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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어: こぶとりじいさん
마음씨 착한 혹부리영감이 도깨비 덕택에 혹을 떼고, 마음씨 나쁜 혹부리영감은 도깨비 때문에 혹을 더 붙이게 되었다는 설화.
2 줄거리
목에 혹이 달린 영감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묵을 때를 찾다가 빈집을 발견해서 하룻밤을 쉬기 위해 들어갔다. 혼자 심심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근처에 있던 도깨비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몰려 왔다. 노래에 감동한 도깨비 두목이 "노인, 그 고운 노랫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요?" 하고 물었더니 노인은 "목에 달린 혹에서 나오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도깨비는 재물을 줄 테니 그 혹을 자기에게 팔라고 했으며 그 다음 재물을 던져 주고 혹을 떼어 갔다. 이렇게 해서 노인은 혹도 떼고 도깨비가 준 재물로 부자가 되었다.
이웃에 살던 다른 혹부리영감이 그 말을 듣고 일부러 그 빈집을 찾아 들어가 밤이 되기를 기다린 다음 노래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소리를 듣고 도깨비들이 몰려 왔다. 도깨비 두목이 또 그 노랫소리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노인은 혹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깨비 두목은 그 말을 듣더니 "그전에 어떤 영감이 와서 거짓말을 하더니, 너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면서 다른 편에 혹을 하나 더 붙였고 결국 이웃집 혹부리영감은 혹을 하나 더 달고 집에 갈 수 밖에 없었다.
3 일본 유래설
'혹부리 영감'을 맨 처음 발굴해서 소개한 사람은 일본인 교사 '다까하시 도오루'다. 1910년에 발행된 '조선물어집'의 서문을 읽어 보면 다까하시 도오루는 고등학교 학감으로 있으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설화를 채집했다고 한다. 도깨비 담을 연구한 김종대 교수는 '혹부리 영감'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된 설화라고 보고 있다. 김종대 교수가 '혹부리 영감'을 한국의 전래동화로 보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13세기에 쓰여진 일본 고대 설화집인 『우치습유물어』와 『오상내의초』에 「혹부리 영감」이 이미 수록되어 있다.
2. 일제가 국어 교과 과정을 개정할 때 '우리 민담의 성향과 같은 일본의 특징적인 민담을 수록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3. 「혹부리 영감'과 「방망이 얻기」는 같은 도깨비 담이라도 내용이 다르다. 한국 도깨비 담에서 늙은 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4. '혹부리 영감'이 한국 내에서 전승되고 있기는 하지만, 수집된 입말 본이 극히 적다.
한편 '혹부리 영감'을 한국에서 전승되어 온 설화로 보는 학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1. 13세기 무렵에 나온 일본 고대 설화집에 「혹부리 영감」이 실려 있다고 해서 「혹부리 영감」을 일본 설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상고시대부터 한국이 일본 신화 및 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 「혹부리 영감」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설화가 무수히 발견되는 세계광포설화여서 그 근원을 따지기 힘들다.
3. 9세기 중엽 당나라의 단성식이 쓴 『유양잡조』에 수록된 「방이설화」와 「혹부리 영감」이 비슷하다. 그런데 「방이설화」는 신라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한국최초의 민담집인 <조선동화집>(1924)에 혹부리 영감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민담의 수집자는 이 이야기가 일본에 잘 알려진 혹부리 영감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분명히 조선에서 채집한 이야기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혹을 떼고 붙이는 주체가 도깨비가 아닌 장승이다.
4 기타
이야기 자체만 보면 별다른 교훈이 없는 동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첫번째 혹부리영감은 착한 사람이고 이웃집 혹부리영감은 욕심쟁이라는 설정을 붙여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착하게 살자는 교훈을 어거지로내기도 한다. 사실은 똑같은 사기를 두번 치지 말자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