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 마사노리가 쓴 라이트 노벨 대디페이스 두 번 째 권 '세계수의 배'에 등장하는 이야기. 참고로 대디페이스는 그냥 소설, 그것도 전기계 어반 판타지소설이지 학술서적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이렇게 나왔다고 해서 "사실은 ~~했던것 아닐까"란 식으로 믿어버리면 곤란하다, 일종의 시편 형식으로, 제대로 된 문서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기존의 북유럽 신화를 송두리 째 뒤집어 엎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북구 신화에서 아스 신족과 더불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 신족이 사실은 단순한 인간이었다는 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 줄거리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던 반 신족의 앞에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기묘한 마법을 이용해 반 신족을 순식간에 제압했고, 그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다.
프레이야와 그 오빠 프레이는 반 신족의 유력자 집안의 아이들로, 반 신족의 관리자가 되었다. 관리자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부담하게 된 노동량은 다르지 않아 오히려 본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신들은 반 신족을 이용해 뭔가를 실험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데려간 사람들은 때로는 팔다리를 잘리거나 붙인 채 돌아왔고, 작은 어린아이도 커다란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온 사람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죽음을 맞았다. 신들은 역병의 씨앗을 고의로 뿌리고 그 추이를 지켜보기도 했다. 오히려 가축이 반 신족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던 중 마침내 비극이 일어났다. 반 신족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들의 실험 탓이 틀림없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반 신족을 비웃으며 너희는 너무 많아졌다, 그러니 조금 줄어들어도 괜찮지 않느냐고 말했다.
인내의 한계를 넘은 프레이는 분노에 미쳐 검을 들었다. 그러나 그 미미한 저항은 소용 없었고, 프레이는 아스 신족의 수장 오딘의 창 궁니르에 가슴을 꿰뚫려 죽고 말았다.
프레이야의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슬픔 속에서 몇 년이 지나갔다.
한 명의 남자가 반 신족의 마을로 운반되어 왔다. 여행을 하던 중인지 쏟아지는 눈 속에 쓰러져 있던 것을 프레이야가 구해주라고 지시한 것이다. 온정 같은 것은 아니었다. 노동력의 확보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피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을에서 요양을 하게 된 남자는 점차 체력을 회복해 갔다.
남자는 길고 검은 장발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팔다리가 우람했으며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허리에는 붉은 색의 장검을, 등에는 검은 색의 대검을 차고 있었다. 망토 아래로는 반 신족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국의 장신구들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수르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새까맣다는 뜻이었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눈에는 생기가 없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와 동침하는 일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반 신족도 차츰차츰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는 고독해졌지만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루는 한 부부가 싸움을 벌였다. 눈싸움이 말싸움이 되고 말싸움이 몸싸움이 되었지만 마침내 화해하고 어깨를 맞대었다. 수르트는 그 광경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고, 그의 그런 모습을 본 프레이야는 그에게서 신비한 무언가를 느꼈다. 수르트는 가지고 있는 장신구로 아무런 주문도 없이 불을 일으키기도 했다.
프레이야는 수르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지니고 있을 지 모르는 잠재적인 강함에 기대한 것인지도 몰랐다. 프레이야는 수르트에게 자신과 잠자리를 함께 할 것을 바랐지만 수르트는 거절했다. 프레이야는 그것을 수치로 여기고 그를 비난했다. 그녀는 수르트를 추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수르트는 요양을 마치고 마을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수르트가 마을을 떠나던 날, 이전에 남편과 다투던 여인이 살해당했다. 신들의 실험 재료를 구하러 온 신의 전사 에인헤야르들에게 병에 걸린 남편을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다가 칼에 베인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말을 잊은 수르트에게 프레이야는 그들에게 대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그 한 마디의 말이 수르트를 변화시켰다.
수르트는 신들의 전사 앞에 맞서 허리의 검을 뽑았고 승부는 한 순간에 끝났다. 백 개의 창으로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말에 타고 창을 들었다는 절대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말과 갑옷 채로 두 동강이 나버린 것이다. 살아남아 도망치던 전사들은 수르트의 외침에 호응해 찢어진 하늘에서 쏟아진 불꽃에 산 채로 불탔다.
죽일 수 없는 전사들을 죽였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신들이 올 것이라고 프레이야는 수르트를 비난했다. 그러나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수르트의 분노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르트는 반 신족이 세계의 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반나절 동안 그들이 자신들의 집 안에 숨어 있을 것을 종용했다(이 부분이 논리적으로 모순되는데, 집 안에 있다고 세계의 멸망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르트의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된 그들은 수르트의 말대로 집에 숨어 문을 걸어잠갔다.
수르트는 말도 타지 않고 세계수 이그드라실로 향했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반나절 동안 계속되었고, 굉음이 멈춘 후에야 집에서 나온 프레이야가 본 것은 세계수 이그드라실마저 불타오르는 멸망한 세계였다. 싸움을 마치고 돌아온 수르트는 그녀의 앞에 마신 오딘과 전신 토르의 잘린 목을 집어던졌다.
수르트가 강물에 탄 약이 반 신족의 건강을 회복시켰다. 싸움은 끝났고 반 신족은 압제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신들의 죽음은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고 반 신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두려워했다.
수르트는 '너희들은 세상을 넓혀라, 이 세상에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반 신족을 떠나갔다.
프레이야는 그가 떠나기를 원치 않아 눈물로 만류했다. 자신들과 함께 함께 땅을 일구며 살아가자는 말을 듣고, 수르트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찬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할 이 위대한 검사, 구국의 대영웅은 오히려 자신이 구해낸 사람들을 향해 고마운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수르트가 마을을 떠나가고 몇 년 후 반 신족은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한 젊은 부부에게서 남녀 쌍둥이가 태어난 것이다. 남자아이에게는 리프, 여자아이에게는 리프트라시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2 북유럽 신화와의 비교
이미 언급되었듯 아스 신족과 함께하던 반 신족이 평범한 인간족, 노예의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오딘과 토르를 비롯한 아스 신족은 반 신족을 학대하는 악역을 맡고 있다.
프레이야의 오빠 프레이는 아스 신족에 저항하다 오딘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는데, 북유럽 신화 원전에서는 오히려 수르트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죽게 된다.
수르트는 멸망의 거인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탈바꿈했으며(불이 수르트를 상징하는 것은 양쪽이 같다) 원전에서 수르트가 프레이야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젊은 부부의 아이들인 리프와 리프트라시르는 원전에서는 라그나로크 이후 세계가 재생될 때 이그드라실의 뿌리에 숨어 있다가 나와 새로운 인류의 선조가 되는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