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디노

1 알프레도 페라리의 별명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의 첫째 아들인 알프레도 디노 페라리(Alfredo Dino Ferrari, 1932~1956)의 별명이다. 엔지니어로서 V8과 V6엔진을 탑재한 모델 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직접 V6엔진을 디자인하지는 않았다. 1932년에 태어난 알프레도는 1956년 24세에 지병인 근위영양증으로 모데나에서 사망한다.

2 1에서 이름을 따온 자동차

1960년대 이후 페라리에서 만든 6기통 스포츠카들의 총칭.[1] 이름의 기원은 1의 알프레도 디노 페라리의 별명. 그를 기억하기 위해 엔초 페라리페라리의 모든 6기통 모델의 이름을 디노로 한다.

1950~60년대 페라리는 오직 V12, V8 엔진을 탑재한 모델 밖에 없었고[2] 때문에 6기통 엔진을 장착한 포르쉐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따라서 페라리에도 6기통 모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6기통 모델이 페라리의 고성능 이미지의 하락을 불러올것이라 예상한 엔초 페라리는 6기통 모델 개발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결국 엔초는 세르히오 피닌파리나에게 1965년 파리 모터쇼에 출품할 미드엔진 컨셉을 디자인하길 요구했다. 하지만 페라리 이름이 아닌 디노라는 별도의 디비전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2.1 206/246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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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파리모터쇼에서 디노로 처음 발표된후 1967년 '디노 206GT'라는 이름으로 양산되었다. 공개 후 엔초의 예상과 달리 디노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에 1966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양산형에 근접한 206S를 선보였고 1967년부터 공식적인 생산과 판매를 시작했다. 206GT의 이름은 2.0리터+6기통 엔진에서 나왔다. 피아트제 V6 2.0 알루미늄 엔진이 65도 각도로 배치되었고 16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고 최고속도는 235km/h였다. 디자인은 피닌파리나가 했고 당시 이탈리아차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을 잘 살렸다.

디노의 특징중 하나는 미드쉽 구조이다. 당시 양산차에서 미드쉽 구조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특히 엔초는 미드십 구조가 운전자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하며 페라리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206GT는 1969년까지 총 152대가 생산되었다.

디노 246 GT디노 246 GTS

1969년 206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이자 디노 최고의 걸작인 246GT가 발표되었다. 이름은 2.4리터 엔진+ 6기통 엔진에서 나왔다.

246은 2.4 V6 합금헤드, 아이언블록 엔진이 65도각도로 배치되어 195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미국의 경우 배기가스 문제 때문에 175마력을 발휘했다.[3] 최고 속도는 235km/h였다. 이후 1971년에 오픈형인 GTS가 출시되었다.

246의 차체중량은 GT가 1050kg, GTS는 1100kg이었다. 비용절감을 위해 바디는 스틸로 제작되었다. 또 246은 206에 비하여 휠베이스가 53mm 늘어났다.

1974년까지 2487대의 GT와 1274대의 스파이더 모델이 판매되었고 종합적으로 3761대를 생산했다.

디노 206/246은 놀라운 디자인과 퍼포먼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모터트렌드 선정 최고의 페라리 7위에 올랐고 2004년 스포츠카 인터내셔널에서는 1970년대 최고의 차 6위에 올랐다.

2.2 308/208GT4

1973년 246의 후속으로 308GT4란 이름으로 데뷔했다. 206/246이 페라리 최초의 6기통 모델이라면 308은 최초의 8기통 페라리다. 디자인은 기존의 피닌파리나가 아닌 코피빌더 베르토네가 했고 기존의 유선형 디자인과 달리 선을 강조한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1976년부터는 디노가 아닌 페라리 뱃지를 붙여 판매했다. V8 3.0 엔진은 25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다.
  1. 모든 모델이 6기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8기통 모델도 존재한다.
  2. 이마저도 V8엔진은 레이싱 모델에만 있었고 양산차에는 없었다.
  3. 이 엔진은 훗날 란치아 스트라토스에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