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Hilaire-Germain-Edgar Degas)
1834년 7월 19일 ~ 1917년 9월 29일
1 설명
파리에서 태어난 드가는 주로 발레 무용수와 경주마를 작품 소재로 삼았다. 주로 인상주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는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색채를 띠고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도 있다.
루이르그랑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1855년 앵그르의 제자 루이 라모트의 소개로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거장들의 그림을 익혔다. 1856-1857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의 거장, 특히 기를란다요, 만테냐의 작품을 배우고, 또 푸생·홀바인의 그림도 배웠다. 1865년 살롱에 <오르레앙 시의 불행>을 출품하고, 보불전쟁 후, 인상파 전람회에 참가하였으나 뒤에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872년 어머니의 고향인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로 떠나 미국의 역동성을 목격했다. 1873년 파리로 돌아와 인상주의 화가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고, 말년에는 지병인 눈병이 악화되어 시력을 거의 잃는 바람에 주로 조각에 몰두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아버지를 두고 다른 남자(다름 아닌 아버지의 친형제)를 사랑했기에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때의 영향으로 여자를 싫어하게 됐다는 말이 있다.
초기에는 가만히 서 있는 사람만을 그렸으나 후기 그림은 일상 생활을 하는 그림을 그렸다.
초기의 화풍은 고전적으로 <보나의 초상> <꽃을 든 여인> <이오 부인> 등의 초상화에서 출발했으나, 차츰 무용, 극장 등의 근대적 민중 생활의 묘사를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그리는 독자적인 수법을 썼다. 특히, 보는 각도를 바꾸어 가면서 정확한 데생과 풍부한 색감을 표현하였다. 무희를 모델로 한 작품이 많아 '무용의 화가'로 불린다. 주요 작품으로 <댄스 교습소> <국화 옆의 여인> 등이 있다. 당시 드가의 이런 소재 선택은 꽤 파격적인 편인데, 당시만 해도 무용수들의 처우는 매춘부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라 할 정도의 하층민이었기 때문이었다. 드가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모델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도 직접 노력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실주의 그림을 무척 싫어했기에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사실주의 그림을 보고 차라리 사진을 찍으라며 엄청 악평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하자 한번은 지팡이를 쳐들고 사실파 색히들에게 쏘는 총이다! 탕!탕! 이렇게 친구들 앞에서 크게 외친 적도 있었다...
2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에드가 드가
왼쪽 두번째에 위치한 실타래(...) 내지는 회전초(...)같이 생긴 인물. 믿기 힘들겠지만 성우도 있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애니메이션 4기 1화에서 르누아르와 세잔의 한심한그림시합에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클로드 모네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출연한다.
시합 중 폭주한 르누아르에 의해 던져져 폴 세잔을 본의 아니게 공격하고 세잔이 그린 그림에 체액을 흘리며 사망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머지 두 인물보다 존재감 측면에서 낫긴하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인기투표에서 10위를 차지했다. 충공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