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작가는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감출 것을 감추며 냉정할 때에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공공을 위한 '후흑'은 나라를 구하는 난세의 통치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 김선자의 중국 신화 이야기 1권, 351~352쪽
후흑을 이용해 사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비루해진다. 후흑을 이용해 공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고매해진다 - 리쭝우
후흑(厚黑). '후(厚)'는 얼굴이 두껍다(面厚)는 것이고, '흑(黑)'은 속이 시커멓다(心黑)는 말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을 줄여 후흑이라고 흔히 쓴다. 하라구로와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주로 정치적 의미로 쓰이고 사악하다기보다는 역사적인 영웅이나 간웅 같은 뉘앙스가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1] 사전적인 의미는 관리의 파렴치한 작태(아첨·사기 등), 윗사람을 속이고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는 태도.
한국에서는 '노회하다'는 말이 있으므로 '후흑'이란 단어가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으며, 중국에서도 별로 범용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후흑학"이라는 책에서만 나오는 말이다.(…) 심지어 근래에 중국 대중문화에서 삼국지 비평으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리중텐의 삼국지 강의 같은 곳에서도 후흑학 따위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2 리쭝우의 후흑학
청나라 말, 중국의 사회개혁가 리쭝우(李宗吾)가 1911년 쓰촨성 청두(成都)의 공론일보에 실은 글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발표된 직후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1917년에는 청두의 국민공보에서 후흑학(厚黑學, 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되기에 이른다. 이내 높으신 분의 사정에 의해 금서조치를 당하게 되나, 이후 마오쩌둥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리쭝우가 1938년 2월에 쓴 책의 서문에서는 후흑학의 발전 양상을 서술하고 있는데, 1기는 상고시대로 후흑이 없이 공맹의 인의가 내세워지던 때, 2기는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후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때, 3기는 후흑이 널리 퍼지고 기술의 정교함과 발달이 극에 달한 때라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후흑에도 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낯짝이 성벽과 같이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다.
2단계. 낮짝이 두꺼우면서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빛난다.
3단계. 낯짝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색깔이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를 시장에 비유하면 처음 상인들이 아무리 진품을 팔더라도 갑자기 가짜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 큰돈을 버는 것과 같다. 모든상인이 이를 다투어 따라하면 시장은 온통 가짜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 홀로 진품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면 오히려 큰돈을 벌게 된다.
리쭝우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후흑을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공자, 맹자와 삼국지의 영웅들을 면후심흑(面厚心黑)의 대가라고 꼬집었다. 감히 공자님을 까다니
3 전근대 중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후흑의 사례
- 춘추시대 장왕
초나라 장왕은 즉위한 지 3년 동안 신나게 놀기만 하다가, 자신을 날지 않는 대붕에 비유한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그 대붕이 한번 날면 천리를 갈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후 정신을 차리자 마각을 드러내고 초나라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다. 덕분에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
- 춘추시대 구천
부차를 보조하는 오자서와 손무의 활약으로 인해 오나라에 대패한 뒤로 목숨만 건졌다가, 부차의 그것을 맛본 뒤 간신히 귀국. 절세미녀로 유명한 서시,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를 오나라에 바치고 한편으로는 가시나무에 누워 자고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김으로서 마침내 승리자가 되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
- 전한시대 유방
남자라면 한번 진시황 같은 자리에 앉아봐야 한다는 야심을 품어놓고, 홍문에서 항우에게 굽신거리고 도망치면서 부모자식 내버리고... 항우와 싸우면서 각종 인재, 특히 한신의 도움으로 이겼지만, 즉위한 뒤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
- 삼국시대 조조
흑의 대명사.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하지 않겠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겉으로는 황제를 싸고돌았지만 안으로는 사실상 독재 체제로 나아갔기에 호불호는 극명.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삼국시대 사마의
침대에 누워서 노망난 연기로 자신의 라이벌 조상을 방심시킨 뒤, 조상이 사냥나간 사이에 관광태웠다. 한때는 여자의 모욕까지도 감내했다고 한다.
이중 상당수가 고렙의 식객 마스터에 고사성어 보유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만큼 고생하면서도 야심을 품고 있다가 마침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얘기.
- ↑ 중국이나 대만에서 하라구로는 한자표기를 그대로 읽어 복흑(腹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