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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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Harry Compton Crick
1916년 6월 8일 - 2004년 7월 29일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떠올리고, 센트럴 도그마를 제창하였으며, 코돈을 밝혀낸 분자생물학의 거두.
1962년 DNA 구조를 함께 밝혀낸 J.D.왓슨,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영국 출신.
하지만 인증절차에서 표절에 가까운 행위를 했고,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불판 위에 감자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박사 학위는 아직 취득하지 못한채 물의 점성 연구 같은 것을 하던 중 2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크릭은 군에서 레이더 및 어뢰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전쟁 중 하필이면 크릭의 연구실 천장으로 폭탄이 떨어져 연구실은 박살이 났고 그에 따라 전후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 군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의 영향으로 관심사를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돌렸다.
전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생물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고, 바로 이 곳에서 함께 필생의 업적을 이루게 되는 영혼의 파트너 왓슨을 만나게 된다.
프랜시스의 사후에 나온 기사에선 약을 빨고 이중나선 구조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뭐지, 이 역사에 남을 과학자에 대한 문서의 본문이 고작 두 줄? 이 정도는 양반이다. 제임스 듀이 왓슨은 문서조차 없다D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