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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Paul Cézanne)
1839년 01월 19일 ~ 1906년 10월 22일
1 개요
1839년 프랑스 남쪽 끝에 있는 엑상프로방스에서 은행가 루이 오귀스트 세잔과 미혼녀 엘리자베드 오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기숙사 국민학교 생조제프를 나온 후 고등학교 부르봉을 다니면서 소설가이자 불효자 에밀 졸라와 사귀게 된다. 후에 졸라가 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오해해 절교하게 된다. 졸업 후 인근에 사는 화가들을 자주 방문하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극성적인 반대로 포기를 하였다가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온 이후 아버지의 은행에서 일을 했으나, 졸라의 권유와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설득으로, 다시 미술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해서 22세 때 파리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시험에 떨어진 후, 혼자서 독학을 했다. 파리에서 기오망·피사로·모네·드가·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었다. 그동안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껴 여러 번 시골에 내려가 있기도 하였다. 1882년 대망의 관전(官展)에 입선하고 1895년 개인전을 개최하여 점차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그림은 처음 1870년경에는 어둡고 격정적인 상태를 에로틱하게 표현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었으나, 카미유 피사로의 외광 묘사에 자극을 받은 후 화면이 급속히 밝고 단순화되어 갔다. 그러나 살롱에 출품한 작품들이 낙선함으로써 인상파에서 떠나, 모네의 견실성을 뼈대로 한 형과 색깔의 과묵한 표현에 집중, 긴밀한 구성을 갖는 그의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는 사기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고 말하고 정확한 묘사를 하기 위해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일화가 있다.역시 대가는 다릅니다. 이처럼 그는 인상파의 사실주의를 추진시켜 단순한 시각적·현상적 사실에서 다시 근본적인 물체의 파악, 즉 자연의 형태가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을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대표 작품으로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1],《목욕하는 여인》,《아버지의 초상》,《여자와 커피포트》,《프로방스의 산》, 《에스타크의 바위》,《생트 빅트와르의 산》등이 있다.
2 미디어
2.1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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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르누아르로부터 물감튜브공격을 당하는 세잔.
애니메이션 4기 1화에 출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는 원수라도 졌는지(...) 사이가 매우 안좋게 나온다.
처음에 누드화를 그리고 싶다는 르누아르의 말을 엿듣고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다가 르누아르의 필살기르누아르 로켓를 맞기도 하는 등 초반부터 티격태격하는 사이. 결국 르누아르와 그림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막장스런 전개 끝에(르누아르 항목 참조) 카미유 피사로로부터 둘 다 이번 시합때 그린 작품을 내지 말라는 평을 들었다.[2] 주요 공격기로는 뒤돌려차기(...)가 있다.
실제로 르누아르와는 화풍의 차이[3]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험악했을 근거는 없다. 취향이 다르다고 원수질 이유는 없는것이다.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개그만화 덕에 르누아르와의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게 다 개그만화 때문이다.
여담으로 현실의 르누아르는 세잔의 그림을 4점이나 갖고있었다. 세잔은 당시 화가들에게 혁신적인 아이콘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