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옹주

1 생애

영조후궁 정빈 이씨의 차녀. 동복형제로는 효장세자와 화억옹주가 있었으나 둘 다 일찍 죽었다.

2 열녀

영조 4년에 효장세자가 죽을 즈음에 화순옹주가 홍진 및 하혈 증세를 보인 적이 있다. 효장세자를 독살했다고 추정되는 여종 순정이 벌인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나름대로 오래 살아 월성위 김한신과 혼인했으나, 남편이 일찍 죽자 곡기를 끊고 14일 만에 죽었다. 이때 영조가 적극적으로 말리자, 마지못해 음식을 조금 먹다가도 이내 구토해 버렸다.

3 이후

결국 조선 왕녀들 중 유일하게 열녀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복 여동생 화완옹주 역시 과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부담을 가질까 염려했던 때문인지 영조는 오히려 화순옹주의 행동을 비판했고, 정조 때에야 열녀문이 내려졌다.

화순옹주와 남편 김한신의 무덤은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으며, 이곳에는 그녀의 열녀문인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 유형문화재 제45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