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한국실업야구, 한국실업야구/역대 참가팀, 포항제철
포스틸 야구단 | |
Posteel Baseball Club | |
창단년도 | 1977년 12월 9일 |
해체년도 | 2002년 11월 |
모기업 | 포항제철(1978~1994) 포스틸[1](1995~2002) |
팀명 변천사 | 포항제철 야구단(1978~1991) 포스콘 야구단(1992~1994) 포스틸 야구단(1995~2002) |
포스코그룹 산하 스포츠단 | |||
포항 스틸러스 (축구) | 전남 드래곤즈 (축구) | 포스코건설 럭비단 | 포스코건설 체조단 |
포스코에너지 탁구단 | 포스코특수강 배드민턴단 | 포스코켐텍 바둑단 |
1 소개
1977년 12월 9일 포항제철 야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창단 선언 기사.창단식 기사. 당시에 포항제철은 국영기업이라 선수 공급에 제한이 있어, 때마침 기업은행이 해체되자 남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창단 당시 포항제철측이 "니들이 한국화장품 야구단 창단때 대학졸업선수 15명을 특별지명할수 있게 해준것 처럼 혜택을 주기로 해놓고 왜 안해주냐"라고 항의한적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대한야구협회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롯데 자이언트와 한국화장품 야구단 창단때 신인선수들을 죄다 퍼주는 바람에 기존의 실업팀들이 전력 수급을 할수 없게되자 부랴부랴 막아버린건데, 문제는 그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포항제철측에 특별지명에 대한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한것.(...)
당시 기사
우여곡적끝에 창단된 포항제철 야구단은 1978년 한국실업야구 사상 처음으로 고과연봉[2]제도를 도입해 관심을 끌었다. 이때 혜택을 본 인물이 1978년 준우승을 이끈 1루수 유태중과 2루수 배대웅. 직장 입사 1년차[3]임에도 계급장을 승진시켜주고 봉급도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상승 되었다. 당시 기사 이때문에 같은 공기업 라이벌은 한국전력이 자극을 받아 산하 체육관리위원회에 선수들의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 했다고.
이후 1992년 포스콘으로 팀이름을 바꿨으나 실업야구의 인기 저하와 리그 축소속에 방치되어 운영되던 도중 1995년 4월 22일, 포항제철의 자회사인 포스틸이 팀을 인수했다.##
그후 운영되다가 2001년에 들어서면서 실업야구팀이 단 3개구단(제일유리, 한전, 포스틸)만이 남은 상황에서 더이상 선수수급이 어려워지고 구단 운영의 이유가 사라져 버리게 되자, 제20회 전국실업야구대회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제일유리, 한전과 같이 2002년 11월에 해체되었다.
2 역대 유니폼
400px |
400px |
1979년 유니폼. |
400px |
1981년, 김용희 |
400px |
1995년 줄무늬 유니폼 |
3 관련인물
- 김용희(1977년~1981년)
- 배대웅(1978년~1981년)
- 삼성 라이온즈 입단전에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당시 최고의 수비형 2루수로 평가받았었다. 김성근감독은 그시절 배대웅을 "수비력 하나만큼은 박진만과 동급."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 프로야구 출범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 신현석
- 전 감독. 포스틸 감독 시절, 한국야구사 첫 드림팀이라 불리었던 98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멤버로 대학 졸업후 프로로 갈때까지 포항제철에서 뛰었다.
- 장효조(1979년~1980년)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기전, 이곳에서 활약했다.[4] 참고로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이 장효조를 영입하려고 할때 장효조가 강남 아파트 1채를 달라고하니 거기다 보너스를 얹여서 데려온 일화는 유명하다.
- 함학수(1979년~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