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

?width=120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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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겸
(강원 FC)
남기일
(광주 FC)
손현준
(대구 FC)
김태완
(상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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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FC 서울)
서정원
(수원 삼성 블루윙즈)
김도훈
(울산 현대)
이기형
(인천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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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조성환
(제주 유나이티드)
최순호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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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FW
황선홍
FW
최순호
MF
김주성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서정원
DF
최강희
DF
김태영
DF
홍명보
DF
박경훈
GK
신의손
포항 스틸러스 역대 감독
박성화
(1996-2000)
최순호
(2000~2004)
세르지오 파리아스
(2005 ~ 2009)
최진철
(2016)
최순호
(2016~)
-
강원FC 역대 감독
초대 감독
최순호
(2008 ~ 2011)
김상호
(2011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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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 감독
최순호 (崔淳鎬 / Choi Soon-Ho)
생년월일1962년 1월 10일
국적대한민국
출생지충청북도 청주시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조건185 cm
유스팀광운대학교 (1981~1982)
선수시절 소속팀포항제철 축구단 (1980~1982)
포항제철 아톰즈 (1983~1987)
럭키금성 황소 (1988~1990)
포항제철 아톰즈 (1991)
로데스 AF (1992~1993)
국가대표95경기 / 30골
감독 커리어포항제철 아톰즈 코치 (1992~1993)
포항 스틸러스 코치 (1999~2000)
포항 스틸러스 (2000~2004)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2006~2008)
강원 FC (2008~2011)
FC 서울 미래기획단 단장 (2012~2013)
포항 스틸러스(2016~)
198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순호
FW
이태호
FW
백종철
MF
박창선
MF
허정무
MF
조영증
DF
정용환
DF
박경훈
DF
박성화
DF
정종수
GK
오연교

1 개요

아시안컵 최연소 득점왕 (만 18세)

세리에 A의 명문 유벤투스가 탐낸 한국 축구의 최고의 재능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및 행정가. 2016년 기준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생활

2.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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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였고, 1981년 광운대학교에 진학하였다.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프로화된 포항제철로 입단하여 5시즌 동안 55경기 24골을 기록하였다. 이 시절 1986년 팀의 우승과 1985년과 1987년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8년 럭키금성으로 이적한 후 3시즌동안 28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럭키금성에서도 1989년 준우승과 1990년 우승을 경험하였다. 이후 1991년 포항제철로 복귀하여 1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골은 없었다. 1992년 프랑스 2부리그 로데스 AF로 이적하여 18경기 2골을 넣었고 프로생활을 마감하였다.
K리그 통산 9시즌 100경기 23득점 19도움. A매치 기록 95경기 30득점과 비교해보면 지금 상식으로는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는 리그 스탯이지만, 쌍팔년도 당시에 전국구 선수라면 저게 정상이었다. 프로팀은 대표선수 월급 주는 호구쯤으로 여기고 마구잡이로 차출해서 굴리던 시절이었으니(...)[1].

2.2 국가대표

최순호는 1979년 청소년 월드컵에서 처음 청소년 국가대표로 데뷔하였고, 1980년 8월 23일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198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만 18세의 나이로 7골을(!) 넣으며 역대 최연소 득점왕에 올랐고,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심지어 1981년 호주 청소년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에서 2골 2도움의 MOM급의 활약을 벌여 이탈리아를 4:1로 이기는 대형사고를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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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로 나서서 3차전 이탈리아전에서 62분에 1:1이 되는 동점골을 넣었다.[2] 하지만 그 경기에서는 2:3으로 졌다. 1981년 청소년 월드컵부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 전까지의 활약으로 유벤투스 FC 구단이 그의 영입을 위하여 구애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유벤투스 구단의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물론 구단 수뇌진까지 나서서 최순호를 잡는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최순호의 플레이를 직접 보기 위해 그가 출전하는 국제대회 현장에 구단 관계자들이 파견되기도 했다. 그런 노력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외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풍토와 포항제철 구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진 못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J리그를 준비하던 일본 실업 리그에서도 거액으로 최순호를 스카우트하려고 시도한 바 있었다. 하여튼 최순호 본인은 이 당시, 유벤투스 행을 은근히 원했기에 무산된 것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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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정용환과 함께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3] 이 대회에서 유일한 득점인 스페인 전 황보관의 시속 114킬로 대포알 프리킥을 톡 차서 어시스트한 게 최순호(...). 나름 멸망 직전인 한국 국대 중 그나마 준수한 플레이를 했으나 기본적으로 이 대회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한국 월드컵 진출사에서 독보적으로 흑역사에 가까운 대회라...[4]

사실 월드컵 본선보다 본선 진출을 위한 아시아 예선에서 최순호의 활약은 눈부셨다. 1986년 한국의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은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맹활약한 것도 최순호였으며 마치 2000년대 이후 안정환처럼 한국 국대의 중요한 장면은 대부분 그와 연관되어 있을 정도로 국대공헌도가 높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때는 이탈리아에 가야한다며 맏아들을 이름 대신 '로마'라고 부를 정도로 국대에 헌신했다(...)[5] 이회택-차범근-최순호-김주성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의 에이스 계보의 한 명이다.

2.3 플레이 스타일

경기장의 지배자 '최순호' 님!

한국 축구선수로서 가장 높은 위상을 가졌던 선수가 차범근이라면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선수는 최순호다.
천재. 그것도 대한민국 축구 백여년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힌다.

즉 어느 액받이 무녀처럼 조금 재능이 있다고 호들갑스러운 언론이 갖다붙인 수식어가 아니라, 축구전문가와 팬들이 인정하는 진짜 천재.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최순호는 신체조건과 파워와 스피드, 축구 테크닉, 축구 지능 등 축구선수가 갖추고 있어야 할 거의 모든 긍정적 요소를 모두 갖춘 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선수였다. 185㎝의 장신에도 몸이 유연하고 발재간도 뛰어났다. 또한 슈팅 역시 날카롭고 강력했으며, 시야가 넓어 패싱 능력도 일품이었다.

특히 패싱에 관련된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8경기에서 1골을 넣고 8골을 도운 것이 그것이다. 대표팀은 8경기에서 17골을 터뜨렸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인 9골이 모두 최순호의 발끝에서 만들어진 것. 당시 대표팀에서 골 가뭄을 겪으며 부진을 겪고 있던 시기라 자신이 득점을 노리는 대신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 패싱과 어시스트 위주의 경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8경기 8도움이 되었다(...). 골이 안 들어가면 어시스트를 노리면 됩니다. 어때요, 참 쉽죠?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축구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어느 누구도 적시에 최순호에게 패스를 넣어주거나 최순호의 패스를 받을 최적의 위치를 선점하지 못했다(...).

3 감독 생활

3.1 포항 스틸러스 (2000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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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짤방이 감독시절 최순호의 포항에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1992년 은퇴 이후 포항제철의 코치로 스태프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9년 포항 스틸러스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2000년 박성화 감독의 사퇴로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절 2001년과 2002년의 FA컵 준우승, 2004년 리그 준우승을 거두는 등 성과를 거둔것 같아보이지만 최순호 특유의 수비축구로 인해 포항팬들이 다 떠났고 결정적으로 2004년 후기리그에서 꼴찌를 찍는 바람에 재계약의 명분조차 사라졌다.[6]

3.2 현대 미포 조선 (2006 ~ 2008)

2006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7년 내셔널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우승으로 K리그 승격을 기대하였으나 무산되었다. 2008년에도 리그 우승을 이룩하였다.

3.3 강원 FC (2008 ~ 2011)

2008년 12월 새로 창단된 강원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창단 초기에는 창단 버프를 받고 호성적을 내기도 했으나 이후 2011년 성적 부진으로 강원 FC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이후 2012년 FC 서울의 미래기획단 단장으로 선임되었고 2013년부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대한축구협회 시절에도 잡음이 없던 것이 아닌게 자기 라인인 김상호에게 U-19 대표팀을 맡겼다가 2014년 대회에서 조별 예선 광탈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3.4 포항 스틸러스 (2016.9 ~ )

다시 한 번 포항의 흑역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포항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

그리고, 2016년 9월 26일. 포항을 강등권으로 꽂아버린 최진철 감독의 뒤를 이어 12년만에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으로 다시 한 번 돌아오고 말았다. 당연히 포항팬들은 거세게 반발하고있다. 포항빠들 : 자, 다시 감독퇴진 현수막 걸자. 치킨을 시켰는데 치킨무만 배달된 기분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10월 2일 경기에서 화끈한 공격축구로 성남을 4:1로 잡아버렸다. 팬들도 깜짝 놀랐고. 이 승으로 인해 상주가 상위스플릿을 확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스플릿 1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는 최진철(...) 시절의 경기력이 다시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우려를 샀으나 최진철과 다르게 빠르게 빼낼 선수는 빼버리고 알리를 집어넣어 경기를 무승부로 마쳤다.

그러나 이후 수원 FC와 경기서 최진철 시절이 아닌 과거 자기 경기를 되살리며(...) 승격팀 수원 FC 에게 4연벙이란 새 역사를 창조했다.

뒤이은 인천과의 경기에서도 2-3으로 패해 강등 위기에 처했다.

4 기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고향 청주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으로 충북도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5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도의회 청주 6선거구)민주자유당12,325 (26.9%)낙선 (2위)
현역의원 상대로 처참한 격차로 낙선했던 흑역사가 있다. 거의 트리플 스코어(...)
  1. 최순호의 선수 생활은 전두환-노태우 재임시기였고, 소속팀 포철의 구단주는 여당 국회의원 박태준이었다. 29만원 각하께서 선수 출장시키라는데 거부할 수 있을리가 있나. 당시 위용이 어느정도였느냐 하면 88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은 출장을 못한다고 해서 대학 졸업한 국대선수들이 프로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버렸을 정도였다
  2. 이 골은 외국에서도 월드컵 역대 멋진 골을 선정하면 종종 순위권에 올라가는 환상적인 골이다.
  3. 벨기에와의 첫 경기에서는 정용환이 주장이었고, 스페인 전은 최순호가 주장이었다.
  4. 심지어 의리축구 등으로 인해 최악이라 불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다.
  5. 실제 최순호의 맏아들 이름은 최원영이다. 최로마에서 개명한 것이 아니고 집에서만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출처
  6. 당시 K리그는 전후기제도였는데 전기리그를 우승했기때문에 후기리그에 꼴찌를 했어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후기리그동안 고작 2승을 찍으면서 신임을 다 깎아먹었고 통합 준우승이 결정타가 되어 재계약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