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이저리그의 투수
캔자스시티 로열스 No.32 | |
크리스 영 (Christopher Ryan Young) | |
생년월일 | 1979년 5월 25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텍사스 주 댈러스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0년 3라운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지명 |
소속팀 | 텍사스 레인저스 (2004~2005) 샌디에고 파드리스 (2006~2010) 뉴욕 메츠 (2011~2012) 시애틀 매리너스 (2014)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5~) |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선발 투수로, 크고 아름다운 키를 비롯해 여러가지 먼치킨스러운 스펙으로 잘 알려져 있다.성적 빼고
1.1 선수 생활
젊을 적에는 6′10″(208cm)[1]라는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농구와 야구를 병행하다가 야구 쪽으로 진로를 잡고 2000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지명되어 $1.65m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마이너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착실히 성장해 나갔지만, 2003년을 앞두고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3년 이후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렇게 암흑기를 보낼 적에 2004년 후반기에 드디어 빅리그로 콜업되었고, 3년 $1.5m의 계약을 보장받은 2005년부터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면서 12승 7패 평균자책점 4.26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따금 컨트롤에 난조를 보이며 볼을 많이 던지는 탓에[2] 이닝 소화력이 다소 떨어지는데다 플라이볼 피쳐라는 특성상 장타가 많이 나오는 아메리퀘스트 필드에 적합한 투수는 아니었고, 결국 2005년 이후 아드리안 곤잘레스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3]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친화 구장인 펫코 파크에 온 영은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최저 피안타율의 기록을 세우는 등 준수한 선발투수로서 승승장구했고 2007년에는 올스타로까지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발전 없는 그 분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얼굴에 직격당하고 두 달을 개점휴업 상태로 보낸 뒤, 2008년부터 어깨 부상을 당하며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2010년 종료 후 파드리스에서 옵션이 거절되며 뉴욕 메츠로 이적, 데뷔전에서 콜 해멀스를 상대로 3타수 3안타 2타점을 치고 5.1이닝에 7K를 잡아내는 흠좀무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후 팔 부상으로 다시 주춤하며 4경기만에 시즌을 마감한채 FA가 되었다. 다행히도 메츠와 재계약에는 성공하며 2012년 중순에 복귀했지만, 20경기 4승 9패 평균자책점 4.15로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2013년에는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예비 선발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빅리그는 올라오지도 못한 채 워싱턴을 떠나게 되었고, 2014년 초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며 7년만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는 등 12승 9패 평균자책점 3.6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ERA와 FIP의 괴리[4]로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어느 팀과도 재계약을 맺지 못하다가 2015년 초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거의 최저연봉 수준인 1년 0.675m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2014년과 마찬가지로 ERA(3.06)와 FIP(4.52)의 상당한 괴리를 보여주며 11승 6패, 3.06의 평균자책점, 83탈삼진을 잡아내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했고, 특히 2015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연장전 3이닝 무실점, 4차전에서는 50여개의 투구수 제한이 걸려 있었음에도 호투를 하면서 생애 첫 우승반지도 획득한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3년간 최대 18M이라는 계약에 사인하는데 성공했다.
그 첫 해인 2016년에는 41이닝동안 무려 17개의 피홈런을 뚜드려맞으며 방어율 6점대를 마크하고 있다. 7~8%대를 마크하던 HR/FB 비율이 갑자기 22%로 올라간 것이 그 비결(?). 4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 압도적인 1위로, 원래 플라이볼 피쳐인데 플라이볼이 9개가 뜨면 그 중 2개가 넘어간다는 무서운 수치이다.
1.2 먼치킨
앞서 설명했듯이 학창시절에는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는데, 프린스턴 대학에서도 양 포지션에서 아이비 리그 신인왕을 먹는 먼치킨스러운 활약을 펼쳤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까지 잘해서 2002년까지 학업을 병행하면서 결국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학위를 땄고, 마이너리그에서 한동안 고생하고 있을 때는 NBA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2년 계약을 오퍼받았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엠엘비바다 글 참조.[5] 또한 처가와 본가 양쪽 집안 배경도 빵빵하다. (이쪽은 위의 엠엘비바다 글 참조) 하여간 이 정도 스펙이면 할 말이 없다(...). 아쉽게도 2000년대 말부터 부상이 찾아온 것을 보면 신은 공평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만.
1.3 그 외
- 평균자책과 FIP 사이의 갭이 매우 큰 편인데, 이는 평균에 비해 항상 낮았던 피안타율[6]과 플라이볼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낮은 홈런/플라이볼 비율 때문. 이 때문에 2014년 이후로는 나쁘지 않은 클래식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재계약을 간신히(...) 맺고 있다.
- 큰 신장에서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애초에 구속이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2000년대 말부터 당한 부상들로 인해 빨라야 80마일대 후반이 나올 정도로 구속이 많이 떨어졌다. 또한 커리어 초창기만 하더라도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던졌으나 부상의 여파로 2012년부터 변화구는 슬라이더 1개 구종만 던지는 투피치 투수가 됐다.
- 텍사스 시절 박찬호와는 함께 영화도 보러다닐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 장점은 있는데 애매한 투수의 전형이다. 삼진도 못잡고, 구속도 안나오니 불펜으로 쓰자니 장타가 두렵고, 선발로 쓰자니 타선 1순이 지나면 바로 털린다. V무브먼트가 현역 최고급인 그의 패스트볼은 처음 봤을땐 정타로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하지만 느린 건 어쩔 수 없어서 커쇼같이 헛스윙과 삼진을 펑펑 뽑긴 어렵고 대개 빗맞은 플라이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특출난 패스트볼을 받쳐줄만한 보조구종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으니 타선이 한 번 돌고 나면 타이밍을 잡은 상대 타자들에게 쭉쭉 정타로 맞아나간다. 이러니 5이닝도 버티기가 어려워 선발로서 쓸 수가 없다. 결국 이상적인 스윙맨인데 스윙맨이 어디 대접받는 보직이어야지.. 이러니 커쇼급의 피안타율을 갖고도 어디서도 대접받지 못하고 저니맨 생활을 했다.
- 2007년 올스타전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맞았다. AT&T 파크의 변칙적인 구조와 광고판의 불규칙 바운스로 인해 켄 그리피 주니어가 예상한 방향과 정반대로 튕기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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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키에 작성된 경위는 밑에 있는 흐긴 외야수 때문이다
- ↑ MLB 역대 선수들 중 랜디 존슨 등과 함께 최장신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1위는 2013년 은퇴한 불펜투수 존 라우시(211cm). 마이너리그까지 포함하면 네덜란드 출신 불펜투수 루크 판 밀(216cm)이 최장신 선수다.
- ↑ 다만 2005시즌 BB/9는 2.5로 준수한 편이었다.
- ↑ 결론적으로, 영 대신 데려온 선발투수 아담 이튼이 폭삭 망하면서 이 트레이드는 일방적인 파드리스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 ↑ 평균자책점이 3.65인 반면 FIP은 5.02(!)를 기록했다.
- ↑ 마지막이 압권이다. 트레버 호프만의 말에 따르면 영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놀림을 받았는데 놀림을 받은 이유가 영어를 너무 완벽하게 구사해서 재밌게 들렸다는 것(...)
- ↑ 커쇼와 맞먹는다.
2 現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 흐긴 외야수
보스턴 레드삭스 No. | ||
크리스 영 (Christopher Brandon Young) | ||
생년월일 | 1983년 9월 5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텍사스 주 벨레어 | |
포지션 | 중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2001년 16라운드 시카고 화이트삭스 지명 | |
소속팀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6~201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13) 뉴욕 메츠 (2014) 뉴욕 양키스 (2014~2015) 보스턴 레드삭스 (2016~) |
어릴 적 장래희망은 야구선수가 아니라 의사양반이었으며, 1번 항목의 키 큰 먼닭과 달리 고교 시절에는 주전도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드래프트 직전에 큰 부상까지 당해버렸으니... 하지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스카우트가 흑형의 우월한 운동능력과 긍정적인 워크에씩을 보고 포텐셜이 충분하다고 분석하여 16라운드에 드래프트했고, 1번 항목의 키 큰 선수처럼 마이너 시절부터 칼리지에 입학하여 학업과 프로야구를 병행했다. 화이트삭스에서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중견수로서 포텐셜이 만개한 그는 2005년 하비에르 바스케스-올랜도 에르난데스 트레이드에서 엘 듀케와 함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디백스의 대성공이 되었다.
2006년 후반기 데뷔한 영은 비록 2할 초반의 매우 부진한 타율을 기록했음에도 풀타임 1년차인 2007년에 32홈런을 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4위에 올랐다. 정교함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위협적인 일발장타력, 매년 20개 내외를 기대할 수 있는 도루능력, 그리고 최고까지는 아니어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중견수 수비를 펼치며 저스틴 업튼을 우익수로 밀어내고 디백스의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이후 꾸준히 공갈포를 가동하면서도 빠른 발을 살리기 위해 출루율을 높이고자 참을성을 길러 OPS 수치를 높였고, 리드오프(!) 내지 6번 타순에서 주로 뛰면서 디백스의 타선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런 활약에 디백스는 09~13 5년 $28m + 14년 $11m 팀 옵션의 노예계약을 선물했고, 2010년엔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다만 2011년 내셔널리그 중견수 UZR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음에도 39-40을 찍은 맷 켐프에게 골드글러브를 빼앗긴 것[1]은 옥의 티.
2012년에는 선구안이 개선되어 폭풍삼진을 헌납하던 전과 달리 좋은 볼넷/삼진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가 팔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하기도 했다. 어김없이 중견수 UZR이 11.3을 찍으면서 수비면에선 활약은 했지만, 타격 면에서는 부상 때문에 홈런도 못치고 도루도 못하고(...) OPS는 늘 그렇듯 7할대 중반에 머물렀다. 그리고 시즌 후 애리조나-오클랜드 애슬레틱스-마이애미 말린스 사이의 삼각 트레이드에서 애리조나가 마이애미에서 히스 벨을, 클리프 페닝턴을 오클랜드에서 받아오는 조건으로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되었다. 콩단장이 또 단장들을 꼬셔서 사기를 쳤다는게 중론(...).
2013시즌에는 .200 .280 .379 12홈런 40타점이라는 막장 슬래시 라인을 기록했고 오클랜드에서 옵션사용을 거부하여 FA로 풀리게 되었다. 결국 뉴욕 메츠가 1년 725만 달러에 계약했는데, 로또치고는 너무 비싸지 않냐는 평.
2014시즌에는 시즌 초반에는 1할대에 장타도 나오지 않으면서 여전히 삽질을 했다. 시즌 중반 겨우 2할대에 턱걸이하면서 0.205 .283 .346의 성적을 찍고, 8월 8일 지명할당 절차를 거쳐 방출됐다. 그러다 줍키스모드의 양키스와 계약을 했다. 양키스로 이적한 뒤에는 끝내기 홈런도 하나 포함해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는 등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이후에는 다시 침체된 모습을 보이는 등 여전히 기복을 보였다. 시즌 후 양키스와 1년 250만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2015년에는 .252/.320/.453에 14홈런을 기록했고, 좌투 상대로 3할이 넘는 타율과 9할이 넘는 OPS를 주목받아 플래툰 외야수로 보스턴과 2년간 계약을 맺었다.- ↑ 켐프는 타격에선 MVP감이긴 하지만, 중견수 수비만큼은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2011 중견수 UZR에서 켐프는 -4.6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