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더슨 소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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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더슨 少領 事件, (영어)Major Henderson Incident (1975년)

1 개요

1975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UN군 사령부 소속 미 육군 소령 W.D.헨더슨이 북한 측 군인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사건.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기록될 정도로 꽤나 비중있는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이 아닌 미군이 당한 사건인지라 국내에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진 않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건이라 결정적인 사진자료는 찾기 힘들다. 근데 결정적인것은 아니지만 있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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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차 남·북 정전위원회가 열리는 판문점에서 북한군 경비병이 공동경비구역 부사령관인 핸더슨 소령에게 달려들어 배와 가슴팍을 구둣발로 짓밟고 있다."(저작자: 이창성)[1]

한 북한군이 쓰러진 소령을 구타하고 있다. 당시 카투사 장병들이 겨우겨우 북한군들을 말리는데 수십명의 북한군들이 더 달려오고, 이에 대한민국 측 장병들도 수십명이 몰려와 굉장히 험악한 분위기 속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질뻔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 사진은 80년대에 당시 국민학교 교실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사진과 함께 반공 자료로 붙어 있기도 했다.

2 사건 설명

때는 북한의 대남 도발이 끊이지 않았던 4공 시절. 당연히 남북한 최정예 군인들과 미군이 코앞에서 서로 정렬해 있는 판문점JSA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날 JSA에 UN 소속으로 근무하던 헨더슨 소령은 판문점 건물 근방의 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뜬금없이 북한의 기자 한 명이 소령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시비조로 말을 걸어왔는데 기분이 언짢아진 헨더슨 소령은 당연히 무시했다. 그러자 그 기자는 소령에게 침을 뱉었고, 그가 발끈해서 일어서자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물론 헨더슨도 그 기자에게 카운터를 날렸고, 이를 본 북한군 몇명이 헨더슨에게 달려든다. 헨더슨은 그 자리에서 북한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심한 구타를 당했고, 목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는다. 헨더슨 소령은 당시 경비를 서고 있던 미군에게 구조되어 헬기로 병원까지 후송되었으며, 살아남아 군 경력을 이어가다 전역하게 된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던것이, 당시에는 공동경비구역 JSA 내에서 상호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남한군과 북한군이 대화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었을 때[2]는 서로 형동생하며 통일되면 서로의 집에 놀러가자고 주소를 교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도 미군 소령이 두들겨 맞을때 남한 병사들이 "형, 왜 이래."라고 하면서 뜯어 말렸다고. 이러한 자유왕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완전히 구역이 나눠지면서 불가능하게 된다. 이 당시 북한군과 대화한 남한 병사들의 증언이 반공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 이 자료에는 휴전선에서 대화한 것과 JSA에서 대화한 내용이 섞여있다.

3 영향

이 사건으로 인해 안 그래도 엉망인 북미관계는 더 악화되어, 결국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양국 군인들끼리 벌어진 구타사건일 뿐이지만 중소 분쟁같은 대형 사건도 비슷한 사건을 통해 일어난 사건인 만큼 역사적으로 꽤나 비중있는 사건이다.
  1. 출처: [1]
  2. 7.4 남북 공동 성명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