挾刀
1 설명
무예도보통지 3권에 기록된 무예. 및 그 무기.
눈썹 모양이어서 미첨도(眉尖刀), 적의 진을 부수는데 효과적이어서 파도(破刀)라고도 불렸다. 조선 영조 시대까지 협도곤(夾刀棍)[1]으로 불리다가 정조 시대에 협도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원형은 여말선초 사용된 장검(長劍)이다. 고려시대와의 차이점으로 장검에 칼코등이를 달아놓는등 사소한 개량이 이루어졌으나 본질은 거의 같았다.
무예24기 가운데 가장 무거운 병기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월도보다 더 그 세세한 쓰임새가 효과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칼날이 매끈한 눈썹형태가 된 것은 월도보다도 무거운 칼을 실전에서 휘두를 수 있도록 거대한 곡선 형상에 집중한 결과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일본의 나기나타(長刀), 중국식 대도가 같이 그림으로 실려있지만 무게 차이로 운용법은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협도의 외형만 보고 한국식 나기나타라고 해설하기도 하지만, 협도는 적의 진형을 무너트리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대형무기로서 성질이 매우 달랐다. 일반적으로 조선에서 사용한 실전용 월도[2]조차 나기나타보다는 두배쯤 두꺼웠고, 협도는 그 조선식 월도보다도 두꺼웠으므로 상당히 무겁다.
2 사용법
무거운 만큼 진을 부수는데 효과적이었지만, 휘두르기 위해서는 체격이 필수적이었고, 무게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 회전하는 기술들이 많이 있다. 이 회전기술은 비단 무게제어 뿐 아니라 보다 파괴적인 기술을 내기 위한 조건도 되는데, 그렇기에 협도를 사용하는 병사들에게는 매우 높은 체력과 중심제어, 그리고 보법이 수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눈썹 형태로 만들어진 뾰족한 칼끝 덕분에 월도보다 찌르기에 용이했다. 하지만 협도의 찌르기는 육중한 무게를 이용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적의 대열을 무너트릴 때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제압력을 올리기 위한 사용법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편이다.
무술에 사용되는 무기로서는 매우 미묘하지만, 아군이 진형을 꾸릴 때 장식용(...)으로만 소지해도 적의 사기저하에 도움을 준다던지, 협도를 이용해서 적 보병의 대열을 무너트리는 방법과 효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