, 이후 트리니다드에서 쌍돛대 범선을 구입하거나 아바나 항구에서 배 한 척을 구입하면서 알바로 데 라 세르나를 선장으로 삼아 아바나 항구에 남겨두면서 카베사 데 바카가 있는 사구아 항으로 갔다.
사구아 항으로 도착한 지 이틀 만에 4척의 배, 1척의 쌍돛 범선, 400여명의 선원, 80여필의 군마 등을 이끌고 출항했지만 카나레오에 있는 옅은 여울에 배들이 처박히면서 2주일 동안 그 곳에 머물렀으며, 쿠아니쿠아니코에서는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할 뻔 했다. 고생을 하면서도 폭풍우를 피했지만 코리엔테스 곶에서도 풍랑을 만나 3일을 머물렀으며, 아바나 항구로 향해 폭풍우를 피하려고 했지만 남풍으로 섬에서 멀리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플로리다 쪽으로 향해 1528년 4월 22일에 플로리다의 육지에 상륙했다.
24일에는 카바사 데 바카가 조그만 만 입구에 위치한 곶에서 원주민의 집과 마을이 있는 해안을 발견하자 25일에 뒤늦게 도착해 상륙했으며, 26일에 국왕 카를로스 5세를 상징하는 깃발을 세워 에스파냐의 땅임을 선포했다. 27일에는 원주민들이 떠나라는 말을 했지만 그 경고를 무시하면서 40여명의 대원들과 함께 내륙으로 들어갔으며, 저녁 무렵에 템파 만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만에 도착해 하루 정도 머물다가 배에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길잡이 선원인 디에고 데 미루엘로에게 쌍돛대 범선을 끌고 플로리다로 가게 하면서 항구를 찾지 못하면 아바나에 있는 라 세르다와 합류해 보급품을 구해 본대로 합류시키도록 명령했으며, 그 사이에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 원주민 4명을 붙잡았다가 그들의 안내를 받아 마을로 들어간다. 삼베를 비롯한 천 조각과 깃털 장식, 금 부스러기를 발견해 그들로부터 손짓을 이용해 출처를 알아봤는데, 그들의 몸짓을 통해 그 곳에서 한참 떨어진 아팔라체라는 곳에 황금이 지천으로 깔려있다는 것으로 해석해 아팔라체 쪽으로 가기로 한다.
5월 1월에 원주민을 길잡이로 삼아 아팔라체로 향하다가 회계 책임자 알론소 엔리케스, 세금 징수관 알론소 데 솔리스, 선원 바르톨로메 페르난데스, 서기 헤로니모 데 알라니스, 재무, 군기 담당 카바사 데 바카, 그 밖의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들을 따로 불러내 자신은 대륙을 깊숙이 갈 것을 밝히면서 다른 의견을 물었는데, 카바사 데 바카가 의견을 제시하면서 반대했지만 외방 선교회의 신부들이 의견을 제시하면서 선원들이 그 의견에 찬성하자 해안을 따라가면서 항구를 찾기 위해 전진한다.
그러나 아팔라체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에서 끌어내리면서 카바사 데 바카에게 배와 남은 사람들을 책임지라고 했지만 이를 사양했으며, 카라바요에게 배를 통솔하는 임무를 맡겼다. 5월 첫째 주의 토요일에 내륙으로 가는 300여명의 일행들에게 식량을 지급하면서 물살이 빠른 강기슭을 하루 동안 건너다가 200여명의 원주민들과 마주쳐 그들이 공격하려고 하자 원주민 5, 6명을 포로로 잡았다.
원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마을에서 지내다가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다가 카바사 데 바카가 바다를 찾아보면서 항구를 알아보자고 건의하자 그를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직접 바다로 나가 항구를 살펴보도록 하면서 40명의 병사를 주려고 했지만 카바사 데 바카는 이를 거부했으며, 7월 말에는 세인트 마크스에 도착하지만 배가 쓸모없게 되자 현지에서 배를 만들었다가 9월 말에 5척의 배와 245명의 일행으로 멕시코를 향해 출항하지만 멕시코 만 북쪽으로 향하다가 배들이 실종되었다가 11월 초에 폭풍을 만나 실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