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陳式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다. 화양국지에서는 진계(陳戒)로 기록되어 있다.
진수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지만 입증할 만한 신빙성 있는 자료는 없다.
1.1 정사
219년 한중 공방전에서 유비의 명령으로 10여개의 영채에서 마명의 각도를 끊게 했지만 서황의 공격을 받아 패했다.
222년에 이릉대전이 일어나자 유비군의 수군을 맡아 오반과 함께 이릉의 동서 연안에 주둔했다.
229년에 호군을 지내 제갈량의 명령으로 무도와 음평을 점령하러 가는데, 이 때 곽회가 공격하자 제갈량이 직접 나서서 곽회군을 무찌르면서 무도와 음평 두 군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1.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황충 수하의 아장으로 한중 공방전에 참가했다. 황충과 법정이 정군산 어귀에 주둔하면서 하후연을 거듭 공격했지만 굳게 지키키만 했는데 하후상의 군사가 싸움을 걸자 황충 대신에 자신이 나가겠다고 자원해 싸우러 나간다.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하후상과 일기토를 하다가 하후상이 져 주고 달아나자 쫓아갔다가 하후연의 군사가 배후에서 들어오자 적에게 포획된다. 이에 황충이 하후상을 아주 손쉽게 포획한 탓에 조카를 찾기 위해 하후연이 인질 교환을 요구하고 이에 무사히 촉으로 돌아온다.
여담이지만 무사히 돌아온 진식과 달리 하후상은 위군 진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황충이 쏜 화살에 등판을 맞았다. 비열한 황노인 비록 하후상은 죽지 않았지만 이에 분노한 하후연이 공격하려고 했지만 매복을 의심하여 막상 쳐들어가진 못했다.
그 후 북벌에서 조진과 사마의가 장마로 인해 철수할 때 제갈량의 말을 어겨 위연, 장억, 두경과 함께 2만을 이끌고 기곡으로 가서 적을 쫓는데, 도중에 등지가 말리자 여러 날 큰비를 맞아서 갑옷이 망가졌기 때문에 급히 돌아가는 상황에 매복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위연도 진식에게 동의하는데다 등지의 만류에 듣지 않았으며, 등지가 놓아 보내지 않자 위연이 "승상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빌빌거리진 않았을 것이다"[1]라며 꼬드기며 분위기를 만들자 진식이 맞장구를 치더니 몸소 나갔다. 그러나 5000명의 군사로 기곡으로 갔다가 매복한 군사에게 포위되어 4000여명을 잃고 4, 500의 병력만 남긴 채로 참패한다.
위연과 진식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위연은 반역의 상'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투 후 군법에 따라 참수되기 직전에 위연이 진식이 호령을 듣지 않고 나갔다고 하자 진식은 위연이 시킨 것이라고 변명했는데, 제갈량은 위연이 자기를 구했는데도 오히려 위연을 늘고 물어진다면서 진식만 요참형에 처한다. 원칙대로 하자면 둘 다 처형해야 하지만 강대한 위군과 계속 싸우기 위해선 위연의 용맹이 필요했기 때문. 사실 여러가지 말이 많아서 그렇지 위연만한 돌격대장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달리 말하자면 할 줄 아는 게 돌격밖에 없다는 뜻도 된다.
사실 이 일화는 제갈량의 공정성에 대한 훼손으로 여길 여지가 있다. 읍참마속 일화와 비교해 보면 위연을 처벌하지 않은 건 명백한 이중잣대인 것이다. 물론 실용적인 원인으로 합리화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쓸모 없어지면 수시로 처단하겠다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만 제공할 뿐이다.
1.3 진수의 아버지?
항간에 진식이 진수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었고, <진서> 진수전에 진수의 아버지가 마속의 죽음에 연좌되어 머리카락을 깎이는 형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각각 존재한다. 그런데 나관중이 이를 짬뽕하여 진식을 진수의 아버지로 의심받게끔 그려놓았던 것이다. 즉, 연의에서 직접적으로 진수의 아버지라고 언급된 적은 없으나, 부자 관계로 생각하도록 떡밥을 뿌린 혐의가 있다고 하겠다.
1.4 미디어 믹스
삼국지 11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평범한 무장으로 등장하지만 위 떡밥을 제대로 물어서 진수와 부자 관계 또는 일족 관계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통솔, 무력은 70을 넘길 때도 있으나 그래봤자 지력이 바닥 수준이라 전투요원으로 굴리기도 애매.
삼국지 9에서는 70/71/26/27의 능력치를 가진 C급 무장. 병법도 분전밖에 없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3/67/31/27/22에 특기는 기술, 화시, 지리, 반격 4개. 지력 31짜리에 기술이고 지리고 줘봤자 쓸모없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0/71/25/23/30에 병기 적성 A, 특기는 답파이다. 불함정은 컴퓨터가 꽤나 사용하므로 부장이 모자라면 넣어 주도록 하자.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70/71/25/23에 병과는 기병, 전법은 속공이다. 병기 특기를 갖고 있으므로 백도어 용도로 제격인 장수.
발번역으로 유명한 삼국지 DS 2에서는 진무로 오역되어 있다.
삼국지 영걸전에서도 평범한 B급 무장. 영걸전에선 성도 전투에서 설득시 아군이 되지만 합류 레벨도 36으로 낮고 클래스도 무도가대고 능력치가 좋은것도 아니라서 그저 유비의 레벨업 셔틀이 될 뿐이다. 극초반에 합류하는 번궁보다도 능력치가 딸려서 번궁, 위연, 진식 무도가 3부대 중 최하위급에 속한다.
반면 삼국지 공명전에선 맹수대로 등장하고 형주남부 평정전 전투에서 아군 아무나 인접시킬 경우 투항하며 그 전투부터 바로 써먹을 수 있다. 역사 왜곡 공명전에서 맹수대는 키워줄 경우 꽤 쓸만해지고 같은 맹수대인 레벨이 1 낮지만, 아군으로 들어오는 형주남부 평정전 전투에서 설득하는 즉시 활용할 수 있고 오반이 들어오기 전에 전투 1번(가맹관/면죽관)을 더 치를수 있기 때문에 맹수대를 하나라도 키우겠다면 진식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둘의 능력치는 거의 동급이라 할 수 있는데 진식의 초기 능력치는 레벨 5에 공격력 34, 지력 17, 통솔력 23, 오반의 초기 능력치는 레벨 6에 공격력 39, 지력 25, 통솔 22인데 공격력은 레벨 1의 차이를 감안하면 동급이라고 볼수 있고, 진식은 방어력, 오반은 지력에서 우위를 가진다. 오반은 장호와의 일기토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기토는 아니고, 필수로 참전하는 전투도 거의 없기 때문에 하나를 키우겠다면 누굴 키워도 무방하다. 물론 조운, 장억만 키우겠다면 둘 다 버려지겠지만
여하간 여기서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여 한현 출신 장수인줄 알았다가 영걸전 등에서 익주쪽 장수란걸 알고는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반삼국지에서는 유일하게 죽는 촉나라의 장수이다(...). 아마 예로부터 잘못 전해진 진수의 아버지라는 기믹때문인 듯하다. 진수는 정사 삼국지의 저자이니...
진삼국무쌍 3에서는 정군산 전투의 클론 무장으로 나온다. 활약은 별 반 없으나, 서로의 영채로 맞 도망가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위군측에서 플레이할 때, 영채에 귀환하기 전에 진식을 잡으면, 오장원 전투에서 진식의 복수를 하겠다며 황충이 난입한다.(단 무쌍모드 한정이다.) 그렇다고 본진에 깊숙히 들어갔다가는 제갈량의 복병에 화살 세례를 맞고 나가 떨어진다. 물론 조운이 난입하면 사기가 역전되므로 나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거기다가 조조가 등장하기 전 까지는 하후연이 총대장이다. 기억해 둘 것.
삼국전투기에서는 A특공대의 B.A(보스코 알버트)로 등장한다. 한중 전투에서 첫등장하고 그 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다. 정사를 따라서 3차 북벌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기타가타 겐조의 영웅 삼국지에선 유능한 공병 사령관으로 등장한다. 진식의 부대는 일개 장졸들도 대장의 영향으로 늘 연장을 들고다닌다고 묘사된다.
2 후한 말의 인물
陳寔
(104 ~ 187)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중궁(仲弓).
영천 허현 사람으로 한미한 집안 출신이며, 어려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현리가 되었다가 뜻이 있어 글을 좋아해 현령이 기특하게 여겨 태학에서 공부하게 했으며, 또다시 현리가 되어 양성의 산 중에 숨었다가 살인이 의심되어 고문받았다가 독우가 되자 자신을 고문한 사람을 불렀다. 이후 서문정장이 되었다가 종호의 추천으로 군의 공조가 되었는데, 이 때 후람이 영천태수 고륜에게 어떤 사람을 관리로 삼아달라고 요청해 고륜이 문학연으로 임명했다.
진식은 그가 문학연으로 적당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고륜에게 찾아갔는데, 고륜이 후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 해서 진식이 밖에서 임용하겠다고 요청한 것처럼 하면 덕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 했고 고륜은 이를 따랐다. 이로 인해 향론에서는 그가 천거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된 것을 괴이하게 여겼지만 진식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문희의 현령으로 임명했다가 태구의 현장이 되었으며, 그의 덕풍과 교화가 널리 퍼져 진식을 그리워 해 국경을 넘어 사람들이 모이자 진식은 국경을 넘기 전에 나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향리에서 일처리를 공평히 해 백성들이 송사가 있으면 그에게 판결을 청했고 진식은 시비곡직을 사례를 들어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패상이 위법한 징세를 하자 인수를 풀고 떠났으며, 168년에 두무가 부르자 대장군연이 되었다가 장양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영천의 명사들은 아무도 참배하지 않았지만 진식만은 참배했고 이후 금고되었다가 169년에 당인들이 죽을 때 진식은 살아남았다. 금고가 풀리자 사도 원외가 불렀지만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거부했으며, 삼공의 자리가 비울 때마다 진식의 이름이 늘 거론되었다고 한다.
187년에 집에 죽을 때 3만 여명이나 조문하러 왔다고 하며, 그가 죽게 되자 사람들은 형벌을 받을 지언정 진군(陳君)의 지적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탄식했다. 조정에는 그가 죽자 문범선생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양사와 진탐 등은 매번 공경으로 임명될 때마다 동료 관원들이 축하해줬지만 이 둘은 진식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한 것을 탄식하면서 자신들이 먼저 요직에 오른 것을 늘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순숙, 종호, 한소 등과 함께 현장을 지낸 적이 있어 가는 곳마다 후덕한 정치를 베풀어 칭송을 들었고 이 네 사람을 영천의 네 현장이라 불렀다.
아들로는 진기, 진심 등으로 이 두 사람의 아들들이 난형난제가 유래된 인물들이다.
또한 진식은 양상군자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
세설신어에는 순숙의 집을 찾아갔을 때의 일화와 태구의 현령으로 있을 때 관리를 처벌한 일화, 강도보다 아이를 죽인 자를 먼저 처벌하는 일화가 있다.
- 순숙의 집을 찾아갈 때의 일화
순숙의 집을 아들 진기, 진심 등과 함께 방문해 순숙이 아들들을 시켜 진식을 맞이했는데, 이 때 태사가 임금에게 진정한 현인들이 동쪽으로 몰려갔다고 알렸다. |
세설신어에서 나온 순숙의 집을 찾아간 이 이야기는 속진양추에서도 나온다.
- 태구의 현령으로 있을 때 관리를 처벌한 일화
태구의 현령으로 있을 때 관리 가운데 어머니의 병을 사칭해 휴가를 구한 자가 있어 일이 발각되면서 진식이 그를 잡아들여 형리에게 사형시키라고 했고, 주부가 옥리에게 회부해 다른 죄도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자 진식은 "상관은 속였으니 불충, 어머니를 거짓으로 병들었다고 했으니 불효이다. 불충불효는 그 죄가 막대하니 다른 죄를 조사한들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
- 강도보다 아이를 죽인 자를 먼저 처벌하는 일화
태구의 현령을 지낼 때 부자를 죽인 강도가 있어 관원이 그를 체포했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가던 도중에 주민 가운데 풀자리 위에서 아이를 낳고 거두지 않아 죽인 자가 있다는 것을 듣고서 수레를 돌렸는데, 주부가 강도가 더 큰 일이라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진식은 "강도가 부자를 죽인 것이 어찌 골육이 서로 해치는 것과 같겠는가?"라고 말했다. |
자치통감 신동준 역에는 진실(陳實)이라고 잘못 나왔다.
훗날 진나라를 세우게 되는 진패선은 그의 후손이라고 한다.- ↑ 위연은 제갈량에게 기산을 포기하고 자오곡을 넘어서 치자고 한 적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는 개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