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한국의 고화/목록
이 문서는 토막글입니다.
이 문서는 토막글로 분류되는 800바이트 이하의 문서입니다. 토막글을 채우는 것은 기여자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이 틀을 적용할 시 틀의 매개변수로 분류:토막글의 하위 분류 중 적절한 분류를 지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는 토막글로 분류되는 800바이트 이하의 문서입니다. 토막글을 채우는 것은 기여자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이 틀을 적용할 시 틀의 매개변수로 분류:토막글의 하위 분류 중 적절한 분류를 지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개요
고구려의 화가 담징이 일본 호류사의 벽에 그린 그림 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논란이 있다.
한국의 석굴암, 중국의 윈강 석불과 함께 동양의 3대 미술품이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그러나 화재크리. 일본 최고(最古)의 벽화이자 인도 아잔타석굴, 중국 둔황 막고굴과 함께 세계적인 벽화 걸작으로 꼽힌다그러나 화재크리2.
2 특징
당나라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부처 옆의 두 협시보살이 취한 삼굴자세[1]는 당나라 시기 보살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3 일화
4 담징의 작품인가?
만약 호류지의 건물이 실제로 670년에 재건된거라면 담징의 생몰연대를 넘어가기에 호류지 금당의 벽화는 담징 작품이 아니게 된다. 또한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린 것이 고구려의 담징이라는 것을 학계에 알린 것은 이병도인데, 이 주장의 근거는 문헌자료가 아닌 일본의 구전이었기 때문에 신빙성에 논란이 있다.
다만 고구려가 일본 벽화에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여인과 비슷한 복식을 한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
5 보존상태
일본정부는 1934년 벽화보존을 위해 금당을 수리하기까지 했으나, 1949년 호류사에 불이 났을때 소실 되었다.
불에 타고 남은 그림 두 조각과 타버린 원화는 수장고에 보관중이다.
- ↑ 허리를 약간 휜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