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 루아얄

Palais-Ro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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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브르 궁 북쪽에 있는 건물.

본래 리슐리외가 살던 대저택이었다. 리슐리외 사후에 주군인 루이 13세에게 증여했으며, 루이 14세가 잠시 살면서 왕궁으로 여겨져 '팔레 루아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이후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의 소유가 되어 루이 16세 때까지 오를레앙 가의 본거지가 된다.

2 혁명의 근거지

오를레앙의 평등공 루이 필리프 2세는 팔레 루아얄의 정원을 빙 둘러싸듯이 건물을 건설하고 상인들에게 임대를 했다. 이 개방지역에는 레스토랑과 상점이 즐비하게 입주했으며 정원에는 카페까지 생겨났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부동산 사업이 아니라 반역 모의(…)를 겸하고 있었다.

번화가이면서도 오를레앙 공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경찰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에 팔레 루아얄은 왕궁이라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무법자들이 모인 일종의 치외법권 구역(…)이 돼버렸다. 혁명가들, 위험분자, 심지어 창녀들까지 우글우글 모였으며, 나중에 프랑스 혁명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1]

부르봉 왕조 복고 왕정 시대에는 오를레앙 공의 작위를 되찾은 루이 필리프 1세의 소유로 되돌아왔으며, 다시 오를레앙 파의 본거지가 되었다. 오를레앙 가문은 프랑스 혁명기 때부터 대놓고 반역질 하던 놈들인데 대체 왜 돌려준 건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오를레앙 가문 자체가 부르봉 가문의 분가인데다 왕위계승서열 또한 직계 바로 다음이었던지라 어쩔 수 없었기도 하다.

현재는 프랑스 문화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런저런 상점이 지금도 반역 모의가많다고 한다.

3 건축

팔레 루아얄의 전체적인 구조는 광장에 접하고 있는 작은 앞뜰과 그 북쪽에 있으며 안뜰을 두르는 H형의 주옥과 회랑으로 안뜰과 구별되고 있는 가운데, 그 북쪽에 있는 90x225m의 정원을 둘러싼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원쪽의 1층을 주랑이 있는 상점가, 2층 이상을 주택으로 하는 우미한 코린트 식 대오더로 장식되어 있다.
  1. 사실상 여기가 바스티유 감옥 공격대의 출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