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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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랜들 데이비드 존슨(Randall David Johnson)
생년월일1963년 9월 10일
국적미국
출신지캘리포니아주 월넛 크릭
체격208cm, 102kg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우타
프로입단1985년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34번, MON)
소속팀몬트리올 엑스포스(1988~1989)
시애틀 매리너스(1989~1998)
휴스턴 애스트로스(1998)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1999~2004)
뉴욕 양키스(2005~2006)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7~200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009)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영구결번
204251
루이스 곤잘레스재키 로빈슨랜디 존슨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랜디 존슨
헌액 연도2015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97.3% (1회)
199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데이비드 콘
(캔자스시티 로열스)
랜디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
팻 헨트겐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9년 ~ 2002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톰 글래빈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에릭 가니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1년 월드 시리즈 MVP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트로이 글로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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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타이거 우즈랜디 존슨 & 커트 실링랜스 암스트롱
보유 기록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20개
규정이닝 K/9 역대 1위10.61개
최다 300탈삼진 달성 시즌6시즌[1]
연속 시즌 300탈삼진 달성 시즌5시즌

1 개요

The Big Unit
불꽃을 던진 사나이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큰 키와 강속구로 스테로이드 빤 타자들을 제압한 전설적인 투수

현재는 사진 작가 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대표 & CEO 특별보좌. 대표적인 별명은 큰 키에서 비롯된 '빅 유닛(Big Unit)'이 있다.

통산기록은 링크 참고 베이스볼 레퍼런스 MLB 공식홈페이지

레전드 스토리는 없지만 그에 준하는 김형준 기자의 글이 있다. 인사이드MLB, 매거진S

2 커리어

2.1 아마추어 ~ 시애틀 I 시절 : 미완의 에이스


20대 유망주라고?
야구의 아르옌 로벤
MLB의 안승민

고등학교 졸업 후 1982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4라운드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지명받았다. 여기서 애틀랜타는 당시 기준으로 4라운드 지명자에게는 매우 파격적인 계약금인 5만불을 제시했는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제안을 거절하고 USC에 진학하게 된다. 만약 이 계약을 받아들였다면? ㅎㄷㄷ

USC 진학 후에 대단했는지 당시 팀 동료이자 투타 겸업을 하던 마크 맥과이어가 존슨의 피칭을 보고 아, 저런 사람만이 투수를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어 타자로 완전히 전업하였다.

이후 1985년, 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한 존슨은 당시 드래프트 참가자 중 전체 4위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하필 당해에 성적이 부진한 나머지 순위가 많이 밀려 2라운드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받았고 몬트리올과의 입단 계약을 맺었다.

208cm라는 농구선수라고 쳐도 큰 키와[2] 무시무시한 강속구로 주목 받았지만 정작 프로에 와서는 무슨 소년야구만화의 주인공처럼 제구불안에 시달리는 그렇고 그런 유망주일 뿐이었다. 리키 핸더슨은 존슨과의 첫 대결에서 4타석 4볼넷 5도루 4득점을 따내며 아주 가지고 놀았을정도(...) 유망주로서는 비교적 많은 나이와 제구불안 때문에 엑스포스는 1989년 시즌 도중 그를 마크 랭스턴 트레이드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로 보내버린다.[3]

그러나 시애틀 이적 이후 1990시즌부터 10승 이상과 3점대 방어율을 꾸준히 찍어주는 준수한 투수가 되었다. 1990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도 했고 당대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교타자 웨이드 보그스를 상대로 단일 경기에서 3K를 잡아낸 최초의 좌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구불안은 여전해서 1990~1992 3시즌 연속 볼넷왕이라는 영 좋지 않은 타이틀을 가져가는 등 여전히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였다.

1992년 7월에 8연패라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자 경기 전 상대팀의 한 투수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게 바로 놀란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은 상대팀 선수인 그를 성심성의껏 도와주었고, 라이언과 전담코치의 노력 끝에 제구력을 안정시키게 된다. 그런데 본인의 제구는 왜... 놀란 라이언의 교육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일까, 랜디 존슨은 이후 두 달 조금 넘는 남은 시즌 동안 3.30 ERA를 찍었고, 9월 27일 놀란 라이언과의 맞대결 경기에서는 MLB 최후의 160구 경기를 치르며 8이닝 18K 경기를 치렀다.[4]

2.2 시애틀 II ~ 휴스턴 시절 : 각성 그리고 전설의 시작


29살까지 49승 밖에 거두지 못한 B급 투수는 영점이 잡히자 포텐이 터져버렸다.[5]

라이언을 만나고나서 존슨은 제구가 안정되었지만 그해 12월 개인 훈련을 하느라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자책감에 빠진 존슨은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랜디는 그 유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리그를 지배하는 괴수로 성장하게 된다.

30살이 된 1993년에 255⅓이닝을 던지며 308K, 99BB[6] 19승 8패 3.24 ERA을 찍더니, 1994년에는 파업에도 불구하고 172이닝 동안 204K를 잡아 뭐라고요?? 13승 6패 3.19 ERA로 사이영 투표 3위에 올랐다.[7]

1995년에는 파업 여파가 이어지며 시즌이 단축되었음에도 214⅓이닝 동안 294K[8]를 잡는 활약으로 18승 2패[9] 이게 사람이야 괴물이야2.48 ERA를 찍고 커리어 첫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한다. 더 뜻깊은 것은 이 해 시애틀은 창단 첫 지구우승을 달성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 과정이 정말 극적인게 이 때 시애틀은 8월 말까지 당시 지구 선두였던 애너하임 에인절스에게 10게임이나 뒤져있었다. 그러나 팀의 막판 스퍼트로 동률을 달성했고, 지구우승을 놓고 벌이는 시즌 최종전에서 존슨은 완투승을 거두었다.

다만 이 때문에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등판하지 못했고 시애틀은 뉴욕 양키스에게 1,2차전을 모두 패했다. 하지만 3일 휴식을 취한 존슨은 3차전에서 선발승, 단 하루 쉬고 5차전에서 3이닝 1실점 6K 구원승을 거두는 괴물같은 활약으로 팀을 챔피언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다음 상대는 당대 최고의 핵타선이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는데 존슨은 인디언스를 상대로 3차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승리하고, 2승3패로 탈락위기에 몰린 팀을 위해 6차전 다시 한 번 등판하지만 7이닝 3실점으로 패하고 만다.

1996년에는 허리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아웃이 됐지만 1년 만에 회복하고 이듬해에 복귀, 1997년에 213이닝 291K로 20승 4패 2.28 ERA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다승,방어율,탈삼진에서 전부 2위라는 트리플 라운을 기록. 다승과 탈삼진에서 하나 차이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저 클레멘스에게 사이영상을 내준다.


이듬해에는 재계약과 트레이드[10]가 무산된 시애틀에서 9승 10패 4.33 ERA라는 영 좋지 않은 태업성 플레이를 펼치다가 시즌 중반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 후 10승 1패 방어율 1.28 시즌 탈삼진 329[11]로 진정한 괴수로 거듭나게 된다.[12][13]

2.3 디백스 시절 : 나는 전설이다


1998 시즌이 끝나고 그해 겨울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치열한 영입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북산 디백스의 4년 5340만 달러 제안을 택하게 된다.[14]

활약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4년 연속 사이 영 상워렌 스판 상을 석권. 야구선수의 나이가 만으로 36세면 기량이 떨어져서 신인들에게 자리를 위협받거나 벤치신세가 될 수 있는데 이 양반은 그 나이에 약물을 했건 안했건 당대 최고 에이스들과 슬러거들이 즐비했음에도 루키시절 승수 못쌓은 분풀이라도 하듯이 상대 팀타선을 초토화시켜버렸다. 게다가 애리조나의 홈구장 뱅크원 볼파크(현 체이스 필드)는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 친화 구장이다. 그런데 그런 구장에서 이런 사람같지 않은 성적을 올린 원투펀치 덕분에 당시의 라이트팬들에겐 타자친화 구장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쓸어담은 99~2002년의 성적을 간단히 살펴보면

99년 17승 9패 271.2이닝 2.48 ERA 364 탈삼진 12완투 2완봉
00년 19승 7패 248.2이닝 2.64 ERA 347 탈삼진 8완투 3완봉
01년 21승 6패 249.2이닝 2.49 ERA 372 탈삼진 3완투 2완봉 + 월드 시리즈 공동 MVP
02년 24승 5패 260.0이닝 2.32 ERA 334 탈삼진 8완투 4완봉 + 트리플 크라운[15]

4년간 81승 27패 1030이닝 ERA 2.48 1417 탈삼진
연평균 20승 7패 258이닝 ERA 2.48 354 탈삼진

참고로 커쇼가 2008년 데뷔 후 2014년까지 잡아낸 삼진 갯수가 1445개로 존슨은 커쇼가 7년 동안 잡아낸 삼진과 비슷한 갯수의 삼진을 4시즌만에 잡아버린 셈이다(...) 동시기 옆동네에서 리그를 초토화시키던 외계인과 함께 인간계를 아득히 초월한 성적을 찍었다.

2003년에 부상으로 잠깐 고생했지만[16] 2004시즌에 부활, 안습의 팀 타선과 수비 때문에 승수는 16승밖에 못 찍었지만 만40세 역대 최고령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는 등 여전히 리그 최고의 투수임을 증명하는 성적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1997년에 이어 또다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알바를 하던 로저 클레멘스에게 사이영상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약켓이 트리플크라운으로 랜디 존슨을 확실히 제압한 1997년과 달리 이번엔 현지는 물론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었다.[17][18]

물론 디백스 시절하면 가장 유명한 건 역시 2001시즌 원투펀치 파트너였던 커트 실링과 함께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우승시킨 것. 양키스를 상대했던 월드시리즈에서는 6차전 선발등판하고 바로 다음날 끝장 승부에서 7차전 구원등판하는 장명부스러운 출전을 하기도.(...) 하긴 마무리 김병현이 두 게임이나 무너져버려서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긴 했다. 2001년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에 약하다는 이미지는 깨끗이 날아갔다. 커트 실링과 함께 2001 월드 시리즈 공동 MVP 선정. 자세한 사항은 2001 월드 시리즈 항목 참조.

2.4 양키스 시절 ~ 자이언츠 시절 : 유종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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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시즌 종료 후, 연봉부담 때문에 디백스는 랜디 존슨의 트레이드를 시도했고, 2000년 이후 번번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뉴욕 양키스가 슈퍼에이스의 역할을 기대하며 그를 데려온다. 그렇지만 뉴욕 언론들은 엄청난 관심을 보임과 동시에 간섭과 감시도 함께 했는데 이는 조용한 성격의 랜디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이 되었다. 실제로 자꾸 귀찮게 구는 카메라를 거칠게 밀쳐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아무리 최강의 에이스라고 해도 어느덧 만42세 노장이 되었는데 전성기가 지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2005시즌에는 평균이상의 성적을 냈지만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고, 2006시즌에는 처음으로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1경기 5.2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며 체면을 심히 구겼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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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7시즌을 앞두고 형이 세상을 떠나자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며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에게 디백스로의 트레이드를 요청, 다시 피닉스로 돌아와서 2007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몇 경기 못 나오지만 2008년 44세라는 야구선수로는 환갑수준의 나이에도 11승10패 184.0이닝 평균자책점 3.91를 기록하며 선전했고, 시즌 최종전에서는 통산 100번째이자 마지막 완투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8시즌 종료 후 디백스는 고령의 그를 더 안고갈 뜻이 없었고[20], 300승과 5000탈삼진, 조금 무리하자면 놀란 라이언 추월까지 목표로 하던 랜디 존슨은 다른 팀을 찾아야 했는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의 새로운 팀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6월 5일, 워싱턴 내셔널스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메이저리그 역대 24번째 300승에 성공한다. 300승 이후 처음으로 체이스 필드 원정경기에 등판하던 날에는 디백스 팬들도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줬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불펜으로 강등된 끝에 2010년 1월 결국 은퇴를 선언, 역사적인 커리어를 마감했다.

MLB 네트워크에서 선정한 그의 커리어 명장면 9개 The best of the Big Unit

3 기록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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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입성 후 FOX 스포츠에서 제공한 주요스탯 새초롬한 헤어스타일
  • 사이영상을 4년 연속[21] 포함 5회 수상으로 역대 2위[22], 그리고 양대리그에서 수상[23]
  • 통산 4875개의 탈삼진으로 역대 2위[24], 9번의 탈심진왕, 통산 6회 300K 시즌[25]. 특히 2001년에 달성한 372K는 라이브볼 시대 한정 단일시즌 3위의 기록이다.[26] 또한 2002년에 달성한 334K는 2015년 클레이튼 커쇼가 301K를 달성하기 전까지 마지막 300K 기록이었다. 무려 12년간 300K 투수가 없었던 셈.
  • 통산 K/9 10.6으로 1위. 통산 K/9이 10이 넘는 선수는 랜디 존슨을 포함해 케리 우드, 페드로 마르티네즈 단 3명 뿐이며 이 중 3000이닝을 넘긴 선수는 랜디 존슨 단 한 명이다. (존슨의 통산 이닝은 4135.1이닝)
  • 그가 29세 이후부터 기록한 254승은 명예의 전당 투수필 니크로에 이은 역대 2위기록이다. 또한 300승 달성은 통산 24번째이자 현존 마지막 기록인데 달성시점의 나이(45세 265일)가 필 니크로(46세 188일)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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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양대리그 노히터 달성자
  • 양대리그 노히트, 그 중에서 퍼펙트게임은 역대 최고령이며 이날 잡아냈던 13개의 탈삼진은 역대 2위다.[28]
  • 통산 좌타자 피안타율이 .199에 달한다. 가히 역대 최고의 좌타자 킬러.

그야말로 리그 MVP를 제외한 투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는 다 누렸다. 올스타전 10회 출전은 덤.

4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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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 홈개막전에서 시구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시구하기도 했다.

201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10주년 기념으로 함께 역대 최고의 원투펀치 파트너였던 커트 실링과 함께 시구를 했다. 아쉽게도 김병현은 참가하지 않았다. 사실 2001년 월드시리즈 멤버 중 아직 현역으로 뛰는 선수는 미겔 바티스타와 함께 몇 안된다. 그나마 라일 오버베이가 나오긴 했지만 얘는 당시에 대타로 몇번 뛰었던 정도고 게다가 마침 애리조나 선수라서 부르기 쉬웠던 것.

2012년 1월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무래도 매리너스 모자를 씌워서 명예의 전당에 보내려는 계획이 암암리에 진행 중인듯 하다. 물론 이 다음에 디백스가 영구결번을 단행한다면 또 모른다만. 그리고 2008년 오프시즌에 디백스가 한 짓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지. 시애틀과도 그 결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건 함정.

트위터를 하면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rj51photos.com을 운영하며 전공(포토저널리즘)을 살려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엠엘비파크 글) 2013년 1월 오랜만에 공을 던져봤는데 89.4마일(=143.8km) 뭐라고요?? 이 나왔다는 글을 올려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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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8일 디백스와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퍼펙트게임 10주년 기념 시구를 하였다. 영상 포수는 당시 배터리를 이루었던 로비 해먹인데 10년 전처럼 시구를 받고 기뻐서 뛰는 모습을 재연하였다. 한편, 디백스의 홈임에도 원정유니폼을 입은 이유는 당시 퍼펙트게임 경기가 애틀랜타 원정이었기 때문.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50세를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팔로만 집어던진 공이 레이저처럼 포수 미트로 빨려들어간다. ㅎㄷㄷ

2014년 11월달에는 한국을 방문했다. 마리아노 리베라에 이어 또 다른 메이저리그 전설이 같은 해, 같은 달에 한국을 찾은 근래 보기 드문 사례. 방문지 중에는 해군사관학교와 미군기지가 있다. 아무래도 개인 행사인 리베라와 달리 랜디 존슨은 미군에서 데려온거라 한국 팬들과 쉽게 만나기는 힘들지도.

2015년 명예의 전당 투표를 앞두고 몇몇 기레기들이 다른 아쉬운 선수들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이유를 들며 랜디와 페드로를 뺀 만장일치 방해공작 투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1월 6일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와 함께 입후보 첫해 입성에 성공했다. 97.3% (534/549)의 득표율은 매덕스를 0.1% 앞선 역대 9위 기록[29]이며 투수로 한정할 경우 톰 시버(98.84%)와 놀란 라이언(98.79%)에 이은 3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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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입회식 사진. 제일 키 큰 사람이 랜디 존슨.안 알려줘도 알것 같다

기자회견장에서 명예의 전당 유니폼 단추를 매던 중 스몰츠가 의자 위에 올라가 자신의 머리 위에 모자를 씌어주는가하면 단추를 잘못 끼워 기자들을 폭소케 하기도 했다. 빅 유닛 챙겨주는 스몰츠 한편 존슨은 27%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신 에드가 마르티네즈도 명전에 헌액되어야한다는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디백스 측에서는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되던 날 존슨을 대표 겸 CEO 특별보좌에 임명하고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존슨은 디백스의 팜에 있는 어린 투수 유망주들에게 멘토로서의 역할을 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존슨 본인 또한 너무나 큰 키 등 신체적 특징이 남달라 프로 커리어 초반에는 제구력 문제 등을 보였고, 본인에게 맞는 투구동작과 패턴을 익히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어린 유망주 투수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 같다고. 덧붙여, 명예의 전당에 새겨질 동판에 디백스의 모자를 새기기로 결정하였다.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등록된 그의 주요 팀(primary team)은 시애틀 매리너스이나, 세간에 널리 인식되는 건 동판에 새겨지는 모자 로고이니 사실상 그를 대표하는 팀은 애리조나인 셈...[30]

5 구질 및 평가


위너 오브 위너



타석의 타자는 케니 로프턴

208cm(6'10")의 큰 키[31]에서 뿌리는 직구는 그 자체로도 위력적인데 구속도 98~100마일, 즉 160km에 가까운 수준. 일반인은 130km만 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프로선수들도 160km의 공은 완전히 한가운데로 몰리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못친다. 약물을 빤 어떤 선수는 완벽히 컨트롤된 공도 후려갈겼고 안 빤 선수도 104마일의 직구를... 그런 공을 경기마다 몇번씩 던져댔으니 뭐...더욱 대단한 건 경기 후반에도 구속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떨어져봤자 150km/h대 중반을 유지했다.(...)

거기다 팔도 길고 딜리버리가 사이드암에 가까운 쓰리쿼터라 타석에 들어선 좌타자들 눈에는 그야말로 뒤통수에서부터 날아들어온다. 저 위의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뜩이나 광속구인데 초창기 제구력이 별로 안 좋았을때는 좌타자 입장에선 헬 오브 지옥. 말년에 많이 까먹었음에도 통산 좌타자 상대 타출장이 199/.278/.294이니 뭐... 그래서 존슨 등판예고일 전날 밤 타자들(특히 좌타자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좀 오바가 섞이긴 했지만

랜디 존슨의 투구가 그 무시무시함을 보여줬던 예로, 1993년 올스타전에서 존 크럭(John Kruk, 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이 존슨의 손에서 빠진 공이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가자 여기에 쫄아서 홈플레이트 멀찌감치 떨어져 섰다든지[32], 1997년 올스타전에서 래리 워커도 존 크럭이 당했던 것(?)처럼 당하다 결국 우타석에 들어서 헬멧을 거꾸로 쓴 개그를 선보인 등의 사례가 있다. 좌타자들이 잠을 설쳤다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

이 아저씨를 진짜 괴물로 만들어준 건 바로 슬라이더[33]. 대부분의 선수들이 80마일 초반대, 즉 130km대의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비해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는 80마일 후반대, 즉 140km가 넘어간다. 웬만한 투수들 직구수준. 변화각도 얼굴로 날아오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가는 수준이라 타자들은 속수무책.

에릭 캐로스에 따르면 직구와 슬라이더를 던질 때의 습관 차이[34]를 타자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알고도 못 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이야기인가.[35]

사실 슬라이더는 투수의 팔, 특히 팔꿈치에 매우 무리를 주는 구질이라서 이걸 주로 구사하는 투수들의 경우 부상이 잦은 편이지만...이 아저씨의 경우 나이들어서 애리조나 말기에 몇 번 드러누운 거 빼고는 부상도 없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어느 하나 딱 맞는 설명은 없었다. 그냥 의 축복으로 이해하자.[36]

게다가 프로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도 키가 크면 나이와 상관없이 무릎 부상 또는 관련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저씨는 무릎 부상도 나이들어서 왔고 젊어서는 쌩쌩했다. 키가 너무 크다보니 뭔가 어색해 보이는 투구폼이긴 했지만 중심이동이 매우 깔끔했다. 전성기 이전에는 키킹 동작이 커서 전반적으로 투구폼이 커 보였으나[37], 키킹 높이를 완전히 줄이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폼을 찾은 덕분에 최고의 구위를 유지하며 제구를 잡는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버렸다.

흔히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피치만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디백스 입성 후 패스트볼 중에서도 투심의 비중을 높이고 이후 스플리터를 추가했다. 물론 이 두 구종의 비율이 크게 높았던 것은 맞다.

이미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90년대~2000년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지만...[38] 동시대의 약물복용 의혹자들이 드러나면서 더더욱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던 로저 클레멘스가 약물복용자라는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면서, 안 그래도 놀라운 커리어인데 약물없이 약쟁이 타자들을 그것도 투수의 로망인 불꽃 강속구로 다 제압하면서 리그를 평정했으니 그의 명예가 더 높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MLB 네트워크 프라임 9에서는 그를 역대 최고의 좌완 2위에 선정했다. 1위가 레프티 그로브임을 감안할 때 그가 현대야구 최고의 좌완임을 인정받은 셈.[39]

6 그 밖의 얘기거리

일단 이거부터 감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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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새 폭파 사건버드 스트라이크
  • 2001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 도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지나가던 비둘기가 맞고 즉사했다. 자세히 보면 공에 맞은 후에도 날개를 퍼덕이는걸 볼 수 있다. 전광판엔 95마일이 찍혔다., 즉 153km. 당연히 비둘기는 뼈도 못추리고 하늘로 갔다고 한다. 새가 빠른속도로 날아가다가 160km 가까운 물체에 맞을 확률을 내봤더니 로또보다도 더 답이 안나오는 수준의 숫자가 나왔다고 한다. 대략 190억분의 1. 미국의 한 프로그램은 이 사건이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진짜 새 대신 생닭을 수십 수백 수천 번쏘아대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 랜디 존슨의 구위를 설명할때 주로 첨부되는 영상이다. 해당 투구를 주심은 노카운트로 처리했다. 현재 야구 규정에는 '타구'가 아닌 투구가 새에 맞는 상'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작성된대로 볼로 처리하는 것도 애매하다. 시범경기에 벌어진게 천만 다행이라면 다행. 랜디 존슨 자신도 인상 깊었는지 자기 홈페이지 로딩 화면이나 로고가 새가 깃털 휘날리며 기절한 모습이다. 운명을 달리한 새의 명복을 비는 혼슨甲 랜디 존슨의 홈페이지그리고 상대편이었던 제프 켄트는 그 죽은 새를 잡고 실실 쪼개는 사진을 남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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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물 보호 단체에서 그를 고소하기도 했는데, 진지한 고소라기보다는 그냥 서로 웃자고 한 일인듯 하다. 참고로 미국인들은 농담을 매우 잘하는 편.좋은 의미의 양키 센스

  • 상기했듯, 올스타전에서 두 번의 해프닝을 만든 적이 있다. 1993년 올스타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존 크럭의 머리 위로 102마일 (164km) 강속구를 던졌다. 크럭 vs 존슨. 97년 올스타전에서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좌타자 래리 워커의 등 뒤쪽으로 공을 던졌다. 이에 워커는 헬멧을 거꾸로 쓴채 우타석으로 옮기는 것으로 응답했다. 워커 vs 존슨
  • 내셔널리그에서도 활동했던 선수라 타석에도 들어섰는데, 대부분의 왼손잡이들이 좌타자인 반면, 랜디 존슨은 우타석에 들어서서 좌투우타라는 괴랄한 투타형태를 띠게 되었다. 원래 야구가 수비할땐 오른손잡이가 좋고 공격할땐 좌타자가 유리해서 우투좌타는 드글드글하지만 좌투우타는 공수의 유리함을 다 포기하는 형태라서 거의 없다...지만 이 아저씨는 투수라서 상관없다.[40] 좌투수기 때문에 공을 던지는 왼팔을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우타석에 들어서면 투수쪽으로 보이는 팔은 왼팔이다. 어? 이는, 타격 메카니즘에서 스윙을 할때 위로 잡은 팔에 힘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왼손은 거들 뿐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된다.[41]
  • 디시 야갤 초창기 때 '푸졸스가 맞아요. 아니면 랜디 혼슨인가요?'라는 뻘플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42]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투병중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의 故 임수혁 선수 돕기 행사(2002년)에서 랜디 존슨이 행사를 돕기 위해 'Big Unit'이 새겨진 모자를 경품에 내놓았던 적이 있었다.# 이 때 당시 랜디 존슨 뿐만 아니라 임수혁 선수 돕기 행사에 애장품을 경품으로 내놓았던 선수로 후루타 아츠야(저 기사에는 오타가 났다), 카네모토 토모아키, 박찬호 등의 야구선수 외에도 홍명보, 최경주, 그리고 아폴로 안톤 오노(...) 등이 있었다.안톤 오노가 기부한게 아니라 김동성이 '안톤 오노와 대결할때 입었던 유니폼'을 기부했다는게 아닌지? 확인 후 수정바람

미겔 테하다와 함께 EA스포츠의 야구게임인 MVP 베이스볼 2003의 표지모델로 선정되었다. 인트로 영상도 미겔 테하다와 대결하는 모습이고.

2012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다르빗슈를 평가한 적이 있다.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르빗슈의 투구 영상을 들고 찾아와서 평을 부탁했고 이에 응한 것.

랜디옹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르빗슈는 분명 좋은 공을 가지고 있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낯설어 할만한 뭔가는 없다. 정확한 근거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다르빗슈의 투구 스타일, 즉 빠른 패스트볼에 브레이킹볼을 결정구로 삼는 우완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도 많기 때문에 타자들이 쉽게 적응할지도 모른다는 뜻으로 저런 조언을 한 것 같다. 또한 일본보다 빡빡한 경기일정을 치루다 보면 몸의 컨디션이 항상 좋을 수 없으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결정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도 다르빗슈에게 기대하는게 많으니 이전보다 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훈훈한 덕담을 덧붙였다. 인터뷰를 끝내며 다르빗슈의 첫 시즌 승수를 예측해서 야구공에 적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16'이란 숫자를 적었는데 다르빗슈는 정말로 데뷔 시즌에 귀신같이 16승을 거두며 랜디옹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작두까지 타시는 사진작가

7 연도별 주요 성적 및 수상

역대기록(MLB)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1988MON43002.422372526.01.150.7
198970406.6729272629.21.85-0.87만 달러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1989SEA227904.4011874104131.01.440.2
1989시즌합계2971304.82147101130160.21.51
1990SEA33141103.65174127194219.21.342.215만 달러
199133131003.98151164228201.11.503.035만 달러
199231121403.77154163241210.11.422.3139만 2500달러
19933519813.24185116308255.11.116.8262만 5000달러
19942313603.1913280204172.01.195.5332만 5000달러
19953018202.4815972294214.01.058.6467만 5000달러
1996145013.6748278561.11.191.2602만 5000달러
19973020402.2814789291213.01.058.0632만 5000달러
19982391004.3314671213160.01.291.5600만 달러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1998HOU1110101.28573011684.10.984.3
1998시즌합계34191103.28203101329244.11.18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1999ARI3517902.4820782364271.21.029.2970만 달러
20003519702.6420283347248.21.126.21350만 달러
20013521602.4918191372249.21.0110.01350만 달러
20023524502.3219785334260.01.0310.91350만 달러
2003186804.2612538125114.01.331.61500만 달러
200435161402.6017755290245.20.908.51600만 달러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2005NYY3417803.7920761211225.21.135.71600만 달러
200633171105.0019471172205.01.241.71566만 달러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2007ARI104303.8152207256.21.151.4910만 달러
200830111003.9118456173184.01.243.21510만 달러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WAR 연봉
2009SF228604.8897568696.01.330.3800만 달러
통산22시즌61830316623.293346172448754135.11.17104.31억 7599만 7500달러
년도주요수상
1990올스타
1993올스타
1994올스타
1995사이 영 상(AL), 올스타, TSN 올해의 투수상(AL)
1997올스타
1999사이 영 상(NL), 올스타, 워렌 스판 상[43]
2000사이 영 상(NL), 올스타, 워렌 스판 상
2001사이 영 상(NL), WS MVP, 올스타, 워렌 스판 상, 베이브 루스 상
2002사이 영 상(NL), 올스타, 워렌 스판 상
2004올스타
2015명예의 전당 헌액(기자단 투표 1회 입성, 득표율 97.3%)
통산사이 영 상(5회), WS MVP(1회), 올스타(10회)
워렌 스판 상(4회), 베이브 루스 상(1회), TSN 올해의 투수상(1회)
  1. 놀란 라이언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대 유이한 기록
  2. NBA에서도 이정도 키의 선수들은 대부분 센터나 파워포워드들이다. 실제로 USC(남가주대학) 시절까지 농구선수를 겸업하기도 했다.
  3. 여담으로 맞트레이드의 당사자는 6년 뒤인 1995 시즌에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팀 결정 원게임 플레이오프에 맞대결 투수로 나왔다. 결과는 랜디 존슨의 승.
  4. 이 경기는 라이언 역시 감명을 받았는지, 훗날 랜디가 300승을 달성한 뒤 AT&T 파크에서 가진 기념식에 참석해서 연설을 하며 그날 경기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5. 사실 이 말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이 존슨은 대졸 투수이기 때문에 같은 나이대 고졸 투수들보다 승수 쌓기가 약간 불리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 데뷔 후 5시즌 동안 49승을 거두었다는 것은 해마다 10승 정도를 챙겼다는 얘기니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성적이다.
  6. 이전에는 140~150개의 볼넷을 내주며 240~250개의 탈삼진을 잡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993시즌의 기록은 존슨이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매우 고무적인 성적이었다.
  7. 이 해 AL 사이영 상 수상자는 데이비드 콘이었다. NL 사이영 상은 그렉 매덕스의 차지. 이 시즌에 매덕스는 본인 커리어 최저 ERA인 1.56을 기록했다.
  8. 이 해 성적 덕분에 존슨은 놀란 라이언 이래 최초의 탈삼진왕 4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9. NL의 그렉 매덕스(19승 2패)와 함께 역대 최초로 200이닝 이상 승률 9할 시즌을 만들어냈다.
  10. 당시 1997년 ALDS에서 시애틀에 패한 뉴욕 양키스가 랜디에게 반해 그를 영입하려 했는데 시애틀 측에서는 반대급부로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를 요구했다고.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저 딜이 성사됐으면 두 팀의 운명이 달라졌을 듯?!
  11. 시즌 종합 244⅓이닝 동안 19승 11패 3.28 ERA
  12. 삼진 개수로만 따지면 랜디 존슨이 전체 1위가 맞다. 단지 시즌 중간에 AL에서 NL로 옮겼기 때문에 기록이 나눠지면서(AL에서 213개, NL에서 116개) 어느 쪽에서도 수상을 못 한 것일 뿐이다. 당시 AL의 탈삼진 1위는 271개의 로저 클레멘스, NL은 300개의 커트 실링이었다. 풉!! 별거아니네
  13. 비슷한 경우로, 1997년의 마크 맥과이어가 시즌 중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58개(오클랜드에서 34개, 세인트루이스에서 24개)로 양리그 합쳐 최다 홈런을 치고도 홈런왕은 각각 AL은 56개의 켄 그리피 주니어, NL은 49개의 래리 워커가 가져가고 맥과이어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 바 있다.
  14. 랜디 존슨의 집은 애리조나주의 주도인 피닉스이고, 가족들도 양키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피닉스에 살고 있다.
  15. 좌완투수로는 스티브 칼튼 이래 최초
  16. 개막전에서 노모 히데오에게 패했다. 참고로 둘의 상대전적인 3:0삼연벙으로 노모 압승.
  17. 당시 두 사람의 성적을 비교하면 로켓 18-4 214⅓이닝 2.98 218K. 빅 유닛 16-14 245⅔이닝 2.60 290K. 이후 랜디 존슨 사례 때문인지 2006년에 16승을 거둔 브랜든 웹이 논란 속에 NL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2010년 AL 사이영 투표에서 vs CC의 대결에서 킹이 사이영상을 탔다. 존슨이 이걸 보면 더욱 통탄할 노릇.
  18. 그리고 클레멘스의 추악한 모습이 밝혀진 이후로는 아무도 클레멘스의 사이영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클레멘스가 97년도부터 그것을 했는가 안 했는가는 현재까지도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만, 2005년은 이미 그것의 효과를 받을 대로 받은 뒤로 여겨진다.
  19. 이는 존슨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등판이었다. 8년 동안 통산 19경기(16선발) 7승9패 121.0이닝 평균자책점 3.50, 132k
  20. 랜디 존슨은 팀에 남기 위해 기꺼이 연봉 50%를 삭감할 용의를 내비쳤지만 재정난에 빠진 디백스는 그것도 비싸다고 더 후려치는 바람에(...) 존슨은 결국 팀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존슨이 떠난 뒤, 디백스는 랜디 존슨에게 제시한 금액보다 거의 두 배가 더 많은 액수로 선발 투수 존 갈랜드를 영입하였고, 존슨은 이에 대해 대단히 섭섭해했다.
  21. 그렉 매덕스에 이은 역대 2번째이며 현재까지 마지막 기록이다.
  22. 1위는 로저 클레멘스의 7회인데...
  23. 랜디와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999년 수상으로 각각 역대 두번째와 세번째(NL의 사이영상 발표가 며칠 더 빨랐다고...) 양대리그 수상자가 된다. 참고로 지금까지 양대리그 수상자 명단은 다섯 명으로 게일로드 페리, 존슨, 페드로, 로저 클레멘스, 로이 할러데이
  24. 1위는 놀란 라이언5714개. 뭘까 이 굇수들은...
  25. 놀란 라이언과 타이 기록이지만 5시즌 연속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
  26. 1974년 놀란 라이언 383K, 1965년 샌디 코팩스 382K
  27. 참고로 이 아저씨는 시애틀 시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19K를 잡아낸적이 있다!!!
  28. 1위는 샌디 코팩스맷 케인의 14개
  29. 1위부터 켄 그리피 주니어 - 톰 시버 - 놀란 라이언 - 칼 립켄 주니어 - 타이 콥 - 조지 브렛 - 행크 애런 - 토니 그윈 - 랜디 존슨
  30. 'Primary Team'과는 달리 동판에 새겨지는 모자 로고는 선수의 의중도 어느 정도 반영된 거기 때문에, 랜디 존슨이 애리조나 로고를 새기기로 결정했다는 거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첨언을 하자면 모자 로고 결정에 선수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하여 이를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웨이드 보그스가 대표 사례...
  31. 그런데 MLB 기록은 디백스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한 존 라우시가 6'11"로 넘어섰다. 라우시는 하이 쓰리쿼터 딜리버리를 구사하는 선수였기에 상대팀들은 랜디가 한참 던지다가 라우시가 등판하면 충공깽에 벌벌 떨기도 했다고(...)
  32. 그리고 크럭은 그 경기에서 "그런 상황에서 산 것만으로도 다행이네요." 라면서 존슨의 투구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
  33. 프라임 9에서는 존슨의 슬라이더를 역대 2위로 선정했다.
  34. 일본식 용어로 쿠세. 글러브를 오므리면 직구, 벌리면 슬라이더였다고 한다.
  35. 물론 선수생활 내내 읽혔다는 말은 당연 아니다. 존슨도 어느 순간 타자들이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글러브가 벌어지는 게 눈에 띄지 않도록 검정색 천을 덧대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애리조나 시절엔 양키스의 감독 조 토레가 글러브 색깔과 다른 천이 타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다며 태클을 걸기도 해 경기 중에 글러브를 교체한 적도 있었다.
  36. 원래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른 자질을 타고 나듯이 내구성 역시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크다.
  37. 키킹 동작이 컸기 때문에 자연히 상체가 흔들렸다.
  38. 사실 저 넷 중에는 약켓의 평가가 제일 높았다. 물론 넷 모두 첫턴 명전급이라고 평가되긴 했지만 약켓은 올타임 넘버원 급이라는 평가였으니. 하지만 지금은...
  39. 3위부터 순서대로 워렌 스판 - 칼 허벨 - 스티브 칼튼 - 화이티 포드 - 톰 글래빈 - 샌디 쿠팩스 - 에디 플랭크.
  40. 좌투우타인 유명한 야수로는 리키 헨더슨이 있다.
  41.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다. 2009년 7월 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상대 투수는 로이 오스왈트) 타석에서 헛스윙하다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부상 이유가 헛스윙할때 오른손을 너무 일찍 떼버리는 바람에 충격을 분산시키지 못해 어깨 근육이 파열된 것이라고.
  42. Pujols 를 '푸홀스'로 표기해야 하는지 '푸졸스'로 표기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병림픽에서 '푸졸스'를 미는 한 갤러가 한 말이었는데 나중에 뻘플화 되어 전혀 상관 없는 게시물에도 달렸다. 덤으로 그 뻘플에 대한 야갤의 응답은 그럼 Jang Moonsuk이 '항문석'이지 '장문석'이냐?
  43. 1999년 신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