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세라노

Francisco Serrão
(? ~ 1521)

포르투갈의 모험가로 그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사촌인 인물이다.

1509년에 디오고 로페스 데 세케이라의 함대에 합류하여 말라카 왕국에 무역 허가를 요구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을 때 함께 참전한 마젤란과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1511년에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가 보낸 안토니오 데 아브레우의 탐험대에 합류하여 몰루카 제도(향료 제도)로 향했는데 1512년에 배가 부숴져서 암본(지금의 암보이나) 북쪽의 히투인들이 지배하는 섬에 도달하여 한 달 동안 반다 제도에서 탐사하면서 배를 수리하였으며 육두구와 메이스를 싣고 출항하였다.

암본을 거쳐서 아브레우와 합류하려다가 폭풍에 휘말려서 몰루카 제도에 속하는 테르나테 왕국의 테르나테 섬에 도착하였다가 죽은 생물들을 먹는 스캐빈저들이 공격하자 그들을 붙잡아서 안내하게 하여 히투인들의 섬인 암본에 도착하였으며 말라카의 자바 섬의 붕괴 이후 일시적으로 향료 무역이 중단되었을 때 향신료와 음식을 사들여서 환영받았다.

포르투갈이 위력적인 대포를 가졌기 때문에 티도레 왕국과 대립하여 그 관계를 청산하려는 테르나테 왕국의 환영을 받아 테르나테 왕국의 비호를 받아 근처에 요새인 벤텡을 건설하여 향료 무역을 하였다. 또한 테르나테에 대한 군사적인 지원을 하여 테르나테 왕국의 히투, 세람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하고 술탄과 친해지면서 테르나테의 지배자인 바얀 샤울라의 고문이 되었다.

그 이후 마젤란에게 편지를 보내어 향료 제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그의 탐험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며, 마젤란이 필리핀의 막탄 섬의 전투에서 사망할 때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다.

마젤란을 따라갔던 안토니오 피가페타가 지은 연대기에 따르면 테르나테 섬에서 티도레의 왕 알만소르가 세라노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테르나테의 왕 아불레이스이 승리했다. 알만소르가 부인을 테르나테 왕에게 바치거나 주요 대신들의 자녀를 볼모로 자녀로 보내 양국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는데, 티도레의 왕 알만소르가 세라노에게 마음 속으로 원한을 품어 향신료 무역을 위해 티도레 섬으로 오자 독이 든 구장식물을 선물하면서 세라노는 구장을 씹었다가 나흘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어 독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