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시절

1 소개

포항 스틸러스는 1973년 실업축구단인 포항제철 축구단으로 창단하여 존속하다가 1984년 프로축구단으로 전환하였다. 이 문서에는 1995년 포항 아톰즈 이전인 포항제철 축구단, 포항제철 돌핀스, 포항제철 아톰즈 축구단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다.

2 시기별

2.1 포항제철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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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축구단
1973시즌1974 시즌1975 시즌1976 시즌1977 시즌1978 시즌1979 시즌1980 시즌1981 시즌1982 시즌

포항제철 축구단의 뿌리는 대한중석 축구단에서 찾을 수 있다.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이 1964년 12월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되어 강원도 상동광산을 시찰하던 중 대한중석 축구단 선수들이자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들이었던 함흥철, 한홍기, 조윤옥, 김정석 등이 축구 훈련 시간 외에 광산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축구선수들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이렇게 박태준 명예회장의 관심과 지원 덕택에 대한중석 축구단은 1965년과 1966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2연패 하고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을 발굴하면서 당시 한국 축구의 큰 축이 되었지만 박태준 명예회장이 1967년 포항제철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1972년 1월 예전처럼 다시 회사업무 시간 외에만 축구 훈련을 허용하는 방침을 내렸고 이에 선수단이 반발하면서 해체되었다.관련기사

이를 지켜본 박태준 명예회장은 대한중석 사장 시절 돌봤던 대한중석 축구단 선수단을 받아들여 1973년 4월 1일 포항제철 축구단을 창단하였고 5월 2일 대한축구협회에 선수등록을 완료하며 공식적인 행보에 들어갔으며1974년 당시 최고의 전국 규모 축구 대회였던 제22회 대통령배 쟁탈 전국축구대회 첫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창단 1년만에 실업축구의 강호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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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당시 주요 선수

2.2 포항제철 돌핀스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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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돌핀스 축구단
1983 시즌1984 시즌


1983년 한국 프로축구인 슈퍼리그 가 창설되었고 실업축구단 자격으로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마스코트는 돌고래로 정하여 구단명칭을 포항제철 돌핀스로 확정하였으며 창단시부터 해외클럽과 친선경기가 벌어질 경우 대구와 포항에서 번갈아 개최하며관련기사 쌓은 기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대구/경북을 연고지로 정하였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명목상 연고지만 정하고 홈앤드어웨이 시스템을 하지 못 하다가 드디어 1987년 이 규제가 풀리자 현재의 대구시민운동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하고 선수단 전원을 대구로 이사시키고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보다 더 많은 팬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공격적인 팬서비스를 시행했지만 관련기사 이미 기반을 선점한 삼성 라이온즈와 경쟁에서 이기지 못 하고 1988년부터 포항으로 연고지를 축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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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슈퍼리그 1983시즌을 실업축구단으로 참여하여 5개팀 중 4위로 저조한 성적을 올렸고 이듬해 1984년 프로축구단으로 전향하여 명예회복을 노렸다. 그러나그 동안 대한축구협회의 주먹구구식 행정에 불만이 쌓였던 박태준 회장이 국가대표팀 차출 중인 최순호와 박경훈의 소속팀 복귀를 대한축구협회가 승낙하였다가 이에 번복하자 이를 계기로 폭발하여 1984 시즌 개막을 이틀 앞둔 3월 28일 슈퍼리그 참가 철회와 구단 해체를 결정하여 축구계가 큰 충격에 빠졌었다. 당시 포항제철 축구단이 해체되면 대한항공국제상사가 인수를 검토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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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포항제철 아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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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아톰즈
1985 시즌1986 시즌1987 시즌1988 시즌1989 시즌1990 시즌1991 시즌1992 시즌1993 시즌 |<:> 1994 시즌

1985년 2월 7일 팀의 상징인 마스코트를 돌핀스에서 철인 아톰으로 변경하였다. 명목상 이유는 돌핀스가 회사 이미지를 부각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포항제철 전직원의 사기를 진작시키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3.1 당시 주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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