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영일록

1 개요

華營日錄. 임원경제지로 유명한 풍석 서유구(徐有榘)가 수원 유수(留守)로 재직 중이던 1836년 1월부터 1837년 12월까지 약 2년여간 매일의 일상과 공무내용을 기록으로 남긴 관직일기. 현재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고사십이집, 보만재총서 등을 지은 서명응(徐命膺)의 손자인 서유구가 조선 헌종 2년인 1836년 1월 1일부터 다음해 12월 12일까지 약 2년간 수원에서 수원유수(水原留守)로 재직하며 저술한 관직일기로, 수원 지방의 통치와 운영 등 관련 공무사항과 개인적인 일상 생활, 그리고 그 당시 수원 지역 민간인들의 생활 모습 등을 총체적으로 기록하여 남긴 것이다.

수원지역의 일상적인 작황보고인 농형(農形)과 연분(年分)에 내용, 광주부와의 사이에 발생한 재정문제인 화성교리료조미(華城校吏料條米) 등 당시의 환곡(還穀) 운영을 통한 유수부의 재정운영 실태와 부세미납, 환곡미회수와 같은 지방 군현의 일반적인 재정 문제에 대한 내용, 화령전과 건릉 현륭원, 수원화성 등 수원 지역 주요 시설의 관리와 재정에 관한 내용, 당시 수원지역에서 실시한 개간사업과 보수사업 등에 대한 총체적인 기록이 담겨져 있다.

화영일록 속의 1836-1837년간 수원부 측우기록

서유구는 화영일록 외에도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며 완영일록을 저술하였으며, 이 두 일기를 통해 200여년전 전라도 지역과 수원 지역의 사회, 문화, 경제 등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원본이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으로 유출되었으며 현재 오사카에 있는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3 번역

2004년 2월에 경기도박물관에서 일본에 있는 화영일록의 내용을 필사해와 완역하였다.

4 바깥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