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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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 겸 타격코치 재직 당시 사진.

NC 다이노스 No.88
양승관(梁承琯)
생년월일1959년 6월 2일
국적대한민국
출신학교인천고 - 인하대
포지션우익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멤버
소속팀삼미 슈퍼스타즈(1982 ~ 1985)
청보 핀토스(1985 ~ 1987)
태평양 돌핀스(1989)
LG 트윈스(1990)
지도자LG 트윈스 코치(1991 ~ 1992)
태평양 돌핀스 코치(1994 ~ 1995)
현대 유니콘스 코치(1996 ~ 1999)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2001 ~ 2002)
롯데 자이언츠 1군 외야수비 & 주루코치(2003 ~ 2004)
SK 와이번스 1군 외야수비코치(2005)
SK 와이번스 재활코치(2006)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2007 ~ 2010)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 & 타격코치(2012)
NC 다이노스 2군 타격코치(2013)
NC 다이노스 1군 수석코치(2014 ~ 현재)

1982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준환(해태 타이거즈)
양승관(삼미 슈퍼스타즈)
김성관(롯데 자이언츠)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박종훈(OB 베어스)

1 소개

원조 인천 사나이. KBO리그 초창기 인천야구를 대표했던 인천 프로야구의 초대 프랜차이즈 스타.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높았던 유일한 슈퍼스타.

전직 한국프로야구 선수로 2013년 11월부터 NC 다이노스의 수석코치를 지내고 있다.

야구인 집안의 큰형이다. 동생인 양후승과 양주승 모두 야구 선수로 지도자를 역임한 인물이다. 한 때는 3형제 모두 야구 지도자로 활동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로 아래 동생인 양후승은 고교 야구 지도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고, 양주승 역시 오래동안 아마야구 지도자로 활약한 인물. 다만, 이들 형제 중에서 선수로서 가장 대성한 것은 큰형인 양승관이다. 인천고 시절 최고의 타자로 각광받았고, 인하대학교 야구부의 창단 멤버로서 타격상과 홈런왕을 차지했던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인천고등학교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야구 팀 포항제철 야구단에 있다가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고향인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창단 당시 삼미는 역대급의 최약체였는데, 그 팀에서 유일하게 볼 만한 선수로 평가받았던 인물이 바로 양승관이었다. 외야수로서 적절한 타격 실력과 상당히 뛰어난 수비력을 가지면서 삼미의 외야를 지켰고, 그 결과 원년에 수비로 뽑던 외야수 골든 글러브의 수상자가 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외야수 역사상 최고의 어깨를 꼽으라면 늘 첫 손에 꼽히는 인물 중 하나인데, 경기 시작전 토스로 몸을 풀때 홈 플레이트에서 다이렉트로 중앙 펜스를 쉽게 넘기는 무시무시한 강견을 자랑했다.
게다가 송구의 정확도도 대단해서, 엄청난 보살 장면을 밥먹듯 연출했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우익수에서 안타 타구를 잡아 1루로 던져서 우익수 땅볼을 만든 것. 그리고 이 때 타구를 친 선수는 전설적인 도루왕인 해태 타이거즈김일권이었기 때문에 양승관의 어깨가 그야말로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삼성 라이온즈황규봉이 삼미를 상대로 9회 1사까지 완벽하게 막아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뒀으나 양승관이 안타를 치면서 치욕스런 기록을 막을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원년 삼미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상모까지 돌리는 활약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원년부터 1989년까지 팀 이름이 삼미-청보-태평양으로 바뀌는 동안 영광과 오욕을 함께 했다. 1983년 장명부의 가세와 함께 반짝 돌풍을 일으킬 때 3할 타자로서 한몫했고, 팀이 끝없는 연패에 빠질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프로에서는 완전하게 성공한 것은 아닌데, 잦은 부상 때문에 실제로 가동되는 시즌 자체가 적었다. 쇄골 뼈 부상, 인대가 끊어지고, 발목 부상, 허벅지 부상 등등.유리몸 결국 1988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었다가, 같은 해 7월에 연습생 신분으로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굴욕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재기에 실패하고 1989년을 끝으로 태평양에서 방출당한 그는 자신의 스승이던 백인천 밑으로 가서 한 시즌을 더 뛰고 1990년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LG 트윈스에서 유니폼을 벗었다.(그래도 우승반지 갖고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에는 LG 코치, 태평양 타격 코치, 현대 타격 코치, SK 타격 코치, 롯데 외야수비 코치 등을 역임하다가, 롯데 시절 그를 부른 백인천이 백골프로 흑화하면서 해임된 후, 한동안 프로 무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교인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했다. 그리고 인하대학교 야구부 감독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2012년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감독을 맡아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넥센의 코치진 개편에 따라 2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NC 다이노스의 2군 타격코치로 새롭게 부임했다. 스카우트로 일하던 동생 양후승도 2군 재활코치에 선임되면서 형제 코치가 탄생했다. 2013 시즌 종료 후 NC 다이노스의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한편 동생은 다시 스카우트로 보직 변경.

4 여담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김혁이 양승관 역을 맡아 삼미 선수들을 아니꼽게 생각한 캐릭터하지만 그 경기에서의 감사용에게는 츤데레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달리 실제로는 삼미의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언제나 선수들을 따뜻하게 독려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