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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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의 모습

KIA 타이거즈 No.88
박재용(朴載容 / Jae-Yong Park)
생년월일1969년 6월 16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서울용마초-서울신일중-신일고-단국대
포지션외야수, 지명타자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94년 해태 타이거즈 2차 3라운드 지명
소속팀해태 타이거즈(1994~1998)
쌍방울 레이더스(1999)
SK 와이번스(2000)
지도자 경력경찰 야구단 타격코치 (2013)
KIA 타이거즈 3군 타격코치(2014~)

1996년 ~ 1997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형석(OB 베어스)박재용(해태 타이거즈)양준혁(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8번
한대화 (1986~1993)박재용 (1994~1998)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구단 창단박재용(2000)오승준(2001)

1 소개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선수이자 KIA 타이거즈 3군 타격코치.

좌투좌타의 외야수. 등번호는 8번(해태) - 27번(쌍방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자 한국 최초의 청각 장애인 프로야구 선수.[1]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사실 프로선수는 커녕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몸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면 기자의 입술을 보고서 느릿느릿 억양없이 말을 할 정도로 중증의 난청 환자였고[2], 발도 느려서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였다.[3] 그러나 귀가 들리지 않는 대신 집중력이 뛰어나 단국대 시절 팀의 붙박이 4번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3 프로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는 박철우의 후계자로 그를 낙점하고 2차 1순위에 지명했다.

해태에서도 이상훈을 상대로 역전 그랜드슬램을 작렬하고, 96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결승 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 세 차례 우승 반지를 끼고[4], 두 차례 지명타자 부분 골든글러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지명타자 입후보 기준이 300타석 이상에 2할 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였기 때문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첫 지명타자 부분 수상자였던 그를 두고서 PC통신 상에서는 우승팀 보정이라고 까였다.(…)

골든글러브 수상은 약간의 행운도 따랐다. 1996년에 0.246 4홈런 37타점으로 수상했는데, 지금이면 말도 안 되는 성적이지만, 그 당시 경쟁 후보였던 윤덕규의 성적이 0.267 5홈런 23타점이니까 우승팀 버프 + 타점을 감안하면 못 받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97년도 마찬가지인데, 박재용은 이 해 0.245 7홈런 33타점을 기록했고, 역시 지금이라면 지명타자의 성적이 아니지만, 경쟁자인 허문회가 0.272 3홈런 14타점이었고, 이정훈이 0.237 2홈런 33타점, 윤덕규가 0.239 5홈런 17타점으로 한 마디로 개중에 제일 나았다(...)

결국 노쇠화와 수비 불가라는 단점 때문에 장성호의 성장과 양준혁의 영입 이후 기회를 잃어 99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0년 시즌종료후 SK구단에서 쌍방울 출신 선수들을 대거방출할때 김성래, 심성보, 박정현, 강병규등과 같이 방출되었다. 사실상 선수은퇴.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얼마만큼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던 선수.

4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중앙고, 신일고 등에서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13년 동봉철의 후임으로 경찰 야구단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오랜만에 프로야구계로 복귀했다.

2014 시즌을 앞둔 2013년 10월 17일 KIA 타이거즈의 3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1. 정확히 말하면 장애인은 아니라고 한다. 2016년 5월 20일 라디오볼에서 이재국 기자가 언급하기로는 한쪽귀가 불편한 건 사실인데 그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며 오히려 언론에서 장애를 가진 선수라는 부분이 부각되어 실제로 청각 장애인 협회에서 연락을 받아 박재용이 당황해 했다고.
  2. 니혼햄의 투수 이시이 유야도 난청인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으며 등판시 스위치를 끈다.
  3. 당시 해태는 수비 실책이나 주루 미스를 범했을 때 5만원씩의 벌금을 냈는데, 그는 매년 200만원 씩을 코끼리 감독에게 기부했다고 한다.(...)
  4. 93년, 96년, 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