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Javier Carlos Vázquez |
생년월일 | 1976년 7월 25일 |
국적 | 푸에르토 리코 |
출신지 | 폰세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4년 5라운드 몬트리올 엑스포스 지명 |
소속팀 | 몬트리올 엑스포스(1998~2003) 뉴욕 양키스(2004)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5) 시카고 화이트삭스(2006~2008) 애틀란타 브레이브스(2009) 뉴욕 양키스(2010) 플로리다 말린스 (2011) |
한국 팬들에게는 박찬호에게 맞은 홈런으로도 많이 기억에 남는 선수다. 사실 두 선수는 전성기 때엔 라이벌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커리어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몬트리올 시절 박찬호에게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을 헌납한 흑역사(...)부터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몬트리올 시절에는 굉장히 솔리드한 선발투수로서 매년 220이닝 이상 소화하며 스테로이드 시대에 약물을 빨지 않고 4점대 초반 ERA를 찍었다.
그러나, 악의 제국만 가면 맨날 망했다. 첫번째로 갔을 때는 닉 존슨, 후안 리베라, 랜디 초테를 대가로 트레이드되었다가 4.91을 찍고 랜디 존슨 트레이드에서 디백스로 쫓겨났다. 특히 2004 ALCS 7차전에서 자니 데이먼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양키스 역사상 최악의 굴욕이라 할 수 있는 리버스 스윕의 원흉이 되었던 것으로 아직도 그에 대해 치를 떠는 양키 팬들이 많을 정도. (당시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의 혹사로 인해 데드암 증세가 있었다고 한다.) 2010년 두번째로 제국에 갔을 때는 멜키 카브레라 등의 선수들과 트레이드되었다가 5점대 찍고 막판엔 불펜 강등되는 안습한 사태를 겪기도.
그 외에 디백스나 시삭스에서도 준수하긴 하지만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1] 다만 그에 대해 특기할만한 사항을 더 소개하자면, 유독 내셔널리그 동부의 브레이브스에선 사이영 급의 에이스 노릇을 했던 것[2], 조국 푸에르토 리코를 사랑하여 WBC에 출전하기도 한 선수고 팀 선택 기준에서도 고향과 가까운 팀을 우선으로 꼽는다는 점[3], 참치네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와 친하다[4]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부상만 없다면 매년 220이닝 가까이 먹어줄 수 있는 이닝이터로서의 능력도 있었고, 매년 200K 가까운 탈삼진을 잡아내기도 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성격이나 그와 비슷한 형태, 혹은 더 나은 수준의 커리어를 지닌 선수로는 존 갈랜드, 마크 벌리 등이 있어서 바스케스를 리그를 리드하는 최고 수준의 에이스라고는 볼 수 없고 준수한 3선발 정도의 인상이다. 또한 통산 WHIP을 보면 1.249로 꽤 준수하긴 하지만 몰려맞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ERA가 4점대 초반이다.[5]
하지만 2011년에도 준수한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은퇴 의사를 밝혔다. 시즌 마지막에 29이닝 연속 무실점 28K 4볼넷이라는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보여주며 통산 승률 5할을 넘어 165승을 달성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듯 하다.
2013 WBC때 출전가능성과 MLB복귀설이 나돌았으나 몸을 만들던 윈터리그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무산, 사실상 복귀는 힘들어보인다.
- ↑ 대도시 연고의 강팀에서는 멘탈이 흔들린다거나 하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유형의 선수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것이 잭 그레인키마냥 정신질환 같은건 아니지만...
- ↑ 지명타자 항목에서도 언급되었을 정도로 박찬호(지금은 떠났지만)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내셔널리그형 투수였다. 타격도 투수 치고는 괜찮은 수준으로 통산 2할의 타율을 자랑하며, 2009년에는 내셔널리그 최다 20번의 희생번트 성공을 기록하기도 했다.
- ↑ 특히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푸에르토 리코의 이람 보손 경기장에 올 때 무지막지한 환호를 받기도 했다. 사실상 현역 푸에르토 리칸 투수들의 대선배.
- ↑ 엑스포스 시절부터 같은 팀이었으니까 뭐... 2500K를 달성한 후에는 이탈리아산 와인을 선물받기도 했다고.
- ↑ 반대로 톰 글래빈은 1.314라는 경악스러운 WHIP을 찍었음에도 커리어 통산 3.54의 ERA로 선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