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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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BC. 포수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크리스 아야네타


수준급 마무리로 도약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히스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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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만 해도 몰랐지.이렇게 말아 먹을지는...

이름히스 벨 (Heath Justin Bell)
생년월일1977년 9월 29일
국적미국
출신지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8년 뉴욕 메츠 자유계약 입단.
소속팀뉴욕 메츠 (2004~200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7~2011)
마이애미 말린스 (201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3)
탬파베이 레이스 (2014)
2010년 메이저리그 올해의 구원 투수상
마리아노 리베라
(뉴욕 양키스)
히스 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호세 발베르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 개요

메이저리그 투수. 한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마무리 투수로 맹활약하면서, 불펜투수 잘 키우기로 유명한 케빈 타워스와 파드리스 투수코치진에서 만든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뒤늦게 데뷔한 메이저리그에서 뒤늦은 성공 신화를 쓴 선수.

95마일 가량의 빠른 공과 80마일 대의 낙차 큰 커브볼을 앞세우며, 브래드 릿지 등을 비롯해 대개의 마무리 투수들이 패스트볼 위주의 피칭에 슬라이더중심으로 브레이킹볼을 조합하는 가운데 불펜투수들의 결정구로 잘 안쓰는 커브볼(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폭투 빈도가 높아서다)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벨의 경우는 제법 유니크하다.[1]

2 선수 생활

2.1 안습의 초년 시절

아마추어 시절 딱히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1996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로부터 69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이 때는 당연히 프로행을 거부. 하지만 칼리지를 졸업하고도 지명을 받지 못하자 결국 계약금도 못받고 뉴욕 메츠에 우리나라로 치면 신고선수 신분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마이너리그에서 무려 7년 가깝게 보내면서 끈질지게 버티다가 마침내 2004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다소 메츠에서는 다소 평범한 성적이었고, 또 이 당시 야심이 부풀어서 스타급 선수들을 마구 영입하던 메츠였기 때문에 평범한 성적의, 나이도 제법 있는 불펜 선수에게 그리 많은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2005년과 2006년에는 주로 AAA와 메이저리그를 오고 가는 선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선수 본인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지,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팀으로 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2.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수호신

어쨌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2006년 로이스 링과 함께 존 애킨스[2], 벤 존슨과 맞트레이드되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고향 근처로 가게 되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는지, 워낙 빼어난 투수코치진을 가진 덕분인지, 투수들의 구장인 펫코파크를 홈으로 쓰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2007년부터 트레버 호프만의 앞에서 셋업맨으로 맹활약하게 되었다. 메츠 시절 5점대 평균자책을 찍던 선수가 2007년 단숨에 93이닝을 던지면서 6승 4패 2.02를 기록하는 수준급 불펜으로 재탄생한 것.

2007년 콜로라도 로키스에 대역전패를 허용한 후, 구단 재정을 감축하기 시작한 샌디에이고는 2008 시즌 종료 후, 호프만을 문자메시지를 보내 방출한 후, 그 자리를 히스 벨에게 맡기는 도박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 도박은 성공했다.

벨은 마무리 자리를 맡아 2009년 42세이브, 2010년 47세이브를 거두면서 팀의 중심 마무리로 완전히 자리잡은 것. 더 나아가 2010년부터 2011년 초까지 41연속 세이브 성공을 거두면서 안정감 면에서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2009년부터 3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된 것도 바로 그런 안정감과 위력에 대한 인정.

선수 자신은 고향 근처인 샌디에이고에 꼭 남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심지어 샌디에이고에 남기 위해서라면, 연봉 삭감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재정 상태가 썩 넉넉하지 못하고 리빌딩 중인 샌디에이고 입장에서는 정상급 마무리는 일종의 사치라면, 사치. 따라서 트레이드 떡밥이 무수하게 나돌았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2011년이 끝나면 FA라는 점이 걸린 듯.[3] 2011시즌 종료 후에 FA로 풀렸는데, 자신과의 재계약을 압박하기 위해서인지, 연봉조정신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물론 단순히 몸값 올리기 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샌디에이고 구단 입장에서는 연봉조정신청이 두려워서 이를 포기하면 보호 픽도 날릴 수 있게 된 상황.

결국 샌디에이고가 끝내 그와의 재계약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새 구장을 짓고 지름신을 가동 중인 마이애미 말린스와 3년 2,700만 달러에 합의하며 이적하게 되었다.

2.3 마이애미 말린스 시절

시벨놈이라는 별명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 하다. 마이애미는 일단 새 구장 이전과 함께 돈을 풀어서라도 전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었고, 어차피 꼴찌이기 때문에 픽도 다 보호가 되며, 결정적으로 원래 주전 마무리인 레오 누녜즈가 신분 위조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뛸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4] 따라서 주전 마무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히스 벨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계약 규모도 3년 2,700만달러로 적절하다는 것이 중론.

미국시간 4월 13일 경기에서 9회에 등판해 12연속 볼을 던지며 레다메스 리즈 시즌 2를 작렬할 뻔 했으나 무실점으로 내려왔다. 하필이면 날짜까지 4월 13일... 역시 13일의 금요일은 무섭다.

시즌 초반부터 당초 모범계약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먹튀가 될 기미를 보였다. 구속과 구위가 하락한 것은 물론 신나게 블론세이브를 적립하더니 그러다가 결국 5월 25일 경기에서 3점차 세이브 상황일 때 올라왔지만 볼질에 장타를 얻어맞으며 블론의 위기까지 닿자 스티브 시셱과 교체되었다. 교체될 때 터져나오는 야유를 들으면 말린스 팬들이 이 양반에게 쌓은게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결국 후반기부터는 마무리 보직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자신의 보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뒤[5] 팬들의 악플 공세에 시달렸고 클럽하우스 내에서도 완전히 신용을 잃은 듯 하다. 심지어 사고뭉치 아지 기옌 감독도 벨을 디스할 정도. 그야말로 클럽하우스 내에서 사면초가 신세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겨울 트레이드설이 불거지고 있다.

결국 2012 포스트시즌이 진행중인 10월 20일, 케빈 타워스 단장이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의 트레이드가 결정되었다.[6]

2.4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시즌 초반엔 디백스의 마무리로 낙점받았지만 애리조나에서도 끝내 안정적이지는 못했고, 결국 후반기 들어 브래드 지글러에게 마무리 자리를 뺏기며 시즌 종료 후에 탬파베이 레이스로 삼각 트레이드에 껴서 트레이드되었다. 템파베이는 신시내티 레즈로부터 수비형 포수 라이언 해니건(트레이드 직후 3년 연장 계약)과 히스 벨을 데려왔다. 애리조나는 템파베이로부터 싱글 A 투수 저스틴 초트와 더블 A 외야수 토드 글레스먼을 받고 신시내티에 더블 A 투수 데이빗 홈버그를 보냈다. 2014년 연봉 900만 달러 중 마이애미가 300만 달러, 애리조나가 50만 달러를 부담하기 때문에 템파베이는 550만 달러에 히스 벨을 쓰게 된다...라고는 하지만 새로 계약한 마무리 투수 그랜트 발포어의 연봉은 겨우 50만 달러 차이인 600만 달러 (비록 볼티모어와의 메디컬 테스트 과정에서 몸값이 후려쳐지진 했지만). 팀내 셋업맨인 리그 홀드왕 조엘 페랄타는 300만 달러를 받는다.뭐지 이건 수비가 뛰어난 포수인 라이언 해니건을 영입하기 위해 삼각 트레이드 파트너인 애리조나의 연봉 떨구기를 받아준 모양새. [7]

2.5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

시즌 초부터 불안한 모습으로 불펜 방화의 한 축을 맡으며 7.27의 평균자책점, 1.85 WHIP의 충격적인 스탯을 기록했다. 결국 현지시간 5월 4일 양키스전 팀의 패전확인사살 불쇼를 끝으로 바로 지명할당되었고, 일주일 후 방출되었다. 불펜 고쳐쓰기로 유명한 이 팀에서도 더이상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며, 전날 경기에서 시즌 첫 구원승 얻은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듯.

2.6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클레임 기간이 끝난지 오래 지나지 않은 5월 17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하였다. 6월 8일 벨 본인이 옵트아웃을 선언해 오리올스에서 퇴단했다.

2.7 뉴욕 양키스 시절

6월 13일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계약한지 11일만인 6월 24일에 양키스에서 방출됐다.

2.8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12월 22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고, 2015 스프링 캠프에 초청되었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6 1/3이닝동안 5.68의 ERA를 기록하며 부진했고 결국 23일 경기직후 방출당했다.

3 은퇴

결국 다음날인 3월 24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4 이모저모

여담으로 그가 나와서 경기를 마무리 짓는 순간을 샌디에이고 팬들은 "Bell's Hell"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트레버 호프만의 등장 음악인 "Hells Bells"의 패러디. 히스 벨의 등장음악 역시 "벨"이 울리는데, Hells Bells는 아니고, 헤일로 시리즈의 OST로 쓰인 Blow me away(by Breaking Benjamin)라는 곡이다. 등장시 경기장 화면에는 엄청난 근육질의 스파르탄들이 나타나 간지나는 영상을 자랑하지만 정작 선수 본인은 후덕한 몸을 이끌고 전력질주로 뛰어온다(...)



펫코파크에서의 등장. 스파르탄들이 기합을 넣는 순간 뛰쳐나오는 벨의 모습은 과거 트레버 호프만의 음산한 입장과는 또다른 위압감을 준다...는건 훼이크고, 오히려 파드리스 팬들은 과거 트레버 타임의 위엄에 미치지 못한다며 은근히 아쉬워한다. 이건 지옥의 종소리가 아니야 ㅠㅠ... 그래도 평소에도 히스 벨이 보여주던 모습은 다소 근엄한 이미지였던 호프만과 달리 활달한 모습이고 더군다나 호프만이 어깨부상 때문에 갖추지 못했던 '클로저의 자존심', 패스트볼이 살아있기 때문에 이런 입장이 오히려 더 적절해보이는 맛도 있다.

이건 2011 올스타 게임에서의 영상. 전력 질주 후 저 육중한 몸으로 잔디 위에서 보여주는 슬라이드가 압권이다. 아직까지도 올스타전 명장면으로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저 뒤에 따라오는 카메라맨이 포인트인데, 카메라맨: 야, 천천히 좀 뛰어. 나는 카메라 들고 뛴다고T^T
  1. 벨의 커브 구사율은 커브를 주무기로 쓰는 불펜투수들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2. 롯데에서 뛰었던 그 존 애킨스 맞다.
  3. 대신 벨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2011년 이후로 1년 더 남아있는 마이크 애덤스텍사스 레인저스의 90년생 좌완/우완 최고 유망주를 얻어오면서 텍사스로 갔다. 웬만한 불펜투수들의 대가가 추후지명 선수 또는 현금 정도임을 감안하면 아주 대단한 딜이다.
  4. 본명은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인데, 계약금을 더 받기 위해 나이를 속이기 위해서 가까운 친구의 신분증으로 속이고 계약을 맺은 것이 드러난 상황이다. 2012 시즌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
  5. 기본적으로 자기 대신 남 탓 하기에 맛이 들렸고 감독과의 소통도 결여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마크 벌리는 "내게 감독과의 문제가 생기면 난 기자들 말고 감독한테 달려가서 해결할거임. 뭐야 쟤 이상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
  6. 삼각 트레이드다. 애리조나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중견수 크리스 영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마이애미는 싱글 A 유망주 요디 카브레라를 받아왔다.
  7. 템파베이 이적 당시엔 마무리 투수 자리가 공석이긴 했다. 하지만 55경기 이상 경기를 마무리(세이브가 아님)할 경우 900만 달러의 옵션이 2015년에 자동 실행되는 무시무시한(!) 계약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애치당초 벨에게 마무리를 맡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