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피가페타

Antonio Pigafetta
1491 ~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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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학자, 탐험가.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이다.

이탈리아 북부 비센자 지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천문학, 지리학, 지도제작술 등을 배웠으며, 구호기사단의 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레오 10세의 사절인 안드레아 치에리카티를 수 년 동안 보좌했고 1519년에 치에리카티를 따라 세비야로 이주한 안토니오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함대 모집에 응하여 약간의 월급[1]을 받는 보조 선원(소브라살리엔테)으로 들어갔다. 탐험 기간 중 그는 함대가 거쳐간 지역의 지리, 기후, 동물, 식물, 원주민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기록에 남겼고, 이는 후대 탐험가와 지도 제작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특히 그의 세밀하고 정교한 해사학, 언어학적 기록들은 후대에 대항해시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도 훌륭한 연구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마젤란을 존경해 그가 적은 기록에는 마젤란이 1520년 4월 1일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후에 마젤란이 반란자에 대해 처우하는 기록에 대해서는 일부러 누락했지만 파타고니아에서 원주민들을 속여 족쇄를 채우게 한 일에 대해서는 교활한 속임수라고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가페타는 마젤란이 사망한 필리핀의 막탄 섬에서 역시 부상을 당했으나, 다행히 죽지 않고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와 18명의 선원과 함께 살아돌아왔다. 1522년 항해가 끝난 후 그는 베네치아로 돌아갔고 1525년에는 그의 항해기록을 토대로 한 'Relazione del primo viaggio intorno al mondo(첫 세계일주 항해에 관한 기록)'라는 책을 남겼는데,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

그가 인쇄할 당시에 20년간 다른 사람이 인쇄하는 일이 없도록 시 위원회에 요청해 향후 20년간 피카페타의 책은 다른 사람이 인쇄하지 못했다.

피카페타는 마젤란 해협을 파타고니아 해협이라 불렀다.

대항해시대 3에서 고용 가능한 항해사로 등장한다. 직업은 통역으로 되어있는데 유럽에서 쓰이는 언어 5개 모두가 3랭크이다(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로망스어, 게르만어, 슬라브-그리스어). 아랍어까지 3이었다면 완벽했겠지만 아랍어가 2라는게 조금 아쉬운 정도. 그외엔 역사학, 과학이 3이고 신학도 2라 여러모로 괜찮다. 특이하게 운이 88로 굉장히 높은 편이다. 마젤란의 항해에서 살아남은 것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1. 피카페타는 낮은 금액인 1000마라베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