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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후지사키 사오리 (藤崎 彩織) |
활동명 | Saori |
생년월일 | 1986년 8월 13일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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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 DJ LOVE | Fukase | NAKAJIN | Saori |
1 개요
일본의 인기 록밴드 SEKAI NO OWARI의 피아니스트, 스테이지 프로듀서(무대연출가).
본명은 藤崎 彩織(후지사키 사오리). 오사카 출생이다. 태어난 곳은 오사카이나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매우 어릴 때 도쿄로 이사와 도쿄에서 자랐으므로 고향은 도쿄라고 하는 것이 맞다.
2 밴드 내에서의 역할
밴드 내의 유일한 여성 멤버이자 유일한 86년생이다.[1] 라이브의 세트리스트와 조명, 영상 등의 효과까지 스테이지 위에서 일어나는 조명, 영상, 워터스크린 등의 모든 무대 효과들을 프로듀싱하는 스테이지 프로듀서이다. 총괄 프로듀서인 Fukase가 콘서트의 전체적인 컨셉과 장치, 스토리를 구축하면 사오리가 장치를 고안하고 설계를 하는 등 후카세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인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2]
특히 조명과 워터스크린의 파격적인 사용과 스타라이트 빔이라고 불리는 라이브회장 내를 우주를 연상시키는 별빛으로 채우는 조명 기를 개발하는 등 신선하고 획기적인 무대 연출로 밴드의 콘서트가 아름답기로 유명세를 떨치는 것에 큰 공을 세웠다. 레코딩 시에는 후카세의 보컬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특수한 곡을 제외하고는 후카세가 피아노 파트를 편곡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3], 후카세가 전달한 이미지에 맞춰 피아노 파트를 쓰고 있다.[4]
록은 물론, 대중가요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섬세한 클래식스케일을 곡에 도입함으로 그들만의 개성 있는 사운드를 구축한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인디씬 'clubEARTH' 초기에는 멤버가 아닌 'clubEARTH'의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핵심경영자였으나, 후카세의 권유 아닌 권유에 따라 멤버가 되었다. 사오리가 가입함에 따라 '피아노' 포지션을 배려함에 따라 후카세의 작곡과 편곡에 큰 변화가 생겼고, 이로 인해 현재와 같은 밴드만의 사운드가 자리 잡힘으로 결성시기를 사오리의 가입기준으로 두기도 한다.
인디 후반부터 고수해오고 있는 숏 기장의 단발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가녀린 몸매와 준수한 외모, 클래식 전공자라는 배경과 피아노 버프[5]로 인디록씬의 공식 여신이었다.[6][7] 라디오 SOL의 생중계에서는 SPACE SHOWER 페스티벌에서 사오리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에게 '쉿!'하고 미소 지으며 피아노를 연주했던 사오리의 모습에 대해 웃는 모습이 천사와도 같았다며 '인디록씬의 마더 테레사'라고 명하였다. 독특하게 한국 내에서는 팬층이 두텁고 팬의 대다수가 여성이나, 일본 내에서는 남성 팬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8] 여성스러운 외모나 목소리, 말투와는 달리 실제로는 꽤나 거친 성격으로 팬들은 곧잘 그녀를 '세카오와 실세'라 말하기도 한다.[9]
3 가정환경
2남 1녀의 장녀이다. 아버지는 꽤 고급공무원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홋카이도에서 근무 중이므로 사오리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홋카이도에 거주 중이다.(어머니가 음악교사라는 얘기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으므로 수정 바람.) 남동생 둘이 모두 운동을 한 예체능 가족으로 축구선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수학교사로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10]
사오리의 피아노연습을 위해 대형 그랜드피아노와 방음시설을 설치하는 등 피아노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던 것 같다. 예고 재학시절 해외 콩쿠르 참가 후 눈에 뜨여서 프랑스에서 유명 교수에게 사서를 받아 교습 받는 등 기회를 놓치지 않게끔 재정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셨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지만 나카진이나 후카세와는 달리 반대를 했다거나하는 얘기가 없으므로 밴드활동역시 응원해주신 듯하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가족이 모두 홋카이도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명절을 후카세의 본가에서 지내고는 했는데, 후카세의 가족과 사오리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친한 사이이다.[11] 사오리의 어머니와 후카세의 유별나게 친구 같은 관계도 유명하다.[12] 사오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꿉친구로, 학창시절부터 연애를 했는데 함께 같은 대학에 진학 할 것을 약속 한 후 실제로 같은 대학에 진학하여서 결혼에 골인하였다. [13] 멤버들 모두 입을 모아 금슬이 좋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4 학창시절
- 유치원
멤버인 보컬 후카세를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다. 사오리는 상급생의 졸업식에서 연보라색머리를 한 매우 튀는 사람을 보고 "정말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연보라색머리의 별난 상급생이 후카세였다. 4~5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유치원 때에도 피아노연습을 하던 기억이 주 인 듯하다.
-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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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사오리는 극심한 이지메(왕따)를 당하게 된다. 초등학교 생활 내내 혼자였으며, 학교 내에서 대화하는 사람은 선생님과 한 해 위의 선배인 Fukase뿐 이었다고 한다. 둘은 같은 청소구역을 배정받았는데, 사오리는 동급생 전체에게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으므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청소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후카세는 청소가 싫어서 청소도구함, 화단, 운동장으로 도망 다니곤 했는데 그런 후카세를 잡아서 선생님에게 일러 칭찬받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고 한다.[14]극심한 이지메 때문에 체육시간, 점심시간이 가장 싫었다고 한다. 항상 화장실에 숨어서 혼자 울고 빨리 학교가 끝났으면 생각하고는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친구들이 싫어하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용기 내어 "잘못한 것을 말해줘, 미안해."라고 말했는데 그마저도 없는 사람취급으로 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게)재수 없어"라고 욕했다고.. ㅠㅠ 이지메의 이유 아닌 이유 중에 하나는 일찍이 콩쿠르에 출전하는 등 수업을 빠지기도 하고 학교에서 자랑스럽게 여겨지고, 교내 행사에서도 연주를 하는 등 '특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런 모습이 재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오리는 이러한 이지메를 가족에게 말할 용기가 없어서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으나, 늘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생각했다며 "그렇게 힘들었으면 (학교)나가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멤버들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피아노를 잘 치는 조용한 아이이며 항상 피아노를 연습하는 모습으로 기억한다고 한다.[15]
- 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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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진학 후 사오리는 양키의 무리지어 다니는 소속감을 동경하고 '저 무리에 낀다면 나도 친구가 생길 수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에 양키집단에 소속된다.[16] 어느 날 양키 친구에게서 "한 학년 위의 상급생에 도쿄 내에서 가장 유명한 양키가 전학을 온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과연 그 유명한 양키는 금발 머리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등교를 하는 등 교내에서 소문이 굉장히 무성했다. 당시 도쿄 내의 양키들은 상하관계가 분명하고 연락관계가 있는 등 타 학교나 선후배에 관계 없이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오리는 양키친구를 통해 해당 선배 양키의 휴대폰 번호를 받고 전화를 해 만나게 되는데, 그 유명한 양키선배가 Fukase였다.[17] 사오리는 인디시절 MARQUEE[18]의 연재 글에서 후카세와의 재회에 대해 "사람들은 (이 얘기를)믿지 않지만 후카세를 다시 만난 그 순간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라고 썼다. 사오리는 양키 집단에 소속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친구와 어울리는 등 부모님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사춘기 이해할 수 없는 행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마찰을 겪게 된다. 게다가 예고 입시의 준비로 피아노 교습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들자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사실 양키 친구들은 자신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굉장히 상처받는다.[19] 이지메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던 사오리는 집에서도 엄마와 큰 싸움을 하고 새벽 2시에 집을 나오게 되는데 후카세가 사오리의 집 앞까지 찾아와서 둘이 함께 DVD방에 간다.[20]사오리는 후카세에게 "돌아갈 곳이 없어"라며 통곡하는데[21] 후카세는 우는 사오리에게 "네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드니까, 울지 마"라는 허세작렬전설의 멘트를 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2] 학교생활과 집안문제, 진학 등으로 힘들어 하던 사오리의 흘리듯이 말하는 투정을 후카세는 잊지 않고 다음 날이 되면 깊이 고민해서 대답을 내주곤 했다고한다. 학교 내에서의 트러블 또한 후카세와의 유대 관계 덕분에 [23] 완만하게 넘길 수 있었고, 당시 폭풍의 사춘기를 겪던 사오리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사오리는 그런 후카세의 모습을 존경했다고 한다. 친구 사귀는 게 서툴렀던 사오리에게 후카세는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는데 이 때문에 사오리의 학창시절 친구는 모두 후카세에게 소개받은 친구라고 한다.[24] 멤버인 나카진과 러브 또한 중학교 시절 후카세에게 소개받은 친구이다.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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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악과, 무용과 등으로 반이 나눠져 있는 예술 고등학교에 음악과 피아노로 입학한다. 피아노의 성비는 지옥수준이라 전체 남학생 수가 3명이었다고 한다. 해외 콩쿠르 출전을 위해 유럽을 자주 오갔고, 한동안 프랑스에 머물며 특별 시사를 받는 등 착실히 피아노에 집중한 듯하다. 후카세의 미국 유학 전까지는 방과 후 항상 함께 있었는데 이는 후카세가 자전거로 사오리의 학교까지 출근 도장을 찍은 덕분. 고등학교는 피아노를 실컷 칠 수 있었고 그것이 수업이었기 때문에 즐거웠다고 한다. 사오리가 고등학교 재학 중 후카세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는데 후카세의 가족과 함께 마중을 했으나 후카세 앞에서 그냥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25] 클래식 피아노과가 있는 음대의 수가 몇 없으므로 클래식 피아노를 목표로 하는 사오리는 엄청난 입시지옥 속에서 다소 피아노에 흥미를 잃는 등 권태기가 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한 손으로 만화책을 읽고 한 손으로는 연주를 했었다고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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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체르토 때의 사진. 참고로 오른쪽은 후카세이다.[26])
사오리는 친가인 칸사이 지방의 음대를 1지망으로 지원했으나 수면 부족으로 본고사를 망쳐버렸다.[27] 결국 사사 받은 교수님이 재직 중인 도쿄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촬영지로 유명한 센조쿠가쿠엔 음악대학의 클래식 피아노과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사오리가 대학을 떨어질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카세는 신의 뜻이라 생각했다고 일본에는 약 40여개의 음악대학이 있으나 클래식피아노 학부는 10~20여개도 채 되지 않아, 클래식 피아노과의 학생은 많아야 800명이 되질 않는다. 미디어에서 사오리를 소개할 때 마다 음대 클래식 피아노 전공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 결국 도쿄에 머물게 된 사오리는 병원을 퇴원한 Fukase의 사회 적응을 물심양면으로 돕지만 당시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후카세가 약물 부작용으로 폐인화 되며 여러 트러블이 생긴다. 의대입시가 좌절된 후카세가 미국행을 거절하고 집에서 독립한 후 나카진과 밴드를 결성하자 후카세의 보컬 연습을 위해 자신의 방을 내주기도 했다.[28] 결국 후카세는 clubEARTH[29]를 만들기로 결심하는데 이때에 유일하게 클럽 재조를 반대한 멤버이다. 당시 사오리는 절대 무리라는 생각으로 뜯어말렸으나 그대로 진행되었고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전 재산을 투자했다. 클럽을 공사하다 해가 떠서 학교에 그대로 가는 일이 빈번했으므로 항상 페인트가 묻어있는 채 교습을 받고는 했다고 한다. 당시 담당 교수님은 사오리에 대해 "테크닉이 매우 우수한 학생"으로 평했으며 "성공할거야"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30] 사오리는 재학 내내 협주곡 테스트에 합격하여 콘체르토 주자로 연속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재학생 대표로 리사이틀을 하기도 했다. [31] 사오리는 재학 중에 교원 면허를 취득해서 '음악교사 자격증'이 있다. 밴드 활동 중에 교생 실습으로 학교를 가서, 학생들에게 사인을 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클럽의 공사와 운영 뿐만 아니라 클럽을 제작하면서 진 어마어마한 빚을 갚기 위해 피아노 교습 뿐만 아니라 여러 알바를 병행했던지라 학교 로비에 지쳐 잠든 적도 있는데 동문들이 그런 사오리를 보고 빵을 주고 가곤 했다고 한다.[32]
5 여담
- 음악 전공이라 리듬감이 매우 탁월한 것인지 태고의 달인 게임에도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한번의 실수가 있긴 했지만 캬리 퍄뮤퍄뮤의 패션몬스터곡 오니모드를 엄청난 점수로 클리어하며 방송에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절대음감의 소유자라고 하며, 방송에서 몇 번 그 능력을 보여준 적도 있다.
- 좋아하는 음식은 딸기[33], 교자(고기만두), 스시. 싫어하는 음식은 튀김 등의 기름기가 강한 음식. 휴대용 위스키 케이스를 항상 소지할 정도로 위스키를 좋아하는 애주가이나, 주당은 아니며 술이 약한 편이다. 2012년 까지만 해도 후카세의 애주 라이프를 비난했으나 점점 위스키를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지며 애주가가 되었다.
- 취미는 독서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이다.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한 것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주인공이 위스키를 마시는 구절을 읽고 흉내 낸 것.
- 인터뷰에서 노트북을 '꼭 필요한 물건'으로 뽑기도 할 정도로 인터넷과 친하다. 학창시절부터 블로그를 했으며[34] 세카오와 결성 후에는 clubEARTH를 만드는 과정과, clubEARTH에서의 일상, 라이브의 일정, 곡 제작과정 등을 아메바블로그에 게재, 팬들과 밀접한 소통을 했다.[35]아메바 블로그 이 외에도 mixi[36], clubEARTH의 bbs등 밴드의 홍보와 팬들과의 소통에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 한국에서 포켓몬 GO를 실행했는데 안된다는 트윗을
한본어를 구사하며올렸다.링크일본도 안되는데 한국이 될까
5.1 예명에 대해서
활동명은 메이저 데뷔 초반 까지 풀 네임인 후지사키 사오리를 그대로 사용했으나 밴드 멤버 중 아무도 사오리를 성인 후지사키로 부르는 경우가 없어, 멤버들이 인터뷰나 방송에서 툭툭 '사오리쨩'이라고 내뱉어 버리는 등 혼동으로 인해[37] 이름인 사오리를 따 'SAORI'로 활동 명을 변경했다. 호칭에 굉장히 예민하므로 친한 사이에서도 사오리'쨩'이라고 편하게 부르는 사람이 많이 없다.[38] 나카진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사오리'상'이 아닌 사오리'쨩'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 DJ LOVE는 아직도 사오리'상'으로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39]
후카세는 초면부터 존칭을 쓰지 않았던 것 같으며 실제로는 마음 내키는대로 애칭을 지어 부른다고 한다. 후카세의 풀네임인 '후카세 사토시'와 사오리의 풀네임인 '후지사키 사오리'의 첫머리 이니셜이 F.S로 같은데, 인디 때에 종종 이 얘기를 하며 겹치는 첫 머리 이니셜이 아닌 사오리의 풀네임 꼬리 이니셜을 따서 '키리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40]- ↑ 사오리를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85년생으로 보컬인 후카세의 동급생이다.
- ↑ 실제 콘서트에서는 프로듀서의 이름에 후카세와 사오리 두 사람이 표기되어있다.
- ↑ '환상의 생명'의 인트로와 중반부 피아노 솔로파타는 후카세가 직접 썼다.
- ↑ 예를 들면, 'Starlight Parade' 간주 부분의 피아노 솔로는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이라는 후카세의 주문에 맞춰 완성된 부분이다.
- ↑ 뛰어난 피아노 실력과 피아노가 가지는 고급스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인해 피아노 연주 시에 더 예뻐 보이는 효과를 지칭하는 말
- ↑ 인디록씬에서는 사오리처럼 여성스러운 여성 멤버가 드문 편이기도 하다.
- ↑ 이 때문에 타 인디 밴드가 라이브에서 성희롱 적 발언을 하는 등 소동이 있기도 했으나 당시 사오리가 인디씬을 대표하는 '귀여운 여자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였다.
- ↑ 보컬인 후카세는 프런트 맨의 특성상 팬의 성비가 균등하고(광적인 여성 팬으로 유명하지만 후카세의 개인 팬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지극히 광적이다.) 사오리는 압도적인 비율로 남성 팬이 우세하며, 나카진은 압도적인 비율로 여성 팬이 우세하다.
- ↑ 백 스테이지에서 화가 나서 벽을 발로 차거나 후카세와 싸울 때에 폭력을 써 얼굴에 흉터를 내거나 레코딩 중 이탈을 하는 등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
- ↑ 2015년 결혼을 해서 후카세와 사오리가 결혼식 참여를 위해 홋카이도로 갔다.
- ↑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2014년 후카세 아버지가 쓰러지신 응급상황 때에 사오리의 가족이 모두 홋카이도에서 급하게 도쿄로 왔다.
- ↑ 서로 장난으로 막말하고 시비를 걸 정도.
- ↑ 후카세의 말에 따르면 사오리의 아버지가 굉장히 낭만적인 남자라고 한다.
- ↑ 게다가 사오리는 콩쿠르 준비로 인해서 종종 청소시간에 피아노연습을 위해 혼자 피아노를 치는 등 청소를 빠지곤 해서 "나이도 어리면서 까불고, 건방진 여자애"라며 후카세는 회상했다.
- ↑ 후카세는 사오리가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오리가 까부는 것을 그냥 봐 준 듯하다.
- ↑ 후카세의 말에 따르면 겨울에도 셔츠 단추를 3개나 풀고 다녀서 "추우니깐 제발 그만해 줘"라고 빌기까지 했는데도 노출을 고수했다고 한다. 귀에 피어싱 또한 어마어마하게 해서 귀 뚫을 때 마다 뜯어말리고 그만하라고 난리쳐서 결국은 그만 뒀다고(그러는 본인도 피어싱을 했었지만 사오리처럼 많이 뚫지는 않았던 듯.).
- ↑ 인사를 갔다는 얘기와 후카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오래 전이라 어떤 게 먼저인지 가물가물 한 듯, 사오리는 인사를 간 것이 먼저라고 얘기하고, 후카세는 방과 후에 사오리에게 전화가 온 것이 먼저라고 얘기하나 후카세가 자신감 있게 구체적으로 주장했으므로 후카세의 버전이 맞는 듯하다.
- ↑ 인디시절 사오리가 연재하던 잡지의 이름으로 소소한 생활을 회상형식으로 쓴 연재 글이다.
- ↑ 사오리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소행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친구들이 사오리의 지갑에서 돈을 빼서 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현장을 잡힌 양키 친구들은 "바보 아냐?"라며 오히려 사오리를 비웃었다.
- ↑ 오오타구의 GEO로 학창시절 둘이 함께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자주 갔었다고 한다.
- ↑ 이 에피소드는 2집 tree의 수록곡 '문라이트 스테이션'의 가사로 등장한다. "'난 돌아갈 장소가 없어'라며 네가 울었어"- 문라이트 스테이션中 -
- ↑ 세카오와의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사오리는 이 때의 상황이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때문에 인터뷰에서 후카세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 종종 얘기하곤 하지만 후카세는 쪽팔린 지, 본인 입으로 말한 적이 없다. 사오리가 가출해 GEO에 갔다는 것만 장난 식으로 얘기한다.
- ↑ 후카세가 사오리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우려해서 보호해 줬다고 한다.
- ↑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가 동급생이 아닌 선배들로, 후카세의 동급생이며 후카세가 학교를 여러 곳 다녔기 때문에 타학교의 친구들을 소개받아 어울리곤 했다고 한다.
- ↑ 후카세가 인터뷰에서 공항에서 가족과 함께 인사를 나온 사오리가 그냥 가버려서 미쳐버렸다고 회상을 했으나 왜 돌아간 건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오리는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 ↑ 후카세는 중학교 이후 사오리의 연주회에 한 번도 빠짐 없이 참석했다고 하나 라디오에서 둘의 다툼 중에 "졸리니까 무슨 곡인지 기억 못 해"라는 발언을 했다.
- ↑ "영어가 부족 했어"라고 말했으나 흐름상 진담인지 농담인지...
- ↑ 사오리의 방에 방음시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후카세는 매일 사오리 방에서 샤우팅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사오리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혼났다고..
- ↑ 세카오와가 직접 만든 라이브클럽으로, 메이저 데뷔 전 까지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공연과 운영을 겸했다. 2000년 대 후반 인디록씬의 주요 스팟이며 현재까지도 운영 중.
- ↑ 사오리가 클럽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젋은 혈기라고 생각하고 응원했다고.
- ↑ 졸업 테스트의 과제 곡은 사오리의 블로그에서 들을 수 있다. 테크닉이 강점인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콘체르토 역시 테크닉 위주의 곡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사오리가 자신의 콘체르토 경험곡 중에 청취자에게 추천하는 곡으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꼽았다.
- ↑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정말 감사히 먹었다고.
- ↑ 타 멤버들이 라멘을 좋아한다고 얘기할 때 딸기 얘기를 해 귀여운 척이라며 구박 당하고는 한다.
- ↑ 2014년을 기점으로 폐쇄되었다.
- ↑ 이 아메바블로그는 현재까지 사용 중인 공식 블로그
- ↑ 인디데뷔 이후 clubEARTH의 공식 mixi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세카오와의 팬 mixi로 바뀌었다.
- ↑ 일본에서는 풀 네임을 사용할 시 공적인 자리에서는 성을 부르는 것이 예의이므로 '후지사키'로 통용되었지만 멤버들이 가끔 사오리로 말해버리곤 했다.
- ↑ 절친으로 알려진 걸 그룹 덴파구미의 모가미 모가가 사오리에게 사오리'쨩'으로 불러도 되냐고 물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 ↑ 후카세는 이 말을 듣고 비웃었다.
- ↑ EARTH의 라이브에서 왜 '키리쨩'이에요?라고 부르니 "어감이 좋아서"라며 다른 대답을 하기도. 물론 애칭은 후카세 마음대로 이므로 기분에 따라 매우 유동적으로 바뀐다. 미디어에서는 '사오리쨩'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