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모건

헨리 모건(Henry Morgan, 1635~1688. 8. 25)

실존했던 캐리비안의 해적들 중 한명.

1635년 웨일스의 부농의 아들로 궨트의 뉴포트 근방에서 태어났으며 잉글랜드의 브리스톨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1655년에는 5월 3일에 여러 선원들에게 섞인채 배에 올라타 서인도에 내렸다.

7년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서 열대섬의 해적, 잉글랜드의 해적들 이야기를 듣고 배우면서 1662년 잉글랜드 보병대에 입대하였으며 크리스토퍼 밍스의 배를 타고 자메이카를 약탈하여 그의 부대는 엄청난 전리품을 받게 된다.

29살이 되면서 밍스의 추천으로 해군성에서 사략선 선장으로 승격하여 나포 허가장을 하사받았으며 이후에 잭맨과 모리스가 이끄는 사략함대와 함께 중앙 아메리카를 약탈하고 다녀 에스파냐인들을 괴롭혔다.

누구보다도 전리품을 많이 노획하여 전리품이 많았으며 다른 사략선의 선장들보다 유명해지게 되며 1668년 33살에는 자메이카의 지사로부터 잉글랜드의 사략함대를 지원해달라는 밀지를 받았으며 지사에게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자메이카의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받는 동시에 10척의 배와 5백명의 병사를 지원받게 된다.

이 때 그는 자메이카 배후 내에 활동하는 모든 해적들의 지도자로 에드워드 맨스필드를 임명하였으며 잉글랜드의 지휘관이자 해적의 왕으로 에스파냐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에 쿠바 해안으로 자리잡아 카리브의 보물 집결지인 대도시 포토벨로로 향했으며 도망치는 에스파냐 함대를 추격하여 괴멸시켰는데 이 때 그가 잃은 병사는 고작 18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백만개의 금과 은화, 엄청난 수의 노예, 화약, 무기, 실크, 향신료, 벨벳, 최고급 보석들을 빼앗았으며 그 양은 에스파냐 식민지 보유량의 1/4이나 되었다고 하며 이것들을 12척의 배와 기함인 프리게이트선의 옥스포드에 싣고 귀환하였으며 어느날 파티를 하던 중에 프랑스 해적선인 쿠르 볼랑호의 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수습하고 탐색하여 쿠르 볼랑호를 나포시킨다.

이후에는 베네수엘라 만의 마라카이보를 공격하기로 계획하여 8척의 배, 650명의 병사들을 준비하였으나 해안 성채가 방해되자 밤에 상륙하여 이를 점령하고 공격해오는 3척의 에스파냐 군함에 대항하여 적의 기함인 더 모들린을 불에 태우고 승리하여 전리품을 가지고 자메이카로 귀환한다.

이 때 에스파냐의 마누엘 파르달 리베로 제독이 자메이카의 마을을 급습하여 파괴하고 불에 태우자 쿠바 동쪽 해안에서 해전을 벌여 그를 죽이고 승리하였으며 항구에 귀환하자 그의 용맹함에 대한 상이 내려져 그의 함대는 끊임없이 보충되어 36척의 배와 2,000명의 병사와 해적들로 늘어났다고 한다.

에스파냐의 식민지인 파나마를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는 평화 협상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지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파나마의 지협을 가로질러 파나마의 도시 상류로 향하였으나 계속되는 행군과 물과 식량의 부족으로 점점 병사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하는 상태였지만 1671년 1월 18일에 적군과 마주쳐 싸우게 되는데 끝까지 싸워 에스파냐인들을 몰아내고 도시로 진입하여 음식과 와인을 먹으며 몸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곧이어 마을을 강탈하고 3월에 150마리의 노새에 수많은 보물들을 배에 싣고 대부분의 노획물을 몰래 빼돌려 감추었다고 한다.

그는 1671년 5월 3일에 평화 협정을 어긴 죄로 체포되어 1672년 4월에 런던으로 송환되고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그는 캐러비안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며 1674년에 잉글랜드와 에스파냐가 다시 전쟁에 돌입하게 되자 왕에게 엄청난 보물을 지불하고 석방된다.

왕인 찰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고 다시 자메이카의 지사로 임명되었으며 1688년 8월 25일에 5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총평하자면 해적 끝판왕. 싸우면 100%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해적질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심지어 왕 조차도 어쩌지 못할 인기를 손아귀에 넣은 뒤 고위직에 올라 천수까지 누리고 죽었다. 이 이상이나 비견될 만큼 성공한 해적은 현재 터키에서도 매우 존경받는 하이르 앗 딘이나 사면받은 후에도 재물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매우 장수했던 정일수 정도 뿐. 그야말로 해적의 궁극체이자 꿈과 희망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물론 피해자들 입장에서 보면 천인공노할 개객기(...).

참고로 미국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술도 있는데, 약 빨고 만든 듯 한아니, 럼주를 좀 과하게 들이킨듯한 괴이한 TV 광고로 유명하다.

우로부치 겐이 집필한 블랙 라군 샤이타네 바디 소설에 헨리 모건의 후손인 여해적이 등장한다. 금발에 폭유 누님이라는 캐릭터성을 장비했지만, 초반에 허무하게 끔살. 그것도 아군한테. 이것은 역시 우로부치 퀄리티! 블랙 라군 퀄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